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 마전 한의원에 갔다. 발이 어디에 걸려 넘어진 것도 아닌데 아팠기 때문이다. 그날은 비가 와서 바닥은 물에 젖어 기은이 뚝. 떨어졌다. 신발은 장화를 신었고 신발 바닥의 굽이 낮은 장화라 바닥의 찬기운이 그대로 발에 전달되었다. 신은지 몇 시간이 지나자 더 그랬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점멸하는 신호등이 신경 쓰여 나는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른발이 장화 속에서 철컥 거리는 소리가 났다. 위. 아래 발의 뼈들이 분리되어 벌어졌다 가라앉는 느낌이 싫었다. 대기하고 있는 차들을 지나 엉거주춤 맞은편 인도에 다 달았다. 제대로 걸으려고 허리를 펴고 발바닥이 땅에 닿게 섰다. 어디에 부딪진 것도 아닌데 이렇게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픈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급한 불을 꺼야겠다는 마음에 조급해졌다. 일이 끝난 초저녁 약국에서 몇 가지 약을 샀다. 인도에서 주변에 한의원이 있는지 길가는 여자에게 물었다. 그녀가 가르쳐준 한의원은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낯선 곳이다.
건물을 올리보니 창문에 이름이 보이는 곳은 3층 같았다. 엘리 베터는 이제 것 본 중 가장 오래돼보였다. 기계가 육중한 한 칸의 컨테이너를 옮기는 것처럼 불안한 소리를 낸다. 그에 반해 병원은 투명 유리가 바로 보이는 깨끗한 이미지를 드러냈다. 신발장에는 갈아 신을 슬리퍼가 있고 신발을 벗고 갈아 신는 절차가 나를 기다린다.
"처음이면 여기 써주세요"
접수하는 곳에서 종이 한 장을 받아 들었다. 접수를 하고 기다리는데 직원이 옆방으로 안내한다. 어떻게 아프게 됐는지? 또 어디가 아픈지 묻는다. 다리를 오른쪽 무릎에 올리고 양말을 벗었다. 발바닥의 아픈 부분을 만지작 거리며 그곳이 아프다고 했다. 그녀는 유심히 몸을 기울여 관심을 보였다.
"우리 병원은 다른 곳과 달라요. 원장님은 환자분의 생년월일을 기본으로 체질에 따른 진료를 합니다. 여기 인적사항에 써 주세요."
"아, 네에."
나는 사상체질에 따라 치료를 하나보다 내심 기대가 됐다.
"잠시 저기 앉아 기다리시겠어요? 원장님이 따로 보시고 문진을 해야 될 거 같아요."
벽에 기댄 밤색 소파에는 그 사이 두 명의 남자와 여자가 앉아있었다. 마른 여자아이가 어린 남자애를 두 팔로 끌며 나를 안내했던 직원에게 조잘댄다. 권사님, 이라는 호칭을 쓰는 걸 보니 종교가 있나 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호출을 한다.
원장은 다시 내가 아프게 된 경위를 듣고 발을 만져본다.
"어디 부딪친 것도 아닌데 아프다고요?" 이상하다는 듯 큰 눈을 열어 보인다. 부딪쳤다면 고칠 수 있는데 하는 말처럼 내겐 그렇게 들렸다. 아무 이유 없이 아프게 된 환자가 제일 애매한 처방을 할 수밖에 없다는 표정이다. 그는 내가 요즘 먹은 게 궁금하다고 했다.
"요즘 홍삼이나 삼계탕이나 몸에 좋다는 거 드신적 있으세요?"
나는 머릿속을 점검한다. 그래 내가 힘들고 피곤해서 뭐든 좋다는 거 먹으면 힘이 나겠지 하고 주는 걸 막 입에 넣었던 게 생각났다. 같은 직장동료가 모르는 회사 이름이 들어있는 스틱형 홍삼과 비타민제 그리고 철분을 1개 정도 볼 때마다 줬다. 처음에는 이 언니도 직장 말고 또 부업을 하는 건가? 나보고 물건 먹어보고 좋으면 사달라고 주는 홍보용 약일 텐데 하고 부담감이 들었다.
"언니, 약장사하는구나! 내 주변에도 이런 거 사달라고 하는 사람 세명이나 있어. 내가 안 사줬더니 싫어하더라."
