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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맷돌 Nov 29. 2022

결혼의 미래

결혼의 순수

  어릴 때 결혼의 의미는 고전적이었다. 현모양처가 돼서 예쁜 아이 낳고 남편과 오손도손 사는 삶을 꿈꾸었다. 모든 것은 변하는 게 순리인데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녀의 사랑은 지고지순했다. 사랑은 늘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있는 옹달샘이라서 투명하고 청량한 느낌을 주었다. 그것을 보고 감동받은 나는 예술로 승화된 사랑에 눈물답했다.


   이미지로 보이는 사랑의 완성은 늘 결혼이었다. 그래서 결혼은 법제화됐고 법의 보호를 받는다고 여겼다. 그와는  반대로 결혼을 깨고 가정을 깨는 일은 부도덕한 행위라고 여겼다. 불륜, 첩, 간통의 주인공들은 나쁜 사람이고 조강지처는 착한 사람이라는 캐릭터가 성립됐다. 가벼운 약속은 장난처럼 손가락을 걸고 한다. 사적인 감정이 묻어나는 장난스러운 행위이다. 앙증맞은 깨끼손가락을 걸고 눈빛을 교환한다. 너와 나만 아는 비밀!


   결혼은 남녀 간에 대한 약속다. 보통 반지는데 정표로 준비하는 예물은 사회통념상 누군가의 아내요 남편이 있다는 표식 된다. 그래서 반지를 빼게 되면 임자 없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심지가 굳은 사람들은 격식을 차리듯 그런 혼란을 만들지 않지만 불편하다는 이유로 반지를 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여기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미혼인 줄 알고 사귀다 불륜에 빠지는 일이 생긴다.


  둘만의 물질적인 교환은 더불어 성의가 묻어나는 표식이 된다. 금반지의 상징은 순도 99.9프로의 사랑을 의미하며 변하지 않는 속성은 결혼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다짐도 들어있다. 형편 것 만년필이나 넥타이핀, 시계를 받은 분은 우리나라가 전쟁을 겪으며 살기 어려운 시절을 반영한다. 결혼은 인생을 함께하기로 한 약속이다. 그만큼 부담되고 무거운 주제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결혼을 하는 것은 젊기 때문이다. 젊은이는 오랜 미래에 가치를 두고 가야 할 길이 멀기에 혼자는 외롭다고 느낀다. 같이 인생길에 길동무가 있었으면 하는 게 결혼이다. 무덤까지도. 그러기에 둘만 아는 사실이 아닌 이 세상에 공표한 결혼을 기대에 못 미친다고 설레어 한 결혼을 신중하지 못한 선택이라고 되물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불편한 것은 편리하게 하려고 바꾸는 것이, 그렇게 사는 게 요령 있게 사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통은 뚜벅이에서 자전거로 버스로 승용차로 전철로 비행기로 승차감뿐만 아니라 속도감까지 느낄 수 있게 변했다. 스피드 한 시대에 결혼 마음에 들면 바로 하고 승차감이 나쁜 자리라면 갈아타는 세상에 이혼율은 늘어가는 것은 당연한 추세라고 보겠다.


  사람과의 거리는 비용에 의해 가까워진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 간에 결혼정보회사가 다리를 놓고 이력서는 둘의 관계를 어제 알던 사람처럼 만든다. 포토그라피의 챕터마다 열거한 조건에 따라 구미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상술이 첨가되다 보면 부풀려지고 그럴듯하게 포장을 한다. 조건 조건 하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하는 걸 보면 장삿속 결혼시장 감이 떨어지는 말이 생각난다.


