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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ia May 14. 2020

뉴트로가 반가운 옛날사람

아날로그, 로맨틱한 불편함


# 뉴트로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다.


주말에 산책하러 망원동에 가면

통바지에 어글리슈즈, 베레모에 배낭까지 장착한 여자아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옛날 그 시절, 소위 '마이'(일제 잔재라 '자켓'으로 대체하는 게 낫다)라고 부르던,

본인 어깨의 두 배는 되는 검정색 오버사이즈 자켓을 입은 아이들도 눈에 띈다.


김성재의 <말하자면>이나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이

BGM으로 깔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모습이 반갑고 귀여우면서도,

어릴 때 다 해 본 우리 눈엔 '지난 거'라 '촌스럽게' 느껴진다.

아무리 지금 유행이라도 다시 입으라면 못 입겠다.


옛스러운 요즘 애들이 왜 저게 좋다고 찾아 입을까.




# 가나다라마바사


초등학생 때 나는 '리베카'보다 '가나다라마바사'가 좋았다.

나의 오래된 MP3를 모아둔 외장하드에는 '가나다라마바사'가 있다.

(이후 소리바다가 한창일 때 기억을 더듬어 다운받은 파일)

가나다라마바사라니. 사랑의 암호가 가나다라마바사라니.

신박했다.


오후 다섯 시면 그대를 만나는 시간
카페에서 만날까 고수부지 걸을까
보자마자 하고 싶은 말

너와 나의 암호 말
가나다라마바사

유선전화밖에 없던 시절

혹여 엄마가 마루에서 전화기를 들어 듣지 않을까, 귀를 쫑긋 세우고 통화하던 기억.

"내일 다섯시에 만나"


통화할 방법이 없으면,

약속시간을 늦출 수도, 장소를 바꿀 수도 없던 시절이 있었다.


런 로맨틱한 불편함을 겪어본 적도 없는 아이들이

왜 양준일에 환호하는 걸까.




# 반가움을 넘어선 반가움


너무 빠르게 발전해버린 세상에 태어나 자란 20대.

네모난 스마트폰과 네모난 카톡창,

완벽한 안무와 가창력과 몸매를 가진 아이돌을 보며 자란 세대.


어쩌면 그들은

완벽하지 않은, 이가 빠진 동그라미의 매력에 빠진 게 아닐까.


도서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 시공주니어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에서 '이 빠진 동그라미'는 자신이 불완전한 동그라미라는 생각에 불행하다.

자신을 완전하게 채워줄 조각을 찾아 길을 떠나, 마침내 '한쪽'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홈이 없어진 완벽한 동그라미는 길가의 꽃과 나무, 나비의 아름다움을 느낄 새도 없이 너무 빨리 굴러가버린다.


완전하지 않음으로서 누릴 수 있는 로맨틱한 불편함

완전하지 않음으로서 누릴 수 있는 느림의 미학.


번지르르한 프랜차이즈가 아닌 망원동 골목의 작은 맛집을 찾아와 줄을 서는 그들은

어쩌면 어릴 적 경험하지 못한 그 무엇, 바로 '아날로그'에 끌리고 있는 것 아닐까.


적정 거리를 유지해주는 선, 유한한 시간.

내 발로 직접 찾아가는 번거로움과 내 시간을 쓰는 수고스러움.


'우리 시대의 것'을 가치있게 여겨주고, 재밌게 즐겨주는 것에 대한 반가움을 넘어,

그들이 '아날로그 감성'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게 더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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