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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의 힘 Oct 17. 2022

어느 직장인의 주식 수난기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이다. 스마트 폰으로 다음 포털사이트에 접속하여 뉴스를 본다. 잠을 깨기 위한 그리고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의식이다. 여전히 졸린 눈에 하품이 난다.


한 뉴스기사의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간밤에 미국 증시가 폭락했다는 소식이다. 잠이 확 깬다. 서학개미인 나는 두려워진다.


주식 앱을 연다. 로그인을 위해 핸드폰 뒷면 지문인식기에 검지손가락을 갖다 댄다. 화면이 전환된다. 마치 ‘스르륵’이라는 효과임이 들리는 듯 부드럽다. 편한 세상이다.


잠시 망설이며 크게 심호흡을 한다. 계좌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잡듯 ‘계좌’를 클릭한다. 내 계좌 상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퍼렇다. 짧은 탄성이 내 영혼과 함께 빠져나온다. 한동안 계좌에 꽂힌 시야가 흐려진다. 눈의 초점이 점점 사라지며 무념무상의 상태로 진입한다.


파란 계좌는 무의식 속에서 서슬 퍼런 비수가 된다. 그리고 내 심장 한가운데에 꽂힌다. 빠지지도 않는다.

      

처참하다. 계좌가 반토막 난 지는 이미 오래. 단순히 마이너스 수익률이 문제가 아니다. 손실 확정 전이긴 하지만 손실 예상액이 눈덩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수치다.

      

하지만 이 상황이 낯설지 않다. 이 좌절과 분노,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 그때 그 기억이 떠오른다. 14년 전, 저 멀리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발생한 ‘그놈’ 이 원인이었던 그 기억.      

 

나는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주식에서 큰 손실을 겪었다. 계좌는 말라갔으며, 그에 비례하여 내 정신도 피폐해졌다.

<저 멀리 미국에서 발생한 사건이 내 인생을 뒤흔들어 놓았다. 출처: Squareone>

백해무익한 주식이었다. 돈 잃어, 시간 버려, 정신적으로 힘들어, 급기야 건강까지 잃을까 걱정되었다. 가공할 위력의 '4단 콤보'였다.


넉다운되기 전에 스스로, '주식 시장'이라는 경기장 안으로 급히 '하얀 수건'을 내던졌다.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으리라’라는 결심과 함께 눈물을 머금고 모든 주식을 손절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결심에 서서히 균열이 일어났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주식 폭락사태에 다시금 투자 본능, 아니 '호구 본능'이 꿈틀댔다.


그렇게 나는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주식에 또 한번 손을 댄다. 때는 2020년 3월.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내가 주식에 입성하자 폭락하던 주식은 용이 승천하듯 곧바로 급상승 기류를 탔다.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었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긴 내 계좌는 어느덧  영롱한 빛의 색으로 물들었다. 강렬하고도 정렬적인 빨간색이다.     

    

빨갛게 잘 익은 계좌를 수확했다. 소액이지만 100% 익절이다. 행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바로 상대적 박탈감이 나의 가슴을 후벼 판다.


자고 일어나면 몇 억씩 오르는 부동산, 몇 배씩 점프하는 코인, 연일 상한가의 주식. 투자 혹은 투기 성공스토리가 뉴스매체, 유튜브 등 각종 언론 매체에 도배되었다.

      

대한민국이 거대한 투기판이 된 듯하다. ‘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라는 단어에 이어 급기야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 벼락거지가 바로 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더 이상 소액의 익절에 만족할 수 없다.'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저기에서 돈을 끌어보아 통 크게 주식에 밀어 넣었다. 비이성적인 투자라는 것을 알지만 '인생은 한 방'을 되네이며 애써 정당화한다.  


오래지 않아 폭우가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 나는 익절 한 금액만큼 계좌가 '증발'하는 기적을 만났다. 쏟아지는 빗속에 내 눈물이 스며든다.  


한동안 ‘0’ 원 사이를 오가더니 올해 3, 4월 경 누적 수익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건 아니야. 분명 방법은 있을 거야.' 속으로 해결책을 강구한다. 하지만 개미가 궁리해봐야 답은 뻔하다. 물타기. 즉시, 물타기 신공에 들어갔다.


효과가 신통치 않다. 물타기에 물타기를 더한다. 그러자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났다. 물 한 바가지에 한 바가지를 더하니 내 계좌는 폭포수가 되어 더욱 빠르고 힘차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알라스카 Nugget 폭포 수 사진. 내 주식계좌를 형상화 한 듯 하다. 2017년 직접 찍은 사진>

'용의 승천'을 바랐건만 시원하게 내다 꽂는 '폭포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교과서에 그대로 나오는 전형적인 개미의 패턴이다.       


그렇다고 좌절할 수는 없다. 시련은 필수다. 한없이 오를 수 없는 것처럼 한없이 내릴 수도 없는 법. 이제는 시간과 멘털과의 싸움이다.


14년 전, 손절하지 않았으면 여러 차례 좋은 기회를 맞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정신적 고통을 견딜만한 정신적 체력이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비록 당시보다 배 이상 큰 손실을 기록 중이지만 견딜만하다. 주식은 언제나 우상향 한다는 믿음과 함께, 든든한 아군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아내다.

     

사실 이번 손실은 처음부터 아내와 상의 하에 이루어진 투자의 결과다. 14년 전, 혼자 삭혀야 했던 분노와 좌절을 이제는 아내와 함께 나눈다.


꽁꽁 숨겨야 했던 손실을 이제는 당당하게 아내와 공유한다. 자수하여 광명을 찾은 기분이다. 아니, 자수할 필요가 없다. 아내가 공모자이기 때문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던가!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일단 후자, 즉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을 몸소 체험 중이다. 물론, 그 절반의 슬픔은 아내의 몫이다. 말그대로 아낌없이 나누고 있다.


이제는 그 명언의 전자를 느끼고 싶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시퍼런 계좌가 검은색이 되고 빨갛게 물드는 날이 오면 말이다.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꼭 느끼고 싶다. 진하고 강렬하게.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늦더라도 꼭 와줬으면 좋겠다.

    

그때는 슬픔이라는 짐나눠 진 아내와 그 기쁨을 함께 누리리라.


두 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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