  좁은 관계망 속에서 지인의 소개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의 경우의 수는 당연히 줄어든다. 만남인위적이고 작위적이라 인연보다는 클래스가 있고 레벨이 있다고 한다. 인연을 중시하던 과거처럼 서로 좋아서 눈 맞아하는 자연스러운 결혼은 천연기념비가 되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결혼이란 게 어려운 환경인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사람이 물건 취급을 받는 다니 내 젊은 날 누군가 이거 물건이 되겠나? 해서 기분 나빴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사회적 평가의 가치를 식별하기 쉽게 학벌, 배경, 직업을 기준으로 사람을 물건처럼 상품화시키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을 물건화시키고 라벨을 다는 바뀐 인식을 나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보고 평가해야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 는 지불한 돈에 비해 저울에 고기를 근수대로 받기 위해 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장사는 믿지지 않으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변화하는 사회현실에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인기직종의 고정된 자격증, 면허증은 사회가 나라가 인정해 주는 전문직이란 라벨이 붙는다. 이직률이 높지 않은 직장은 철밥통이라 불안하지 않은 미래가 보장되는 직업군이다. 개인에게 위의 조건이 부족하다고 실망하지 않는다. 삼대가 망해도 없어지지 않을 부모의 재산을 가진 가문이면 모든 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이것을 빽그라운드라고 여긴다.


   시장에서 물건을 샀다. 집에 왔는데 처음 봤던 것보다 아니다 싶다. 다른 가게에서 사면 더 좋고 싸게 살 수 있다면 바꾸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사람이 물건인가? 환불되고 교환될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군가의 책임하에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판에 박힌 모조이다. 누군가의 원본을 복제해서 다량 생산됐을 테니까 말이다. 이혼율이 높아가는 시대에 인조미인이 늘어가고 조건에 부합한 미인은 성형외과에서 만들어낸다. 스타들의 얼굴 중 마음에 드는 부분을 조합해서 새로 본뜬 얼굴이 된다. 비슷비슷한 느낌, 이미지가 유행한다.


  인정사정없 대기업에 이력서를 낼 수 없는 지방대생처럼 결혼을 못하는 건 뭔가 이력서에 칸을 채울 수 없어서란 말인가? 여자는 결혼이 취직이고 매해 취업률에 결혼이 포함돼서 그래프가 올라가는데 일조하고 있다. 결혼이 취직이란 칸을 차지할 때 나는 너무 놀랐다. 결혼이 쥐잡이면 그럼 남편 따라 회사에 입사하는 거네. 돈 없고 집안 배경 내세울 게 없는 집과 결혼하면 너무 쉽게 아무 데나 취직한 꼴이 된다. 고시 준비를 하느라 밤새 뜬 눈으로 공부하는데 아무 준비 없이 지인의 소개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러 중매 자리에 나간 나는 너무 성의 없고 나태한 학생이 된 기분이 다.


   이제 회사에서 가족이란 말이 일체 단결을 외치며 성심성의 것 일하기를 독려했던 말이 부담스럽게 여겨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 오히려 가족이 되는 게 아니라 부하직원이 되는 건가? 그럼 생활비에 월급이 포함된 것인가? 그것도 못 받고 맞벌이하면 남편 잘못 만나서 직장에 나오는 거란 말이 떠돌았다. 이런 의미였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에 유행하는 말은 그 시대에 마음이다. 나는 어쩌면 구시대적인 결혼의 희생자다. 그저 여자는 얌전히 있다 결혼하는 게 좋다는 친정엄마의 말을 비판 없이 수긍하는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어찌 됐건 한 푼이라도 같이 생활하면서 손을 벌리는 건 독립적이지 않다고 내심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덩치 큰 남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결혼한 것은 아니다. 만약 일찌감치 내가 그래야만 했다면 나는 분명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거고 가족 간에 여자라는 성이 주는 차별에서 치열하게 싸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은 사회적으로 그 의미는 무얼까? 평화이다. 싸우지 않고 포로가 되는 것은 죽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이다. 살기 위해 사회가 주는 고단함을 회피하게 만든 게 취집으로 잡힌 결혼의 통계가 아닐까?


