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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ia Sep 08. 2020

물불 못 가리는 지랄병

백약이 무익하다는 '물불형' 인간

# 지랄병


흔히들 '중2병'이라고 부르는 그것.

발병은 평균에 어긋나지 않게 중학교 2학년 즈음부터였지만, 완치는 상당히 늦은 편이었다.


스무살이 훌쩍 넘어서도

엄마 입에서 "저거 또 지랄병 도졌다"는 말이 한 달에 열 번은 나왔더랬다.


늦둥이인 탓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들이 아기를 낳고, 

그 아이들이 커가고, 사춘기에 접어드는 과정을 보면서

엄마는 이랬다. "너한테는 '시집가서 딱 너같은 자식 낳아봐'란 말도 무서워서 못 하겠다."


나는 그냥, 화가 많았다.



# 물과 불


내 지랄병은 사실상 불치병이다.

왜냐하면 워낙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냐면, 

나는 물불을 못 가린다.


사리분별을 못하거나 상황 판단을 못한다기 보다는

절망스럽게도 체질이 그렇고, 오행이 그렇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내 지랄병의 깊숙한 뿌리이자, 고쳐질 수 없는 이유다.


사주팔자를 주욱 펼쳐보면,

오행(불火, 물水, 나무木, 쇠金, 흙土) 중에 물이랑 불이 대략 반반씩 끼어있다.

전체 오행에서 물이랑 불이 차지하는 비율이 75%, 나무, 쇠, 흙은 25% 정도밖에 안된다.

4개 기둥(사주)의 윗칸을 '천간'이라 부른다고 하는데, 여기에도 물 2개 불 2개가 사이좋게 반반씩 자리잡았다.


학창시절엔 비염이 굉장히 심한 편이었는데 손발도 엄청 차가워서 겨울이면 발에 쥐가 자주 났다.

얼굴에는 화농성 염증이 한 달에 한두개씩 독을 쓰며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약이라도 지어먹으려 한의원에 가서 진맥을 하면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섞여 있어 약을 지을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쉽게 말하면 이런 식이다.

비염을 고치려 들면 손발이 더 차지고,

손발을 따뜻하게 하려면 비염이 심해지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

내 병엔 약도 없다는 거다.

그게 절망적인 건지 희망적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 초등학교 시절에 갔던 한의원에서는(나는 어려서 기억나지 않는다)

한의사가 엄마한테 "속에 불이 많으니 나무로 된 악기를 시켜보라"고 했다 하고,

- 기독교에서 천주교로 최근에 종교를 변경했지만 일평생 꾸준히 점을 보러 다닌 우리 엄마는

거의 고정 멘트로 "엄마가 나무네. 막내딸이 엄마를 다 태우고 컸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 나를 덤으로 얹어 복비를 지불한 언니는 "동생이 술을 너무 좋아하는데 건강 괜찮을까요"라는 고민에 점쟁이가 "마시게 냅둬. 화가 많아서 그래"라고 진단했다는 (고마운)소식을 전해왔었다.



# "당신 패턴이 마음에 드는데?"


장강명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는 '우주알 이야기'라는 소설 속 소설이 등장한다.


주인공 남자가 쓴 소설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실제 자신에게 일어난 초현실적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리고 끝내 소설의 마지막에 주인공은 '우주알 이야기'처럼 시공을 뛰어넘은 듯 퇴장한다.


'우주알 이야기' 속 '우주알'은, 존재와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미지의 우주 속 어떤 '의식' 조각이다.


당신 패턴이 마음에 드는데, 달빛을 타고 온 우주알이 물었다.
내가 그 안에 들어가도 될까?


모든 사람에게는 패턴이 있다.

누군가는 둥글둥글 잔잔한 파도같고, 누군가는 뾰족뾰족, 또 어떤 이는 들쭉날쭉 멋대로 깎인 바위섬같다.


초등학교 때까지 나는 아주 잔잔했다.

그 때 나를 장악하고 있던 것은 물과 불, 둘 중에 물이었다.


갓난 아기 때부터 욕조에 넣어놓으면 손발이 퉁퉁 불었는데도 동동 뜬 채 나오려 하질 않았다고 한다.

수영을 배우러 다니면서도 물에 들어가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굉장히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기억력의 한계로 단편적인 기억들이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혼자 책상에 앉아 생각을 하거나, 

엄마나 언니들이 사놓은 카세트 테이프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조하문 테이프, 혹은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였으나 내가 더 좋아했던, '옛 시인의 노래' 같은

잔잔하고 다소 우울한 노래들이었다.


어린 시절이라 많은 기억이 남지 않은 것도 당연하겠지만, 

잔잔했던 그 때의 일상들은 뇌에 큰 각인을 남기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중학교에 들어가 친구들과 어울려다니면서 슬슬 불의 기운이 나를 먹어치웠다.

뭘 하든 화가 넘쳤다.


나이 먹어가는 지금에야 참 미안하고 철 없지만, 얼굴 시커먼 아저씨들이 교복 입은 우리를 위아래로 훑기만 해도 살인 충동을 느꼈다.

부랴부랴 등교 준비를 하면서 머리카락 한 가닥만 뻗쳐도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냈으며

가족들의 작은 농담이나 잔소리에도 성질을 버럭버럭 내고 문짝을 때려부수고,

윗집의 미세한 소음에도 미니 콤포넌트의 스피커를 따로 잡아당겨 천장을 향해두고 '필승'을 최대볼륨으로 틀어댔다.


