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혁신도시의 한 공공기관. 의례적인 인사말에 생뚱맞게 '이사'라는 단어가 섞여 되돌아온다. 하지만, 낯설지 않다.
직원들은 종종 인사철과 관계없이 서울에서 혁신도시로, 또 혁신도시에서 서울로 거주지를 옮긴다. 본사가 서울에 있었을 때는 좀처럼 없던 현상이다. 대부분의 직원이 서울 또는 통근거리의 수도권 거주자였기 때문이다.
혁신도시에서의 거주 형태는 두 가지로 나뉜다. '나 홀로'와 '온 가족‘ 이주 형이다. 그 둘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자녀 교육. 중고등학생을 자녀로 둔 경우 대부분이 '나 홀로' 형을,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경우 대개 '온 가족' 형을 선택한다.
하지만 '온 가족' 이주 형도 자녀가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 고민에 빠진다. 본격적으로 대학 입시 준비가 시작되기에 마음이 급해진다. 가뜩이나 마뜩지 않은 지방 혁신도시의 교육 환경이 더욱 성에 차지 않는다.
두 아이의 아빠인 위 직원도 마찬가지. 살가운 성격으로 자녀와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가 '주중 혁신도시, 주말 서울'이라는 이중생활을 선택한 이유는 역시나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다.
아이가 공부를 곧잘 했기에 더 나은 교육 환경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비용이 다소 들더라도 수준 높은 사교육으로 아이의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목표는 의약계열 진학.
공부에 관심이 없거나 잘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마음 편히 혁신도시에서 학교를 보냈을 거라고 덧붙인다. 그의 표정에서 애써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테다.
겉으론 표 내지 않았지만 나는 내심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의/치/한/약 등 소위 의약계열 진학이 목표라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보다 지역인재* 전형을 활용할 수 있는 지방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인재 선발 의무 조항이 가장 큰 장점이다. 권역별 지방 대학은 2023학년도부터 의약계열 선발 시 40%(강원권, 제주권 20%) 이상을 선발해야 한다. 이는 기존 30%(강원권, 제주권 15%)에서 올라간 수치로, 의대정원 확대에 맞춰 더 상향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수도권 졸업생은 지역인재 전형으로의 지원이 불가능하다. 반대로 지방 고등학교 출신의 수도권 의약계열 지원에는 어떠한 제약도 없다. 일각에서 지역인재 전형이 역차별적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낮은 수능 최저 수준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학교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원활한 선발을 위해 적지 않은 학교에서 지역인재 전형에 수능 최저 기준을 달리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반 전형에서의 국어, 영어, 수학, 과학탐구 중 3과목 합 4등급 이내가 지역전형에서는 5등급 이내로 완화되는 식이다.
지방에서의 의약계열 진학이 상대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점은 통계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종로학원이 발표한 2023학년도 학생부교과전형 지방의대 입시결과에 따르면, 전국선발의 합격자 평균 내신이 1.19, 지역인재가1.27 임을 알 수 있다.
상위 70% 수준(그림에는 최저로 표현되었지만 백분위 70%가 맞다)도 각각 1.37, 1.51로 지역인재 전형이 더 유리하다. 학생부종합전형 결과도 이와 유사하다.
<2023학년도 의대 내신 70% 컷. 출처: 종로학원>
심지어 일부 수능 최저 기준이 높은 학교에서는 지역인재 할당을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1단계 서류 통과자라면 ’수능최저 충족=합격’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그러기에 주변 동료 중 혁신도시로 이주하지 않아 후회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자녀가 약대생인 한 선배 직원이 내게 토로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각각 중학교와 고등학교 입학 직전 온 가족이 혁신도시로 이사했다는 말을 건넨 후였다.
“선택 잘했다. 나도 혁신도시로 갈걸 그랬어. 그랬으면 의대도 가능했을 건데.”
실제로 그랬다. 그 자녀의 내신 평균은 1.3 수준. 수능 성적도 3합 4등급을 충족했다. 혁신도시에서 고등학교 3년을 보냈다면, 그래서 지역인재 전형을 활용했더라면 의대를 '골라' 갈 수 있었다.
물론, 지역인재 전형이 만능은 아니다. 지방 고등학교에서도 치열한 내신 경쟁이 벌어지며, 수능 최저 등급 충족을 위한 노력이 눈물겨울 정도다. 그것도 사교육 수준과 면학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다.
대입 입시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수능성적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전형, 내신이 그러한 전형, 이 둘을 모두 잘해야 하는 전형, 심지어 논술로만 입학하는 전형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지방거주 여부에 따라 활용가능한 전략이 추가된다. 더 이상 1등부터 일렬로 줄세우기해서 입학하던 시절이 아니다.
물론 그럼에도 내신이나 수능 성적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러한 기준이 충족되었다면 자녀의 목표와 상황을 고려한 구체적인 입시 전략이 대입 당락을 좌우하고 원하는 학교로의 진학여부를 결정한다.
성적이 상대적으로 낮은 아이가 더 선호되는 학교나 학과에 진학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기에 사교육이 활성화되고 교육 기반시설이 뛰어난 수도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특히, 의약계열 진학이 목표라면, 그리고 이미 지방에서 정착하고 있다면 혹은 지방으로의 정착에 제약이 없다면 말이다.
자녀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단하고 그에 따른 결정을 내린다면, 흔들리지 않고 지방에서도 자녀의 대학 입시를 충분히 잘 준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