    는 남편의 포로다. 아이들은 나를 이 집에 정착하게 한 볼모이다. 늘 살다 해결되지 않는 남편의 일방통행을 고민하다 결국 내가 뿌린 씨는 내가 거둬야지 누가 책임지겠어? 내 책임을 다해야지, 하고 마음을 추스르는 걸 보면 말이다. 이를 갖는 이유는 결혼과 비슷하다. 자식은 나의 또 다른 내 모습이다. 계승자이며 후계자다. 두 사람이 살면서 취미를 같이 하는 것은 공통된 관심사가 있어야 대화가 된다. 독신과 유부녀가 만나면 할 수 있는 대화는 한정적이다. 같은 연령대인데 미혼이면 남편과 사는 애로사항을 이해할 수 없다. 특히 애를 나 보지 않은 사람들과는 애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늘 위험에서 아이를 보호하려는 엄마는 미리미리 장애물을 치우지만 미혼인 사람들은 애들은 다치면서 위험을 알아가는 거라고 한다. 그 장애물이 미미한 것일지라도 엄마는 아이가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건 모성이다. 자식의 위험을 감지하는 센서가 작동한다. 우리는 이것을 교감한다고 하고 이심전심, 말이 필요 없이 통하는 정서 교환이다.


    결혼은 미지에 알 수 없지만 지금 좋은 감정이 계속 유지된다는 기대감에서 한다.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둘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애틋하다. 서로 못 보면 큰일 난 것처럼 걱정을 한다. 그리고 만나면 사소한 얘기에 관심을 보인다. 여자 친구처럼 수다를 떨고 또 다음에 만나자고 약속을 한다. 앞으로 뭐 하고 살고  어디서 살 거고 몇 평짜리 아파트가 있는지, 월급은 얼마를 받고 어디다 쓰는지가 관심사가 아니다. 왠지 너무 물질적인 것 같아 말을 꺼내지 않는다. 어찌 보면 제일 중요한데 말이다. 직선적으로 묻는다고 그 답이 진정성이 있지는 않지만 나는 어찌 살겠지 했던 거 같다. 왜냐하면 결혼할 마음이 있으니까 맞선 자리에 나왔고 우리는 내년을 넘기면 한 살 더 얹는 것이 큰 부담이 되는 연령대였다.


   돈에 구애를 받은 적이 없는 나는 돈이 얼마나 벌기 어려운지 느껴보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은 어디서나 환영하는 추세였다. 다만 보수적인 사람들은 대학을 나온 사람은 다루기 어렵다고 쓰지 않았고 연령대가 늘어날수록 혼기가 차서 얼마나 다니겠냐며 자기들이 잠깐 쓰다가 나가는 사람은 안된다고 꺼리는 눈치를 줬다. 어쩌면 그들은 사회적으로 약속이나 한 듯 암묵적으로 여자들의 사회진출을 막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더 이상 나이가 많은 여자들은 사회가 싫어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일본에서 미혼여성들에게 가정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기업에서 차단한다여성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뉴스를 봤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무리 똑똑해도 여자가 결혼을 회피하는 건 어디 모자란 거 아닌가? 하는 눈길을 준다. 인기 있는 남자는 그 진가를 알아보는 여자들이 일찌감치 채가듯 인기 있는 여자는 누군가의 선택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라사랑이 지극한 이웃 중 친정아버지께 과년한 딸을 남 주어서 애국해야 된다며 아버지에게 불충자 취급을 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기분이 몹시 나빴다. 그 당시 아버지는 딸이 결혼해서 그 집에 일을 하고 애도 나아주는데 혼수까지 요구하는 세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본인은 자수성가 한 그런 부류는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를 좋아하는 남자를 도둑놈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기준에 맞는 남자는 없다고 여겼기에 결혼은 대학원을 가는 것만큼 의미를 잃어버렸다. 더 이상 기대하지 않고 내 밥벌이를 하면 그뿐이었다. 내기 나다닐 수 밌는 교통비와 학원비는 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혼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면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고 하는 구절을 학자들은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그 말은 암울한 결혼에 대한 기대를 한 이들에게 화려한 결혼의 환상을 깨게 한다. 잘 알지 못하면서 살아보면 알겠지, 하고 결혼의 문을 두드리게 한다. 결혼은 여자가 좋은 엄마가 되길 바라고 예쁜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자식은 애물단지다, 무자식 상팔자란 말을 한다.  그만큼 자식을 키우는 게 쉽지 않기 때문 일 것이다. 그러나 결혼에 비해서 결코 자식을 키우는 게 더 어렵다고 할 수는 없다. 남과 남이 만나 싸우지 않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오래 할 수 없기때문이다. 


