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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아니 Feb 06. 2020

혼자

#이지안 이야기-15 그동안 많이 자랐다

어느새 이만큼 자라버렸다.


글을 쉬었다. 글을 쓴다는 건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내 생활이 어떤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일이다. 술술 잘 써지는 날은 보통 기분도 좋고 컨디션이 좋고 일도 잘 풀리고, 이러한 것들이 선행조건이 돼 글도 매끄럽게 써진다. 반대로 한 자도 쓰기 싫은 날이 있다. 회사에서 빡치고 집에서 빡치고, 세상에 무조건 대들고 싶어질 때다. 더 나아가 한 자도 안써질 때가 있다.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정신이 없었다. 생활을 굴리는 트레드밀은 점점 가속도가 붙었고 일은 잘 되지 않았다. 대출금에 이자에 신경써야 할 것들은 늘어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를 찾자면 100가지는 넘겠지만, 반대로 쓰지 못했던 핑계를 찾자면 그것도 한 80가지는 됐을 것이다. 마음에 부끄러움은 뒤로하고.


어느새 지안이는 14개월을 지나고 있다.


그에 따라 아기는 혼자 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혼자 해야만 하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가는 중이다. 혼자 걸을 수도, 뛸 수도 있고 작은 식탁의자에 쏙 들어가 앉을 수도 있고 먹던 밥을 손에 쥐고선 촉감놀이 하는 척 하다가 사방 팔방 내던질수도 있고, 윗집에서 '혹시 우리 아랫집에 비글 몇 마리 키우나?' 싶을 정도로 괴성을 지를 수도 있다. 어떤 것들은 스스로 재미가 붙어서 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들이기도 하다.


슬프게도, 혼자 해야만 하는 것들도 동시에 늘고 있다.


우선 식사다. 이유식에서 반(half) 어른밥으로 식단을 바꾸면서부터다. 그전까지는 한 숟갈 한 숟갈 백팔배 올리는 마음으로 아내 혹은 내가 떠먹였지만 이제는 조금씩 이를 그만 두고 있다. 언제까지 우리가 떠먹여 줄 순 없지 않은가. 게다가 다음달이면 어린이집에 간다. 아기들에게 어린이집에 간다는 것은 2006년 내가 입대했을 때의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기 싫지, 그럼에도 억지로 누군가 보내지, 거기에 가족은 없지, 그리고 반찬과 밥이 내 입맛에 맞춰 나오지 않는다. 물론 아직은 아기라 선생님들이 먹여주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 자식 먹이기도 힘든 밥을, 남의 자식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먹여줄 수 있을까. 이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에 대한 악감정이나 회의감도 아니고 부정적인 평가도 아니다. 마더 테레사가 와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지상정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어린이집 입소를 앞두고 조금은 불안해 하는 아내에게 요즘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제때 밥 주고 때리지만 않으면 무조건 감사하다고 해야한다."


그렇지, 이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게 '삼포시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지금의 태평성대'의 트렌드를 거역하고 결혼 석달 전 아기를 가진, 그리고 아기가 아직 엄마, 아빠를 또박또박 발음하지 못하는 현 시점에 다시 어여쁜 8주차 동생을 태중에 품은, 이 부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자 최선의 반(anti-)정부 시위다. 지나가는 말로, 거기 여의도나 세종시에 있는 양반들 보소. 200만원, 300만원 출산장려금 준다고 아기를 많이 낳을 것이랑 천진난만한 생각은 누구 대가리에서 나온 정책이오? 아무튼.


지안이는 그래서 요즘 혼자 밥먹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밥을 손으로 비벼먹든 아기숟가락과 포크로 찔러 먹든 여우가 접시 속 우유 먹듯 그릇에 코를 박고 먹든. 물론 그 과정에서 새로 이사간 32평 아파트의 매끄러운 거실은 개판 3분 전이 되고 말지만 이 역시 감수해야 할 일이다. 늘 그 의식이 끝나고 나면 무선청소기의 위대함을 느낀다.


 



거기에 지안이가 혼자 해야만 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잠들기다. 이전 글에서 '졸리면 자지, 왜 안 자고 아기들은 버틸까' 하는 천진난만한 의문을 품고 글을 쓴 적이 있다. 매일 아기를 재우느라 다크써클이 배꼽까지 내려오게 생긴 우리 부부는 밤이 두려웠다. 오늘은 언제 잘까. 마치 '굿모닝' 같은 저녁 인사.


