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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츄츄 May 10. 2024

결국은 나의 선택인 관계

참을 것도, 원망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열어젖힌, 내가 시작했고 내가 완성하려는 사랑.

인생에서 이런 사랑을 해 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혁진, 광인 中


그한테 전화가 왔다. 나는 반갑게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기쁘게.


그가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나한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부디 내 마음이 이 상태로 그대로 쭉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다.  


그는 내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했고 나도 자기 목소리 들어서 기분이 너무 좋다며 꺄르르 웃어댔다. 뭐 하고 있었냐고 묻는 그에게 지금 책 읽는 중이라고, 얼마 전에 이혁진 작가의 광인이라는 소설 읽고 너무 좋아서 그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찾아 읽는 중이라고 했다. 광인을 읽으면서 자기 생각 많이 했다고도 덧붙였다. 지금까지 내가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했잖아. 자기랑 연락이 안 되면.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 이제 다 좋아. 다 좋아졌어. 하고 그에게 말했다. 어떻게 바뀌었는데? 그가 물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며 말하기를 망설이다 겨우 "그런 거 다 부질없는 일이더라."라고만 답했다.


그동안 내가 자기를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어. 나를 좋아한다면서 왜? 왜 이렇게밖에 못해?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러니까 이해랑은 거리가 먼, 그저 참고 있는 상태였던 거 같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해주길 바랐어. 근데 그건 너가 아니잖아. 나는 그냥 너를 좋아하고 싶어. 너가 너인 상태로 행복하길 바라.

나의 이 마음은 너를 좋아하기로 선택한 나를 존중하는 거고, 그 선택에 책임을 다하기로 결정한 것에서 나오는 힘이 밑바탕을 이뤄. 그래서 이제 나는 너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믿으려고 의식적으로 생각해. 지금도 이따금씩 불안하고 본능적으로 너 마음을 지레짐작하며 저울질을 하기도 하지만 거기서 멈춰. 그 불안을 더 증폭시키지는 않는 거 같아. 그래서 나는 지금 좋아. 초반에 그 마냥 좋기만 한 했던 때보다 지금이 더 좋은 거 같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고 나빠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던 그 지점에서 나는 처음으로 더 나아가보는 경험을 하는 중이야. 우리 관계가 더 좋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물론 그는 이런 내 생각까지는 듣지 못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내 말에 힘이 더 생겼을 때 나누고 싶었다. 그는 책을 읽고 생각이 변했다는 나의 말에 덧붙여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대화, 다툼, 아침에 함께 눈을 뜨고 나눴던 포옹, 이 모든 것들이 과정으로 쌓여있었기에 그 책이 나한테 의미가 있었을 거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것도 맞는 말이라고 답했다. 우리가 쌓아온 관계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밀도가 있었다.


내가 많은 애정을 가지고 몰두한 만큼 사실 삐끗한 경우가 많았다. 혼자 생각하고 짐작한 후 혼자 결론까지 내버리는 식으로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해 버리는 내 미성숙한 태도를 그가 잘 잡아줬었다. 연애 시작 후 너무 좋으면서도 동시에 헤어지고 싶어 했던 나의 그 괴상한 마음은, 변하게 될 게 두렵고 그 과정을 보고 싶지 않아 했던 미성숙한 나의 또 하나의 모습이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도와준 그의 인내심에 많이 고맙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를 잘 다독이며 무서워도 끝까지 가보자는 결심이 섰다. 소설 광인에서는 중간부를 넘어서며 모든 것들이 파국으로 치닫는다.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르는 주인공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나서야 깨닫는다. 자신이 했던 사랑은 소유욕, 그리고 자신이 상대의 첫 번째가 되고 싶은 욕망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인공이 자신이 놓쳤던 진짜 사랑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되뇌는 장면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아. 소설을 통해 이 인물의 잘못된 사랑을 간접경험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선택하고 내가 열어젖힌, 내가 시작했고 내가 완성하려는 사랑은 내가 나보다 그를 사랑하는 것도, 그가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해 주는 것도 아닌 그를 선택한 나를 존중하고 그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며 행복한 그의 옆에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일이다. 주체는 나. 나의 선택이었고 내가 내 선택에 책임을 다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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