  자식 부부의 끈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래 같이 살기 위해 결혼하면 자식을 낳는 거라 여겼다. 그 말은 자식은 둘의 혈연관계라 부부 사이처럼 헤어질 수 있는 관는 아니다. 그러니 사랑이 식어서 부부가 헤어져도 자식을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부모라고 할 수 있겠다. 헤어지면 자식이 상처를 받는다. 지지고 볶고 살바에는 깨끗하게 헤어지란 말을 하지만 헤어져도 부부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한 것이다. 도교에서 인연을 중시하던 영향으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다. 악연도 인연이고 어떻게 그 악연을 풀어갈 것인가가 인간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자식을 올곧게 키우기 위해 노고를 마다하지 않듯 배우자를 선택할 때부터 우리에게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신의, 믿음, 성실 등은 사회가 지향하는 인간관계의 방향이다. 가정은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사적인 공간이라 더 그 결과는 양심처럼 사회에 드러나지 않지만 자식이란 결과물이 모든 것을 말해주게 된다.


    만일, 각자 벌어먹고 사는데 자식까지 없다면 합심해서 하는 일이 있을까? 돈 가는데 마음 가고 마음 가는데 돈 간다는데 누구를 위해 벌 것이며 누굴 위해 쓸 것인가? 그것이 자식 없이 사는 결혼의 문제가 된다. 둘만 살기에도 벅차다고 자식을 낳지 않는 세태에 경제적 여유가 마치 자식을 낳는 이유로 포장된다면 돈 주면 자식을 낳아주는 대리모가 직업이 될 것이다. 화초를 키우는 마음으로 서로 물을 주고 관심을 갖고 얘기를 나누는 것은 중요한 취미이자 소통할 수 있는 창이다. 각자 자신의 생활만 있다면 합집합에서 공통의 흥미는 줄어들 것이다. 인력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면 결혼이란 제단에 자식이란 재물 없이 남에게 희생을, 봉사를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마귀곤충은 나쁜 이미지가 있다. 암컷이 알을 낳기 위해 수컷을 잡아먹는다. 그렇다고 암컷이 이기적으로 혼자만 잘살기 위학 그러지는 않는다. 알을 낳고 죽기 때문이다. 종이 다르고 행위가 다를 뿐 인간의 결혼은 자식을 낳아 손이 끊기지 않으려는 목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고 동물이다. 종족 본능은 인간 안에 잠재된 유전자다. 본능에는 먹는 거, 자는 거, 싸는 거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돈을 못 번다고 안 먹을 것인가? 화장실이 없다고 참기만 할 것인가? 졸린데 할 일이 있다고 자지 않을 것인가? 다 때가 있고 그때는 물때처럼 기울다 차기도 한다. 오줌은 오래 참으면 신장에 안 좋고 인간의 식의 문은 늙으면 생산의 문을 닫는다. 결혼은 마음만 맞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동거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듯 부부는 남끼리 만나 피가 섞이지 않아 무촌이라고 한다. 또한 부부는 너무 가까워 촌수를 메길 수 없어 무촌이라고 다.