변수는 아내의 임신이었다. 지안이의 수면 습관 중 하나는 유별나다. 새벽에 일어나 꼭 옆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고 아빠나 엄마가 있으면 엉금엉금 기어오거나, 벌떡 서서 걸어온 뒤(무섭다) 배 위에 올라와 엎드려 잔다. 오래는 아니고 한 1, 2분. 그렇게 자다 다시 데구르르 굴러 내려간다. 그런데 배 위로 올라는 과정이 매끄럽진 않다. 매우 격하게, 배를 치고 때리고, 가끔은 깨물면서 올라온다. 이게 아내의 태중 아기, 지안이 동생에게 꽤 큰 위협이 될 것 같았다. 아내의 뱃속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야! 치지마!


고민 끝에 잠자리를 분리했다. 아기방에서는 나와 아기가 자고, 아내는 혼자 안방에서 자기 시작했다. 미안해 하는 아내에게 어쩔수 없는 선택임을 설명하고, 군대 새벽근무 하는 심정으로 자면 된다고 안심시켰다. 처음 며칠은 아내가 빠이빠이를 하고 방문을 닫고 나가면 지안이는 미친듯 울었다. 이봐, 가지마, 그러는거 아니다! 하는 듯. 대성통곡하는 지안이를 이리저리 달래고 웃긴 뒤에야 좀 놀아주면 지쳐 잠들곤 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자 울음은 점점 짧아졌고 최근에는 엄마가 보이지 않아도 울지 않는, 대견스런 단계까지 발전했다. 대충 저녁 10시까지 거실에서 놀다가 10시 10분 쯤이 되면 거실 불을 보조등으로 은은하게 바꾸고, 20분이 되면 지안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간다. 수면환경을 만들이 위해 이땐 방도 간접등만 켜놓는다. (간접등이라고 해봐야 총각시절 쓰던 스탠드다.) 분류를 200mL 쯤 타서 입에 꽂아넣고 다 먹고 나면 아내는 빠이빠이 하고 나간다. 엄마가 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이지안은 이내 아빠 배를 올라타고 빨고 꼬집고 깨물며 놀다가 어느새 벌러덩 잔다. 


설령 잠들지 않아도 나는 10시 반이 되면 방의 모든 불을 끈다. 하나, 둘, 셋, 암전. 처음에는 며칠 어리둥절 하는 듯 보이더니 이젠 불을 끄면 '너의 하루는 끝났다'는 메시지인걸 아는지 순순히 누워 잠을 청한다. 한 5분에서 10분 쯤 온 방 안을 굴러다니다 제 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잔다. 


아내와 셋이 잘 땐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도 알아간다. 쉬 싸는 소리다. 머리 맡에 지안이가 궁뎅이를 쳐들고 잔 적이 있었는데 새벽에 어디선가 물 새는 소리가 들렸다. 윗집에서 누가 물을 내렸나. 그런데 느껴지는 소리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주변을 살폈더니 지안이 기저귀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 쉬 쌀때 잘 들으면 소리가 나는구나! 발견하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아 이 생명의 샘.


그렇게 밤새 아기는 온 방을 굴러다니며 자고, 나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뒤 동이 트면 양수리 어디 MT 펜션에서 일어난 듯 한 컨디션으로 눈을 뜬다. 어젯밤 놀이가 과했나. 졸린 눈으로 잠든 아기를 물끄러미 보다, 이내 출근 준비를 하러 나가 커피를 내린다.


8월이나 9월 경 동생이 태어나면, 지안이는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늘어났겠지. 혼자 해야 하는 것들도 더 늘었겠지 싶다. 아직 아기지만, 아기도 엄연한 사람이고, 동생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엄마 아빠의 관심과 애정이 분산된다는 것은 우리 딸, 그녀에게도 작지 않은 외부충격 일 것이다. 우리가 그 시간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이 또한 두렵고 모를 일이다. 


가끔은 아기가 노는 모습을 보며 불현듯 슬픔을 느낀다. 저 아기가 살아갈 세상, 혼자 감당해야 할 만사 일들, 부모와 함께할 시간, 떨어져 있을 시간, 그리고 부모가 없을 시간. 그런 것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결국 언젠가는 너도 혼자 이 일들을 감당하겠구나. 그러면서 아기를 안으면 유난히 더 따뜻하고 말랑말랑하게 느껴진다.


너무 추운 겨울의 막바지다. 심술도 이런 심술이 없다. 추위에 코로나에. 주말이 와도 도대체 아기와 아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없단 말이다.


다시 당근마켓이나 들어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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