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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아니 Mar 09. 2020

친애하는 나의 스투키에게

일상: 꺾꽂이를 시도해봤다

왜 내가 손대는 스투키는 매번 장렬히 말라 전사하는 걸까. 늘 궁금했다. 택배로 집에 도착할 땐 파릇파릇 강인해 보이던 애들이. 며칠, 혹은 몇달 같이 지내다보면 시름시름 앓다 노래지거나 물러지거나 하다 결국에는 저 세상으로 떠났다. 지못미. 아직까지도 식물 전문가가 아닌, 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나는 이유를 모른다. 열심히 네이버 검색창에 '왜 스투키가 죽을까', '스투키 죽는 이유', '스투키가 물러졌어요', '스투키 노랗게 변함', '스투키에게 명복ㅇ...ㄹ...' 따위를 두드렸고 이런 저런 정보를 찾았다. 그치면 여전히 모르겠다. 그 사이 화장실에 둔 스투키는 죽었고, 거실에 둔 스투키는 쌩쌩하고, 벽에 박은 선반 위에 둔 스투키는 그런대로 목숨을 유지하고 있다. 


내 바람은, 좀 쌩쌩하게 자라달란 말이다!


그러다 집에 종종 오시는 어머님이 스투키를 잘라다 화분에 꽂아놓으신 걸 봤다. 그런데 그게 안죽어. 겁나 신기해. 애지중지 할 땐 픽픽 쓰러지더니, 대충 어머님이 꽂아둔 스투키는 안 죽고 조금씩 자란다. ...사람을 가린단 말인가! 싶었지만. 내 잘못된 습관 중 하나는 화분에 물을 자꾸 준다는 것. 요것도 한 원인이었다. 그런데 볼때마다 예쁘고 안쓰러운데, 어떻게 물은 안 줄 수 있단 말인가. 매정하게! 


물 머겅, 또 머겅, 잘 커줘!


이러다보니 뿌리는 썩고 세균이 번식해 죽는다는 걸 최근에서야 알았다. 나의 지나친 애정이 수많은 스투키를 보람상조로 보냈다. 아무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주말 이틀 중 하루 시간을 내 집에 있는 스투키들을 다 정리하기로 했다. 좀 흙도 사고 제대로 잘라서 심어보자 싶었다. 수직으로 자라는 스투키가 예뻐서 다 꺾꽂이는 하기로. 그래서 여기저기 검색해보다 마사토(?)란 흙도 온라인 주문했다. 마치 '마사토'만 있으면 스투키가 무적으로 자랄 것 처럼.


집에 있던 조그만 스투키들과 주문한 흙.

신문지를 깔고, 자자 준비를 해볼까. 아가들아 걱정마라. 내가 이미 충분히 검색을 했고, 너희들을 잘 옮겨심어 살려보겠다. 대디를 믿어바바! 오른쪽 위는 온라인 구매한 마사토. 좀 자잘한거, 덜 자잘한거 두 종류 샀는데 겁나 많아. 남은건 기존 다른 화분에 부었다. 


...어떡해. 해버렸어.

여러가닥 같이 났던 스투키들을 겁도 없이, 가위로 싹둑싹둑 잘랐다. 자...잘 할 수 있겠지? 


떨지마, 아가들아.


화분의 흙도 싹 털었다

이곳은 수술실이다. 장례식장이 아니다. 그렇게 믿는다.


고통은 나눠야

내친김에 큰 스투키 화분도 뽑았다. 잘 크고 있는 애들을 괜히 꺼낸건 아니겠지. 맞겠... 오른쪽 작은 베비들은 심고 마사토를 덮었다. 상토와 마사토를 뭐 1 대 1로 섞고 어쩌고 하라는데, 그냥 대충 퍼다 대충 섞었다.


어느 정도 마무리

주방은 대환장 파티. 여보, 내가 치우께


완성!


드디어 완 숑숑숑! 이제 며칠간 지켜봐야겠다. 이 아기들이 다시 상조회사로 가는지, 아니면 불끈불끈 잘 클지.

순을 잘라내고 남은 밑동은 옆에 큰 스투키 화분에 대충 꽂아놨다. 살려나? 살아줘. 


토요일이 이렇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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