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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우리 Apr 02. 2022

이건 꿈일 거야. 악몽.

탈주범 김까망

까망이가 들어있는 이동 가방을 둘러메고 영옥이 산책에 나선 와이프에게 전화가 왔다. 휴대폰에  번호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했는데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까망이 잃어버렸어 빨리 나와봐!"

며칠 전부터 가방 산책을 시작했고 목줄과 하네스를 하면 짧은 거리도 제법  걸어서 까망이와 영옥이 둘을 데리고 나갔다고 한다. 잠시 바람을 쐬어주기 위해 가방에서 꺼낸 까망이영옥이줄이 엉켜버렸고 푸는 과정에서 줄을 놓치고  것이다. 이미 빠르게 뛰어나가며 시야를 벗어난 까망이는 아무리 불러도 돌아오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다고 한다.

재택근무 중에 전화를 받자마자 켄넬을 들고 잃어버린 장소로 뛰어가는데 이 상황이 마치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까망이가 하네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산으로 갔다면 분명 리드 줄이 어딘가에 걸려 옴짝달싹 못할 것 같아 일단 사람이 덜 가는 산책로 주변으로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까망이의 특성을 잘 아는 보호 단체에 연락을 했다. 입양 심사 시 절대 조심하길 당부했던 상황이 벌어져 단체 관계자분들을 볼 낯이 없었지만 그보다 까망이의 구조가 시급했기에 최대한 많은 인력과 관심이 필요했다.

예상대로 수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리드 줄이 나무에 걸려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까망이를 발견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안심시키려 했지만 나를 발견한 까망이는 뒷걸음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하네스가 벗겨져버렸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까망이는 그 길로 주택가와 대로를 오가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줄을 놓친 봉제산에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목동의 용왕산까지 까망이는 쉬지 않고 뛰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앞만 보고 뛰어가는 까망이 따라 그 거리를 한 손에 켄넬을 들고 쫓아갔는지 모르겠다. 용왕산 산책로 입구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자취를 감춘 까망이를 찾기 위해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다수의 구조 경험이 있는 단체 회원분들의 조언에 따라 일단 전단지 작업에 들어갔다. 정신이 없을 나와 가족을 위해 빠르게 전단지를 만들어 출력해 와 주신 회원분들의 도움으로 근처 주택가와 용왕산 산책로 주변에서 신속하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과 까망이를 최초 구조하셨던 분들, 그 밖에 근처에 사시는 회원분들이 밤늦게까지 전단지를 붙여주셨고 한편에선 SNS 및 당근 마켓, 맘 카페와 같은 지역 커뮤니티에 까망이 소식을 끊임없이 공유해 주셨다.

다음날, 두 건의 신뢰 있는 제보가 들어왔다. 용왕산의 반대편 끝에 있는 약수터와 절 근처에서 까망이를 보았다는 제보였다. 까망이를 본 시점이 잃어버린 당일 늦은 저녁이었고 생김을 정확하게 설명해 주신 것으로 보아 까망이가 확실하다 생각하여 주변으로 전단 작업 구역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낮으로 목동 아파트와 염창역 주변 주택가 그리고 용왕산 내부에 전단지 작업을 하면서 제보를 기다린 며칠 후 당근 마켓에 결정적인 제보가 들어왔다. 용왕산에서 멀지 않은 경인초등학교 앞에서 까망이가 차도를 지나고 있다는 제보가 사진과 함께 올라온 것이다.

경인 초등학교 앞 제보 사진

잃어버린 후 처음 까망이의 생사를 눈으로 확인하게 되자 마치 바로 구조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정신없이 제보 장소로 달려갔다. 이미 제보를 보고 10여 명의 회원 및 근처 주민분들이 나서서 까망이를 수색 중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이 상황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거라곤 생각 못 했다. 경계가 심한 까망이는 많은 사람들을 피해 경인초등학교 내부와 건너편 풀숲을 오가며 이리저리 도망 다녔고 심지어 고속도로 진입로 부근에서 차량에 치일뻔하는 아찔한 상황을 반복하다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제대로 된 구조계획 없이 무턱대고 달려가 수색한 나 자신이 다시 한번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눈앞 인도에서 눈이 마주 추졌음에도 도망쳐버린 까망이가 원망스럽다가도 그래도 다치지 않고 나타나 줘서 고마운 마음이 쉼 없이 교차했다.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는 까망이

이후 전문 구조팀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고 지인이 알고 지내는 구조팀인 리버스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구조팀은 사라진 풀숲 근처에 치킨과 삼겹살같이 까망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놓고 그 주변에 밀가루를 충분히 뿌려서 어떤 크기의 발자국이 남는지 지켜보자고 했다. 그냥 돌아서기에 아쉬움이 남아 영옥이와 반달이(평소 까망이와 잘 지내던 친구), 그리고 도움을 주셨던 근처 주민과 회원분들과 남아 새벽까지 돗자리를 깔고 마치 소풍 나온 것처럼 기다렸지만 끝내 까망이를 볼 수 없었다. 다음날 확인해 보니 일부 음식들이 사라져 있었고 까망이 발 크기 정도의 발자국이 몇 군데 보였다. 희망을 갖게 된 우리는 이후에도 며칠간 사료와 물을 놓아두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고 또 다른 제보가 들어왔다. 11시가 넘은 늦은 밤 안양천 둑길에서 운전 중에 까망이를 보았다는 제보였다. 이번엔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구조에 도움을 주실 몇 분에게만 알리고 제보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아무런 미동 없이 언덕에 앉아서 우두커니 차도를 바라보고 있는 까망이를 발견했다. 제보 위치는 지난번 경인초등학교와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다. 물을 먹으려 안양천에 갔을까? 이 대로는 어떻게 건넜을까? 수많은 걱정과 함께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스스로 되뇌었다. 일단 영옥이와 함께 주변을 산책하듯 지나갔다. 안양천 위와 대로변 인도를 수차례 오가면서 전혀 부르거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숨어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풀숲에 내 옷가지와 함께 사료와 물을 놓아두었다. 멀리서 무언가 다가와 사료 위의 간식을 먹는 것을 보았고 그 이후로 한참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이후에도 며칠간 사료와 물을 놓아두었고 간혹 없어진 것을 확인하며 까망이가 먹었길 간절히 바랐다.

안양천 제방에서 차들을 바라보는 까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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