   부모는 자식의 울타리다. 울타리가 된 부모가 이혼을 한다면 그 집이 어떻게 되겠는가? 자식을 봐서 헤라클레스처럼 고통스럽지만 지구를 드는 벌을 달게 받는 게 부모의 운명이다. 자식을 봐서 참고 인생이 이렇게 힘들어도 아이들 자라는 맛에 고비를 넘기는 것이 결혼이다.  어떤 아기가 탄생할까 기대에 차서 임신을 한다. 10달 잘 보내고 무사히 낳기를 바라듯 연애하는 사람들은 마지막 사랑이 결실을 맺어 결혼에 골인하길 바란다. 부부는 아이 키우다 보면 기대가 실망으로 변할 때가 있지만 다른 면을 보게 된다. 한 사람의 성장과정을 함께하고 그 아이의 성향을 알게 되고 나와 남편의 유전적인 기질을 이해하게 된다.


     더 이상 내가 생각한 데로 살아지지 않을 때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을 답답해하면서 상대방에게 맞춰 살아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서로 마음에 들기 위해 했던 노력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구태의연한 자기 방식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긴장감은 떨어지고 원래 살던 방식대로 둘 중 더 경제적 주도권과 말발이 센 사람이 주도하는 인간대 인간의 힘겨루기가 생활이다. 잠시 잠깐의 환상은 자기의 단점을 가리기 위한 치장에 가려있다 메끼가 벗겨지듯 세월에 찌든 때를 보여준다. 이것이 인생이다. 결혼은 인생에 문을 열고 함께 들어온 시간대에 묶여 가진 풍파를 목격할 수밖에 없는 증인이자 동조자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은 여러 분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우리는  고전소설 <주홍글씨>를 읽었고 여섯 분의 참가자들은  책에 대한 열띤 토론을 했다. 주로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견해였다. 특히, 연령이 높으신 남자분의 의견은 나를 놀라게 했다. 목사가 진정한 사랑을  위해 여인을 택해서 자녀와 행복하게 살길 바랬다. 연세가 있어서 오히려 보수적일 거라는 나의 고정관념은 깨져버렸다. 남편이 있는 여자가  사회적 직책이 있는 목사와 사랑하는 사이는 아무리 좋게 봐도 불륜이다. 그런데 목사가 노시인 자신처럼 느껴서일까? 대하게 그들의 불륜을 아름답게 생각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차도에서 새치기를 하면 욕을 하던 운전자가 생각났다. 배우자가 있는데 괜찮은 상대를 만났다고 갈아타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끼어들다가 교통사고가 나는 건 사랑한다고 결혼한 사람을 사귀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라고 대꾸했다. 너도나도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도로에서 교통질서는 무너지고 사고가 날게 분명했다. 소설에서 예술적인 걸 빼고 현실을 적용시키니 다들 반박하지 못했다.


   만일, 법제화된 남녀 간에 결혼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기호에 따른 만남이 일반화됐다면 선호도에 따라 남녀가 만나는 것이 가능했다면 분명 선택을 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너무 많은 선택을 받고 고민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받는 일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유행하는 옷처럼 시대에 조류에 맞아서 편하게 읽히는 사람 같은 느낌이다.


   나에게는 가끔 연령차가 있는 분이  다가온다. 자기 취향이라며 적극적으로 대면하는 노인을 만났다. 내 나이 40대에 노인의 취향에 맞는다는 말을 듣는 게 그다지,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나는 남편이 있고 애들 문제로 직장생활로 바쁘던 시기였다. 얼마나 행복하길 바랐으면 얼마 남지 않을 인생을 즐기고 싶어 할까? 생각하니 대단한 분이라고 느꼈다. 나 같으면 생각지 못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80은 돼 보이는 노인의 대담한 태도에 살짝 불편했지만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 수 있어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누구나  좋아할 상대를 선택할 수 있고 말을 걸어볼 수 있는 일이다. 기분 나쁘다면 미안하다며 내를 보인 그는 부인을 여의고 혼자 오래 지냈다는 말을 한다. 노인에게 취미로 할 수 있는 등산동호회를 권해드렸다.