그녀는 잉크가 굳어 나오지 않는 볼펜처럼 입에서 말의 밑천이 떨어졌는지 더 이상 약 소개는 하지 않았다. 경직된 분위기를 누그려 뜨려고 그녀가 주는 스틱을 그녀가 하는 거처럼 똑같이 뜯어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차에서 손바닥만 한 곽에 누군가에게 권했을, 세워둔 샘플을 가져다 몽땅 내게 주었다. 다시는 뒤도 안 돌아보고 처리하고 싶었던 물건처럼. 나는 몸에 좋다는 그녀의 말만 믿고 오늘 무슨 횡재를 했나? 나에게 공짜로 건강식품이 들어오네 하고 기뻐했다.
언니, 고마워! 잘 먹을게,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며 서로 헤어졌다. 같은 시각 아침에 모이거나 볼 일이 생기면 그녀는 손톱만 한 흰 알약 하나를 내밀었다.
"뭐야?"
"비타민, 종합비타민이야!"
입안에 새콤달콤한 맛이 났다.
병원에 사흘을 다니고 발은 조금 차도를 보였다. 애들하고 즐겨 먹었던 닭은 먹으면 다리 힘이 약해진다고 의사는 말했다. 내 체질은 지금 하체가 부실해진 상태라고 했다. 열을 내고 기운을 북돋아다 주는 것들은 하체의 기운을 상체로 끌어다 쓰는 성질이 있다고 했다. 진료를 할 때 의사는 날 걱정하는 남동생처럼 다정하게 앉아서 말했다.
"강명화 님, 몸에 좋다는 거 제발 드시지 않았으면 저는 좋겠어요."
삼계탕은 몸보신용으로 내가 즐겨 먹는 음식인데 앞으로 힘들 때마다 무얼 먹을까? 마음 한구석 의지하던 음식을 떠나보내려니 허전함이 밀려왔다. 시어머니가 보낸 홍삼도 애아빠가 거짐 자기 거를 다 먹고 내 거 까지 먹어서인지 그 해 마비가 왔다. 몸에 좋다고 다 자기 체질에 맞는 음식은 아닌 것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친정아버지에게 명절마다 홍삼 진액을 노인에게 좋다고 두어 번 애아빠가 사갔다. 그 해 아버지는 머리가 아프다며 머리를 쥐어짰다. 주위에 홍삼을 인사치레로 돌렸었는데 겨우 한포를 먹지 않는 동료도 있었다.
"그거 오늘 낼 오늘 낼 할 때 먹는 거야!"
하며 거절했다.
나는 그때 그녀에게 무슨 연유가 있을 거라고 짐작만 했다.
그런데 내가 아프고 보니 그래서인가? 하는 심증이 갔다.
남편을 갑자기 떠나보내고 자기를 과부,라고. 칭하는 친구가 야속해져 만나지 않기로 했다는 이웃을 만났다. 내가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얘기했다. 그녀도 동감하는지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그녀의 남편은 계단 걷는 것을 좋아했다. 결국 아파트 계단에서 사고사 했다. 그녀의 남편은 하필 고혈압약이 떨이 졌는데 약 타러 병원에 가지 않았다. 약을 못 먹어서 어지러웠고 그로 인해 계단을 헛발 디뎌 넘어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의원에서 내가 들은 얘기, 시어머니가 준 홍삼 얘기부터 친정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그녀도 남편이 응급실에 실려갔던 일화를 말했다. 시누가 직접 하는 밭에서 캐낸 삼을 달인 물을 먹고 남편이 눈이 돌아갔다고 했다. 남편이 고혈압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내 얘기를 듣고 결국 그녀도 남편 체질과 자기 체질은 완전히 달라, 자신은 홍삼이 없어서 못 먹지라고 했다.
"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하다 보니 아저씨에게는 안 좋았겠네!
그녀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대답을 했다.
나는 다시 남편에게 홍삼 얘기를 전했다. 남편은 자기가 들은 소식이 믿기지 않아 했다.
"그럴 리가 홍삼은 몸에 다 좋은 거야!"
"우리 아버지도 당신이 선물한 홍삼 먹고 더 안 좋아졌어. 당신 엄마가 보낸 홍삼 먹고 당신도 병원에 그해 실려간 거잖아! 내가 안 먹는다고 내 것까지 먹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