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긍정의 힘 Oct 21. 2022

직장에서 승진해야 하는 이유

직장인의 회사 내 목표는 무엇일까?


더 높은 지위, 더 나은 급여, 더 큰 권한, 더 많은 여가 시간, 더 좋은 자기계발 기회 등 다양할 것이다.


누구나 '더 높은', '더 나은', '더 큰', '더 많은', 그리고 '더 좋은' 무언가를 꿈꾼다.  


그중 '더 높은' 지위로 이끌어 줄 승진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간절히 원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동기는 각기 다르다.


다음의 대화는 내가 그토록 승진하고 싶었던 이유를 보여준다.

(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직원 A) "어, 그래 오랜만이야."
(나) "업무 관련 미팅하고 싶은데 언제 시간 되세요?"
(직원 B) "내일 어때? 내일은 시간 아무 때나 괜찮아."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직급은 1급에서 6급으로 이루어졌다.


4급까지는 팀원급으로 일정 경력이 쌓이면 자동 승진한다. 입사 시기에 따라 대략 8~10년 정도 걸린다. 하지만, 팀장의 보직을 받는 3급부터는 그렇지 않다.


3급 승진을 위해서는 고3 수험생 뺨칠 정도의 경쟁이 심한 승진시험에 합격하거나, 최소 8년 이상 4급으로 근무하며 그 기여를 인정받아 심사로 승진해야 한다.


전자는 심한 경쟁을 뚫어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승진할 수 있으며, 후자는 시험이 없는 대신 매우 오랜 기간의 경력이 요구된다.


3급 이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둘 중 하나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4급으로 정년퇴직을 맞는다. 그런 이유로 4급에 20년 이상 머물다 퇴직하신 선배님들도 부지기수다.


3급 승진시험은 많은 이에게 '방학 중 까맣게 잊고 있던 개학 직전의 밀린 숙제'와 같다. 하긴 해야겠는데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보통 6대 1 정도의 경쟁률이지만, 허수가 없는 그야말로 '진짜배기' 수험생들이다. 산술적으로 6번 응시하면 1번 합격이다. 시험 기회는 많아야 1년에 한 번. 때에 따라서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너무 큰 나머지 두세 차례 시험에 낙방하면 아예 승진을 포기하는 직원도 속출한다.


그들은 승진을 포기한 4급, 이른바 '승포 4'가 된다. 이후 그들의 삶의 방향은 직장과 삶의 벨런스, '워라벨'로 급격히 선회한다.


이와는 다른 이유로 3급 승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직원도 있다. 승진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있는 이들로, 내가 그랬다.


내 제1 목표는 바로 '국외연수'. 입사 후, 나는 국외연수 기회가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일부 동기가 입사하자마자 승진을 위해 전력 질주했던 것과 달리, 직장에서의 내 방향성은 국외연수로 향했다.


언제 될지도 모르는 승진 시험보다는 자기계발이 확실한 국외연수가 내게는 몇 배는 더 소중한 가치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승진이 우선순위라면 국외연수는 방해거리다. 그 기간 업무를 하지 않기에,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 비해 박한 평가를 받는다. 당연하다.  


그러기에 내 머릿속에는 '국외연수=승진 포기'라는 공식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국외연수를 제1 목표로 설정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왕복 3시간 통근거리를 3년 가까이 견뎠다. 국외연수 기회가 더 높은 본사에서의 근무를 위해서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기회를 얻었고, 미국의 한 주립대학에서 업무와 관련된 분야의 석사를 받았다. 그리고 2018년 9월, 2년 만에 회사에 복귀했다.


글 서두의 대화가 2년 만에 처음 만난 직원들과의 대화다.


A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같은 직급의 직원으로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회사 건물에서 마주치면 서로 존대하고 인사하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던 정도의 사이. 딱 그 정도였다.


그는 단번에 승진시험에 합격해 3급 팀장이 되어 있었다.


2년이 흐른 시점, 잘 지내냐는 인사말에 대한 그의 대답이 짧다. 당황스럽다. 서로 존대하던 사이는 어디로 간 것일까?