   노인대학이 유행하는 시점이었고 노인들의 삶의 질에 대해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과학의 발전과 의료서비스의 보급으로 노인들은 장수를  누리게 됐고 몇 학년 몇 반하는 식으로 자기 연령을 학년으로 표기하먼서 노인은 젊어지고자 노력했다. 육십에 노인정에 가면 막내라고 커피 심부름, 청소를  시켜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분을 봤다. 그렇구나! 실버급 나이에 노인정에 가는 건 고령화로 연세가 많은 분들이 많아져서 나이축에. 끼지 못했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는 노인의 말에 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나는 웃으며 말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그날 입은 내 화려한 색상의 옷은 왠지  입지 않게 되었다.


  인류가 장수하게 되면서 한쌍의 부부가 검은 머리 파뿌리처럼 하얗게 쇨 때까지 사는 것은 영구 과제가 되었다. 상식적으로 한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지루한 일처럼 어렵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때는 어떤 두 노인의 오붓한 모습이 아름답게 보여서  나 또한 그렇게 사는 이 인간 된 도리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팔십대로 보이는 두 부부가 갖은 욕을 하며 거리를 지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두려웠다. 둘이 산 세월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저 나이가 돼서 애들처럼 서로를 망하 오만상을 한 얼굴로 서로에게 못마땅해서 마음에 없는 말을 주체 못 하는 어르신을 본 것이다. 주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뱉어내는 말들은 나의  미래를 전율하게 했다.

  

  친정엄마는 오래전부터 장이 움직이지 않는 병을 앓았다. 그 때문에 언니는 학업 중 친구들과 유학을 떠날 것을 포기했다. 여름만 되면 입으로 오물을 쏟고 배가 아파 배를 움켜쥐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이전부터 혼자 참아와야 했던 억울함과 서러움이 병을 키워온 거였다. 늘 같이 아버지와 등반자로 사업장에서 정신없이 살아온 엄마는  어느 날 내리막 길에서 20킬로의 우유통을 들고 내려오다 넘어졌다.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었고 뼈가 살 밖으로 삐져나왔다.  엄마는 엠블란스에 실려 병원에 가기 전 어떠한 감성적 말로도 위로를 받지 못했다. 다만, 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 화만 냈다. 그저 아픈 것도 바쁜 아침시간이어서 화가 고 늘 도와주던 일손이 멈춰버린 시점이 답답한 듯했다. 아마, 골밀도가 떨어진 연령대가 왔고 늘 하던 일이지만 힘에 부친 날이 있을 것이다. 나는 곁에 없었지만 얘기를 전해준 언니로부터 유추해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착한 딸이고 싶은 엄마는 늘 친정을 돌봐야 하는 의무감 때문에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았다. 괴팍한 아버지의 성격을  미련하게 다 받아주며 언젠가는 웃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웃으며 감내하던 모습 뒤에 아닌척해도 몸은 알고 있었고 느끼고 있었다. 말이 안 되는 억지춘향의 삶을 견뎌야 하는 심정을 말이다.


    아버지는 화를  잘 내는 습관 때문에 결국  80대 초반에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 1년, 집에서 4년을 병치례를 하다 돌아가셨다. 그동안 환자가 된 아버지에게 엄마는 살아오며 섭섭한 일들을 조목조목 따졌다. 미안하단 말을 할 때까지.  어느 날 아버지가 자신에게 사과했다고 오랜만에 보는 나에게 뿌듯해하셨다. 마치 원을 그린 인생에서 완주한 마라토너처럼 환하게 웃었다. 결과는 이혼하면 완전한 인생을 산 게 아니라 인내하는 삶을 살아내지 못한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엄마는 아버지를 보낸 5년 동안  배가 아파서 입원한 적이 없다.  돌이켜보면 결국 아버지를 블 때마다 심사가 편치 않아 생긴 병이었다. 


