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범 김까망
까망이를 잃어버린 후 일상은 매우 규칙적으로 변했다. 아침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목격 위치 근처에 놓아둔 까망이의 사료와 물을 점검했다. 출근할 땐 SNS로 끊임없이 정보를 공유했고 퇴근 후엔 따릉이를 타고 목동 일대와 안양천 부근에 전단지 작업을 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신목동역 염창역 출구에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했다. 집에서 간단히 밥을 먹거나 밖에서 김밥으로 배를 채웠고 밤늦게 돌아와 씻고 잠들기를 반복했다. 제보 장소에 놓아둔 사료가 남아있으면 불안해했고 누가 먹었는지 모를 깨끗한 그릇을 보고는 안도해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가끔은 그렇게 사람을 싫어하는 까망이가 지금 오히려 자유롭고 행복할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와 와이프는 점차 말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어떤 농담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밖에서 굶고 있을 까망이와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영옥이를 생각하면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분명 까망이도 우리를 찾고 있을 거라는 확신에 찬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실종 후 열흘 가까이 되었을 때 기다리던 제보가 들어왔다. 목동 홈플러스 부근에서 까망이를 발견했다는 제보였다. 밤 12시가 훌쩍 넘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작은 실마리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혼자 차를 몰고 근처로 달려갔다. 한 곳에 정착한 게 아니라 이동하는 상황이라면 어차피 혼자서 구조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동하면서도 막막했다. 목동 홈플러스와 SBS 건물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돌자는 생각을 하던 그때! 도로 옆 인도에서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걷는 까망이를 발견했다. 급하게 차를 돌려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잠시 기다리니 까망이는 무엇에 쫓기듯 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최대한 조용히 쫓아갔지만 경계심이 큰 까망이는 인기척에 놀라 아파트 단지 방향으로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더 이상 늦추지 말고 구조작업에 들어가야겠다 마음먹게 된 것은 마지막으로 받은 결정적인 제보 때문이었다. 홈 플러스 부근에서 목격된 후 며칠이 지나 당근 마켓에 제보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 위치가 처음 까망가 발견되었던 경인초등학교 근처의 아파트 단지였다. 불현듯 까망이가 경인초등학교 앞 풀숲을 벗어나지 않고 이곳을 기점으로 돌아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나는 와이프와 함께 영옥이를 데리고 제보 위치 주변을 수색했지만 까망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는 집에 돌아가기 전에 경인초등학교 앞 풀숲에 차를 대고 무작정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렇게 십여 분이 지났을 무렵, 첫 제보 당시 나와 눈이 마주쳤던 바로 그 풀숲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까망이를 발견했다. 조금 지쳐 보였지만 다행히 다친 곳 없이 건강해 보였고 나는 조용히 차 안에서 바라보며 이제 구조할 시기가 되었음 직감했다. 그날은 일단 무심하게 근처에 사료와 물을 놓아주고 돌아왔다.
다음날 와이프에게 소풍을 가자고 했다. 장소는 경인초등학교 앞 풀숲. 우리는 치킨과 과자 등 먹을 것과 켄넬을 챙겨 해가 질 무렵 오후에 돗자리를 깔았다. 마치 자주 가는 운동장에 온 것처럼 영옥이 포함 세 가족은 하하 호호(일부러) 하며 떠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우리끼리 떠들던 중 잠시 허리를 피기 위해 일어나려 할 때 저 멀리 뒤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까망이를 발견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일부러 영옥이의 줄을 길게 늘이고 미리 발라둔 순살을 무심한 듯 주변에 뿌렸다. 내 뒤 상황이 너무나 궁금했지만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려 보지 않으려 애썼고 까망이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며 정면에서 보고 있는 와이프가 전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사할 만큼 가까워진 까망이와 영옥이는 서로의 냄새를 맡고 알아보기 시작하자마자 정신없이 반가워했다. 한참을 신나게 간식을 받아먹으며 놀던 까망이는 이제 안심이 되었는지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간식을 받아먹으며 쉬기 시작했다.
