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나타났다. 내가 남편과 단둘이 있기만 하면 귀신 같이 알아채고 소리 지르며 쫓아오는 그녀. 그녀는 빛의 속도로 달려와서 남편과 나를 배추 포기 가르듯 쩍 가르고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고는 콧소리와 혀 짧은 소리를 적절히 섞어가며 내 남편 품에 파고든다.
"아빠는 내 꺼란 말이야."
그녀는 내 남편이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하며 나에게 접근하지 말 것을 명령한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녀의 불같은 기세에 눌려 일보후퇴한다. 멀어지는 내 모습을 보며 그녀는 행복하게 웃는다.
작년부터였나. 그녀는 내 남편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내가 남편과 사소한 말다툼이라도 벌이고 있으면 어느샌가 달려와서 내 남편 편을 든다.
"아빠 말이 다 맞아!"
"우리 아빠 힘들게 하지 마!"
"아빠는 좀 쉬라고 하고 엄마가 다 해!"
남편은 그녀만 나타나면 어깨가 쫙 펴지고 기세가 등등해진다. 그 모습이 어찌나 얄밉던지.
원래 딸들은 아빠 편이라곤 하지만 이 친구는 도가 지나치다. 귀엽게 봐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 친구 때문에 진짜로 속상하고 서운할 때도 있다. 아빠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표현하는 과정에서 "엄마는 싫고, 아빠는 좋아." "엄마는 나쁘고, 아빠는 착해." "엄마는 못생겼고, 아빠는 멋있어." 같은 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말이 당장이라도 나올 것 같은데, 내 입으로 그 말을 뱉는 순간 6살 꼬맹이한테 지는 것 같아서 꾹꾹 참는다.
우리 딸은 아빠를 아이돌 보듯 바라본다. 아빠 얼굴이 너무 잘 생겨서 눈이 부시다고, 아빠의 불룩한 배가 너무 멋있다며 아빠 등에 매미처럼 찰싹 매달려있고 아빠 품에 껌딱지처럼 들러붙어있다. 이 대목에서는 살짝 걱정스럽다. 아무리 취향을 존중해주려고 해도 우리 남편이 눈이 부실 정도로 잘생긴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 가서 어머님들한테 인상 좋다는 소리는 자주 들을지언정, 미남이라는 소리를 들을 얼굴은 아닌데 안목이 저렇게 없어가지고 어쩌나 싶다. 자신이 눈이 부시게 잘생겼다는 말을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믿으며 뿌듯해하는 남편을 보는 마음은 또 어떤가. 40대 아빠와 6살 딸의 지나친 애정표현을 보고 있으면"잘들 논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는 안다. 딸은 쑥쑥 자랄 거고 자라면서 아빠를 향한 과한 사랑도 줄어들 거라는 걸. 어차피 딸도 남편도 다 나에게 돌아올 거라는 걸 첫째를 키운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애틋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그들의 사랑을 기록으로 남긴다. 나중에 딸이 중학교에 가면 들려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