    결혼은 그런 것인가? 나는 자식으로서 당연하게 생각한 부모의 싦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내가 처한 결혼생활에 초점을 맞췄다. 뒤늦 다 늙어서 사과를 받아내려고 사는 삶이 가치 있는 것일까? 자기의 인생을 허비하고  동반자에게 인간의 유대감에 우러난 인정을 호소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부부의 삶은 부모 자식과의 삶과 닮아있었다.  무리 못나게 굴어도 받아주고 감싸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남남 에 자식이란 끈을 동아줄이라고 믿고 불확실한 미래를  옹다옹하며 같이 매달려 건너는 게 결혼이다.  좁은 자리에 한데 서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서로를 부둥켜안을 수밖에 없는 신문지 게임처럼 결혼생활은 애정을 시험하듯 작은 신문 쪼가리가 부부의 발아래 놓이게 된다. 갈수록 작아진 그 신문지에 서 있으려면 서로를 앉아야 가능하다. 그런데 불편하단 이유로 둘 중 한 사람이 신문지 밖으로 밀어내면 결혼에서 지는 게임이 된다.


   입양한 자식을 가슴으로 낳았다는 부모를 봤다. 그러나 부모는 친자식과의 사이에서  믿음을 주어야 하는 시기가 있다. 큰애가 청소년기였다. 사춘기 자식을 두고 있었고 질풍노도시기는 나를 시련으로 안내했다. 2년간의 시기 동안 큰애와 견뎌내야 했던 가슴 아파한 날들이 생각난다. 나는 심장이 두근거림으로 밤 12시에 밖을 배회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견딜 수 없는데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릴 수 없어 몸에 이상 증후군이 생다. 심장이 두근거게 하는 애 발자국 소리에 반응하게 되었다. 


  버릴 수 없는 엄마라는 타이틀, 가족이라는 의무감, 자식을  망가뜨리면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려고 나를 바꾸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엄마라는 탈을 쓴 의붓엄마처럼 대할 때  나도 입양한 자식을 가슴으로 낳는 사람처럼 거듭나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될 때까지 해보자 당연시했던 혈연의 질서에서 내가 정말 사랑스러운 자식을 대하듯 해보자  작정했다. 


  런데 결혼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과 사는 생활이다. 자식과는 혈연관계라고 참는데 남편과는 그게 잘 안된다. 사랑은 사탕처럼 시간이 감에 따라 녹아 작아지는데 노력해서 다시 만들 수 있을까? 이제 반대로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부모가 되기 위해 나를 설득한다. 사랑의 감정이 바닥에 떨어져 미움, 불편, 실망, 배신이 그 모습을 더럽혀서 버려져있다.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니 우리는 나이가 들었고 몸은 쇠잔해져 있다. 시작점에서 한참 멀어져 인생이라는 원을 돌려고 바쁘게 달리다 보니 아이들은 외모가 자랐지만 충분히 사랑으로 보듬지 못했다. 습관처럼 한집에 살뿐 각자의 고민을 나누지 않았다.


    혈연, 지연, 학연 등은 한국사회에서 중요산 인맥이다. 그래서 또 다른 눈에 보이지 않는 자원을 꼽으라면 우리는 지연을 말한다. 입사지원 당시 누구 추천으로 왔냐고 하는 회사에 추천서 난에 나는 당황했다. 사회초년생 시절 굽실대며 산적이 없는 나는 이런 서류 절차의 장벽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제 것 인간을 팔판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연이란 인연의 끈을 이용해 사회에 진입한다는 팁을 부모는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며 살아온 부모는 노력만큼 운도 따랐다. 사업을 해서 말아먹는 사람도 많았는데 성실함 하나로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돼었으니 말이다.  나는 부모의 그런 끈질기고 성실함 이외는 살 방법이 없다고 추측했다. 


   지연이라니? 내가 부탁할 사람들을 생각해 보니 백지였다. 마치 모르는 시험지를 앞에 둔 학생처럼 어떻게 인맥을 만드는지 몰랐다. 그 끈이 도움이 될 때 사회생활은 편안해진다. 누구의 소개로 직장을 들어갔을 때 그 사람은 오너에 에 낯선 사람이 아닌 지인의 믿음을 덧입힌 사람이 된다. 곧 어떤 보이지 않는 끈이 존재하는 것이다. 서로 간에 신뢰는 앞으로 있을 어떤 필요를 도와주리라는 기대심리다.