점쟁이가 용한 건지, 어쨌든 20대에는 술로 화를 많이 풀었다.

하지만 술을 먹으면 살인충동이 더 강해지는 문제는 있었다.

'타인'이 너무 싫고 거슬렸다.

모든 기준이 나였다. 내 기준에 이해되지 않는 행동, 내 기준에 민폐인 행동, 그런 것들을 보면 화를 참지 못하고 욕을 해댔다. 마치 나만 아주 상식적이고 내 육체라는 공간 바깥으로는 어떤 피해도 끼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듯.(너란 인간 참 별로다)


때로는 감정 손해를 보더라도 '함께'가 가능한 가족과 친구와 달리,

직장생활에서 만난 애매한 타인이자 동료들과의 관계를 거치면서 그나마 조금씩 '사회화'라는 과정을 거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후반까지,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여전히 가족들에게 풀어댔다.



# 지랄의 총량


주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하는 얘기라고 한다.

모든 아이들은 평생 지랄의 총량이 있어서, 아무리 남들보다 조용한 사춘기를 거쳤더라도

늦바람으로 속을 발칵 뒤집어놓게 돼 있다고. 어느날 덜컥 갓난둥이를 안고 들어온다거나...


나는 학창시절부터 20대까지 무려 십여 년에 걸쳐 꾸준히, 아낌없이, 지랄을 쏟아냈다.

30대 중반, 회사 근처에 원룸을 얻어 드디어 독립을 하고 통근길 운전을 하지 않게 되고서야 지랄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나이가 들어 체력이 떨어진 영향도 크다.

지랄도 체력이 돼야 떤다.

(지랄병이 발병했을 때는 아드레날린을 비롯한 온갖 물질이 화산처럼 폭발해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술은 여전히 끊지 못했지만 주량이 많이 줄었고, 

술에 취하면 쌈닭이 되는 대신 조잘조잘 말이 많아지다가 어느 순간 고꾸라져 잠이 들었다.


정말 총량이 있는 것인지, 그렇게 나의 지랄병은 '치료'되기 보다는 '연소'되어 사라졌다.

(여전히 가끔 욱할 때가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정말 귀여운 지랄이어서, 지랄병으로 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예전에는 나의 바깥 쪽으로 쏘아대던 화살들이, 

지랄병이 떠나간 후로는 내 안쪽으로 쏟아지며 시름시름 활력을 잃게 됐다는 부작용이 있다.


우울해도 지랄하고, 쏟아내고, 부수고, 소리지르고 풀어버린 때가 어쩌면 건강했는지 모른다.

더 이상 내 물건이나 신체를 망가뜨리지 않지만, 마음은 방어막을 상실한 느낌이다.

화가 나도 아팠고, 우울해도 아팠고, 웃을 일이 없었고, 뭘 해도 즐겁지 않았고, 뭘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지랄병은,

살고 싶어 터져나오는 목소리였다.


내 뜻대로 해보고 싶은 게 있고 꿈꾸는 게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현실이 숨 막혀서.

그렇게 할 수 없는 내가 너무 속상한데 돌파구를 찾지 못해서.

그런데도 끝내 내 안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어서.


엄마라면 이렇게 물을 거다.(더 심하게 묻겠지)

"그래서, 니가 하고 싶은 게 뭐였는데. 밤새고 술 먹고 놀아도 아무도 간섭 안 하는 거? 남자랑 손잡고 룰루랄라 몇박 여행 가도 어이구 재밌게 놀고 와라 하는 거? 회사고 뭐고 다 제끼고 탱탱 놀고 먹는 거?"


아, 정말 저런 건 아닌데.

"어떻게 살고 싶은데"라고 물으면 단숨에 '인생의 계획'을 술술 풀어놓을 수 없듯이

그냥, '다르게 살고 싶었다'는 게 최적의 설명인 것 같다.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다르게.

다르게 살고 싶었어. 그랬던 것 같아.



# 다르게 살아볼까


큰 맘 먹고 퇴사한지 3개월이 지난 지금은

나만의 '패턴'을 다시 만들어가는 중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에너지가 없어 제쳐뒀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던 취미들을 하나씩 다시 시작하면서 살아갈 '의욕'이라는 것부터 먼저 되찾아가려고 한다.


뭔가를 하고 싶은 의욕이라는 게, 일상에 지쳐 무감각해진 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리면,

다시 살려내는 데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해지는 거구나, 느낀다.


코로나 시국과 긴 장마, 태풍의 시너지로 집에만 박혀 있으며 인생 처음으로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회사만 관두면!!!'이라던 생각과 달리, 의욕적으로 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너무 오래 관성적으로 암흑에 파묻혀 살아온 느낌.


암흑에서 나가는 수백 개의 길이 눈 앞에 펼쳐져있지만

도무지 어느 길로 가봐야 할지, 심지어 어느 길로 가보고 '싶은지', 내 마음을 알기조차 어렵다.


지랄병이 그리울 일은 결단코 없다.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다)


다만,

지랄병과 함께 떠나버린 활력과 의욕을

지랄신의 재림 없이 불러낼 수 있기를.


다르게 살아보는 길에 도전하라고, 모험하라고,

강렬했던 지랄신의 부추김만을 간직하리라.


어느날, 말도 안되는 외계 영혼이더라도, 

새롭게 변주한 나의 패턴이 누군가에겐 어떤 종류의 좋은 느낌으로 전해지면 좋겠다.


둥글둥글, 완만하면서도

통통, 활력이 살아있는,

...그런 패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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