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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아니 Mar 06. 2020

우리 어른들, 어떤 세상을 만든건가

#거리에서 쓰다-강동구 세 아이의 비극

보기 싫은 뉴스가 있다. 읽기 싫은 기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겨우 실눈을 뜨고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야 하는 기사들이 있다. 읽는 와중 속에서는 열불이 치밀고 구역질은 목구멍을 거슬러 올라오고 등골은 식은 땀이 흐르고 온 몸의 살갗에 소름이 돋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아니, 이야기라는 낭만적인 수식어를 붙일 수 없는 재난 같은 기사들이다.


서울 강동구 한 주택에서 불이나 어린이 3명이 숨졌다. 소방당국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서울 강동소방서는 4일 오후 3시쯤 강동구 고덕동의 상가주택 3층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해 약 20분 만에 진화했다. 이 불로 4세 남자 어린이가 사망했고, 중상을 입은 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던 4세, 7세 여자 어린이도 숨졌다. 서울=뉴스1


첫 문장에서 '불'과 '어린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음 문장은 읽지도 못하고 있는데 탄식이 흘러나왔고, 고개를 들어 괜한 하늘만 봤다. 겨울의 막바지, 아직 바람은 차갑고 온 나라가 정체 불명의 바이러스 때문에 난장판인 가운데 네 살, 네 살, 일곱 살. 아이들이 죽었다. 4, 4, 7이라는, 채 두 자리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멈춘 숫자는 차라리 이 세상의 종말을 가리키는 카운트 다운 같았다. 이제 막 놀이의 즐거움과 사회관계의 새로움, 눈 돌리는 것 마다 신기한 세상의 환희를 알아갈 무렵의 아이들이 검은 연기 안에서 사라져버렸다. 너무도 허망하게, 너무도 허망하게 말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중 '0시를 향하여'라는 작품이 있다. 사건의 결말에 와 되돌아보면, 그러한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는 요인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고 하나 하나 태엽바퀴처럼 서로 얼키고 설켜 결국은 그 결과를 만들어내고, 시계 바늘은 0시를 가리키고 만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많은 재난과 비극은 우연과 실수인 경우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참담한 조건들이 도처에 괴물처럼 도사리고 있었던 때도 많다. 우리는 그 괴물들을 마주치기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지만 진실이 드러날 때 마다, 우리가 만든 세상의 허점과 고장들을 깨달을 때 마다 속수 무책이다.


어디를,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가족들은 말 그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을 잃었다. 우리 지안이가 이제 겨우 15개월이다. 지금까지 키운 만큼을 또 키우고 또 키우고 또 키워야 겨우 6, 7살 쯤 되겠지. 지금까지 쏟아 부었던 포옹과 이유식과 놀이와 가르침과 돌봄과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부리나케 튀어갔던 날들과, 새벽 내내 아토피에, 이앓이에 잠들지 못해 칭얼대던 때 같이 밤 새며 아이를 쓰다듬던 날들과, 엄마 아빠를 처음 입밖에 내던 날 환호성을 지르던 날들과, 아가야 사랑해 사랑해 속삭이던 밤들과, 따스하고 부드러운 볼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던 날들이 몇 번 더 지나고 나서. 그 아이를 잃는다면. 잃는다면. 차라리 한 시대의 종말이나 한 국가의 붕괴나 인류 멸망 같은 사건들은 낭만적으로 보일 것 같다. 


이런 비극이 뉴스로 전해지기 까지, 대체 우리 어른들은 어떤 세상을 만들었던 것일까. 어떤 지옥 같은 세상을 만들었길래 어여쁘고 또 어여쁜 아이들이 속절 없이 하늘나라로 떠나야만 했을까. 좀 더 촘촘히 아이들을 지킬 안전망을 만들 순 없었던 것일까. 난로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좀 더 안전한 난로를 만들 순 없었던 것일까. 화재가 발생했더라도 좀 더 이를 일찍 감지해서 창문을 부수고 문을 부수고 그리하여 저 어여쁜 아이들을 듬직한 어른들의 품에 안고 뛰쳐나와 그 입에, 그 폐에 삶을 불어넣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정말 속절 없고 대책 없는 세상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다른 아이들의 비극을 접하면서, '아 나는 조심해야지' 하는 것이, 정말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전부란 말인가. 세상의 온갖 말을 다 쌓는다 해도 이 사태를 우리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설명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너무 자주 세상에는 일어난다. 그 세상은 우리가 만들었고 우리가 산다. 그럴 때, 나는 지옥에서 산다고 느낀다.


이제야 무슨 시스템을 정비한들, 대책을 세운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미 네 살, 네 살, 일곱 살. 세 개의 거대한 우주가 사라졌고 우리는 그걸 되돌릴 방법이 없다. 이 사태에서 무슨 교훈을 얻고 무슨 시사점을 얻는다 한들 지나간 0시는 되돌릴 수 없다. 정체 불명의 바이러스에는 온 정부 부처가 나서 난리를 치고 외국 대사를 불러 혼을 내는지 짜증을 내는지 모를 부산을 떨고 대통령이 분주히 움직이는데, 이미 정체를 아는, 하루에도 몇 건씩 벌어지는 화재라는 사태 앞에서는, 어른들 없이 방치된 아이들의 세상에서는, 아무도 뭔가 하려 하질 않는다. 며칠이 지나고, 또 몇주가 지나고, 또 몇달이 지나가면 비극의 당사자들을 뺀 사람들은 그냥 그런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겠지. 그러는 동안, 어디에선가는 또 하나, 또 하나, 어여쁜 아이들이 사라지겠지.


정말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든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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