  런데 우리의 결혼은 부모의 소개로 만난 중매결혼이다. 부모의 끈을 우리는 빽그라운드라고 한다. 연애결혼은 정말 상대만을 보고 선택한다. 부모의 영향력보다 상대의 매력이 어필 한 케이스다. 모험 중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을 발견하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고 싶어, 잠을 설치며 오매불망 기다리는 심정이 된다. 반면 중매는 자신의 나이, 학벌, 건강, 경제력, 취향 등을 고려한 필요에 의한 선택이다. 보석은 전문가에 감정을 받아야 확실하다. 주변의 평가가 그것이다. 결혼은 중매가 됐든 연애가 됐든 가족들의 평가가 남아있다. 횡재한 기분으로 원석을 들고 갔는데 그냥 돌이라고 판명이 나면 기분이 나빠진다. 사랑에 콩 꺼풀이 벗겨지고 제정신이 돌아온다.


  결혼까지 약속할 정도로 연애를 하다 헤어진 커플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죽고 못 살 것 같더니 결혼 직전 혼수로 파투가 났다. 사랑의 감정은 돈 앞에서 힘을 잃었다. 추천서 난에 쓸 사람이 없는 인맥처럼 사랑의 감정까지 경제력에 의해 방전되기도 하고 충전되기도 하는 걸 보면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기 전까지 환상 속에 산 것이다. 결혼의 주목적은 무엇일까?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한다. 그럼 살다 보니 사랑이 식으면 결혼한 걸 후회해야 되는 걸까? 후회는 처음 선택을 바꾸고 싶은 것이다. 다시 처음처럼 되돌릴 수 있는 일이 결혼일까? 거기에 우리의 현실이 있고 불편한 진실이 있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친정엄마는 인생마라톤 너로 87년을 살고 계신다. 결혼생활 55년을  단련된 전투사로 살았다. 결혼이란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허리 꼬부라진 장수다. 여리고 부들부들하던 피부로 현장에서 억세게 살아남았다. 이제 누가 더 건강하게 살아남느냐가 승리에 월계관을 쓰는 게 결혼이 되었다. 늘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는 어머니의 어머니가 했던 말을 들려주며 오늘은 잘 넘겼다 한다. 딸의 불평소리에 불쌍하게 생각해라, 상대를 이해하고 한다. 속으로 나는 내가 부처가 돼란 말인가? 예수가 돼란 말인가? 엄마는 어쩜 결혼을 직장생활의 성실함을 유지하듯 늘 평온하게 살아냈다. 수도하는 마음으로. 나도 어쩌면 기도원이나 수도원에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언젠가는 수녀원을 추천한 적이 있다. 결혼은 늘 기도하고 참고 평온을 지키기 위해 자기와의 대화가 필요한 세월이었다.


   나는 직장생활이 한가해질 때 도서관에 나갔다. 오랜 직장생활에 다져진 스킬로 나를 제압하는 남편에게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가 나만의 방식으로 말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느끼고 있었다. 문학하는 사람들의 예리한 지성과 말주변을 탐구하고 싶어 졌다. 어눌한 말투는 녹음했을 때 부정확한 말투로 들렸고 비판하는 남편에게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는데 밑바탕에 억울함과 나를 변호할 수 없는 세월의 엉킴이 내숭을 조여왔다. 그리고 자식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왔던 일상들이 나를 더 삶에 자리를 지키게 만들었다.


  김숨작가의 《당신의 신》을 읽고 우리가 엄마를 폄하했던 일들이 신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구나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주부력은 인정해주지 않으면서 요리는 아가씨를 뽑지 않았었다. 집에서 살림지 않는 분들이 있지만 애를 낳고 먹여 살리기 위해 주부로서 매일 요리하는 것을 따라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금씩 매일 다잡은 마음이 결혼생활이고 인생 후반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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