3급 팀장인 그와 아직 4급 팀원인 나. 직급 차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워낙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 친했다고 착각한 탓에 반말이 툭 튀어나온 것일까?


그는 이후로도 일관성 있게 내게 반말을 시전했다. 속으로 화가 났으나 애써 태연한 척했다. 나중에 그가 나보다 어리다는 사실에 분노와 어이없음이 교차했다. 회사의 매운맛이다.


B는 나보다 한두 살 많은 직원으로, 입사 1년 후배다. 나이는 그가 많고 입사는 내가 빠른 애매한 사이로, 우리는 서로 깍듯하게 대했다. 가끔은 너무 예의 있는 듯한 그의 존대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였다.


A와 마찬가지로 그도 같은 시기에 3급 팀장이 되었다.


그런 그와 업무와 관련해 두세 번 엮인 일이 있었다. 업무 협의 과정에서 B는 줄기차게 내게 반말을 했다.


순간 그에게 예전의 존대하던 기억을 상기시켜주고 싶었으나 분위기를 망칠까 그러지 않았다. 쿨한 척 업무 협의를 했지만 괘씸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본인이 나이가 많으니 편하게 지내자라는 제안이 있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A와 B는 왜 그랬을까?'

 

본인의 직급이 더 높아졌으니 편하게 반말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원래 성향이 그런 것일까?


아이러니한 것은 사실 내가 그들보다 1년 빨리 승진 기회를 받았다는 것이다. 국외연수 1년이 지날 무렵, 나는 시험 승진 대상자가 되었다.


58년, 59년 입사자들이 대거 퇴직하면서 그 대상자가 대폭 확대되었고 내 차례까지 온 것이다.  


물론, 나는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 한창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시기이거니와 합격할 자신이 거의 '0'에 수렴했기에, 시간과 돈을 들여 한국까지 왕복한다는 것이 무모해 보였다.    


어쨌든 A와 B는 내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제1 목표를 이루었기에, 의욕 상실의 시기를 겪던 차였다. 그 둘은 내게 승진해야 할 이유를 정신이 번쩍 나게 일깨워줬다.


그리고 나도 2019년 단번에 승진 시험에 합격했다. A와 B가 팀장이 된 지 1년 만이다.


'이제 나도 반말을 시전해볼까?' 의기양양해진다.


그런데 한번 형성된 '반말-존대' 관계를 깨기가 쉽지 않다. 갑자기 같은 직급이 되었다고 안면몰수하는 것이  볼썽사납게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얼마 전, 그 둘은 같은 시기에 또 한차례 승진했다. 이제 3급이 아닌 2급이 된 것이다. 부장이라는 보직 타이틀과 함께.  


나의 소심한 '반말 시전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반말의 기회를 엿보는 대신, 나는 그 둘을 마주친다면 축하 인사를 건넬 것이다. 진심 반, 질투 반의 심정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든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내게 훌륭한 동기부여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2급 승진이 또다시 동기를 부여하지는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제1 목표 달성 이전 승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듯, 지금 내게는 다른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주말부부 독박육아라는 소임의 성실한 수행이 바로 그것이다. 수능 수험생 딸과 고 1 아들을 잘 돌보고 주중에 멀리 떨어져 일하는 아내와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큰 목표다.


물론, 이 시기가 지나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길 것이다. 그것이 승진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슬기로운 직장생활'에 필요한 덕목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유연성도 그중 하나인 듯하다. 시기와 상황에 맞게 대응하며 목표를 탄력적으로 수정하고 추진하는 것.


지금 돌이켜보면, 내 동기부여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순간순간 얼굴이 화끈해진다. 내 부끄러운 부분을 드러내는 느낌마저 든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 할 경험으로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처음으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당혹스러울 것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지언정, 당시의 내가 느낀 감정은 생생한 '찐'이었다. 당시에 내가 느꼈던 감정을 부인할 수 없다.


직장에서 꼭 겪어야 할 경험 중 하나였으며, 난 그 경험을 통해 한 뼘 성장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