잃어버리기 전 까망이는 이동을 위해 켄넬을 앞에 두면 안전한 공간이라 생각하는지 스스로 잘 들어가곤 했다. 주변을 천천히 돌아다니면 잘 따라오고 사람이 지나가면 경계하면서 짖는 행동을 하는 게 영락없이 운동장에서 하는 행동이었지만, 평소와 달리 켄넬이 있어도 들어갈 생각을 안 했다. 우리가 사라지면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도 있고 어렵게 만났는데 길바닥에 놓고 올 수 없다는 생각에 우리는 결국 노숙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전문 구조팀에 포획틀을 통한 구조를 요청했다. 구조팀은 밤새 까망이 곁을 지켰다는 말에 추석 연휴가 시작하는 날이었음에도 다음날 아침 일찍 달려와주셨다. 우리가 까망이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풀숲 반대편에 대형 포획틀이 설치되었다. 설치가 완료된 후 까망이가 따라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영옥이와 함께 먼저 포획틀 안으로 들어가 돗자리를 깔자마자 까망이는 아무런 의심 없이 포획틀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구조팀은 멀리서 카메라를 통해 지켜보다 순식간에 포획틀의 문을 닫았고 그렇게 까망이의 탈주 행각은 12일 만에 일단락되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지옥 같은 나날들이 이렇게 마무리되자 안도감과 함께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행히 까망이는 살이 조금 빠졌을 뿐 큰 외상 없이 건강했다. 살이 빠진 건 까망이뿐만 아니었다. 나와 와이프도 그간 자전거를 타거나 하루에 수 킬로씩 걸으며 전단지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몇 주 후 결혼식을 위해 꺼내 입은 맞춤 예복 바지가 흘러내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까망이 구조 과정에서 여러 지인과 얼굴도 모르는 주민분들께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빨리 찾길 바라며 다른 작업 제쳐두고 먼저 전단지를 출력해 주신 인쇄소 사장님, 많은 민원 속에서도 빨리 가족품에 돌아올 수 있도록 일부러 전단지 수거를 늦춰주신 용왕산 관리사무소 직원분들, 전단지를 받아 들고 찾을 수 있을 거라며 외쳐준 어린아이, 멀리서 달려와 위로와 함께 손잡고 응원해 주신 보호단체 회원분들, 직접 시간 내어 전단지 수백 장을 붙여주신 이웃분들, 온라인상으로 끊임없이 소식 공유하고 관심 가져주신 얼굴도 모르는 친구들, 직접 연락 주셔서 흔쾌히 기사를 써주신 남형도 기자님,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어 죄송하다며 격려와 관심 가져준 TV동물농장 팀 그리고 추석 명절 준비는 제쳐두고 서둘러 구조 작업하러 와주신 리버스 구조팀까지. 하나하나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 속에서 진한 감동과 인류애를 느낄 수 있었다.
까망이를 구조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눈앞에 까망이를 두고 오는 것이었다. 분명 내 주변에 있는 것 같은데 성급하게 수색하면 도망쳐버릴 것을 알기에 여러 차례 멀리서 바라만 보다 돌아오길 반복했다. 그때마다 다른 곳으로 도망 치진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에 잠을 설치고 낮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온갖 감정이 요동치는 순간마다 옆에서 함께해 준 영옥이가 있어 너무나 든든했다. 혼자 집에서 까망이가 보고 싶다며 영옥이를 끌어안고 펑펑 울기도 했고, 늦은 밤 제보에도 까망이를 찾기 위해 함께 수색을 나갔었다. 그리고 구조 순간엔 까망이가 우릴 알아보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까망이가 구조된 날 밤 천둥번개와 함께 요란한 비가 쏟아졌다. 돌이켜보니 까망이를 잃어버린 후 한 번도 비가 오지 않았다. 쏟아붓는 빗소리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사람이 그렇게 무섭고 싫어도 천둥소리에 패닉이 오면 다가와 안기는 이 아이를. 단 하루만 늦었어도 밖에서 무서워 덜덜 떨며 혼자 밤을 지새웠을 이 아이를. 이렇게 무사히 돌려보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