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대한 기억
기억은 객관적인가. 기억은 공정한가. 객관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나의 기억은 늘 중립적인가.
역사를 헤쳐온 사람들에게 '기억'은 전쟁이다.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같은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늘 첨예하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설 연휴동안 쌓아놓고 읽은 몇 권의 책이 공교롭게도 모두 일제강점기 즈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불호텔의 유령'은 그저 킬링타임용으로 집어든 책이었지만
정작 무게감은 상당하다.
인천의 낡은 대불호텔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그것이 아닌 것 같다.
1950년 전쟁이 터지자 마을에 좌익 청년단이 만들어지고, 도끼를 드는 사람들이 계속 바뀐다. 세상이 바뀌는 건지, 사람들이 바뀌는 건지, 여튼 도끼를 든 사람들은 자꾸 바뀌었고, 그 결과
기회와 선교를 위해 우리 땅을 찾았던 선교사와 화교들이 대불호텔에서 섞이면서 욕망도 뒤섞인다.
그들이 남겨놓은 희망같은 것과, 이 땅에서 저마다 상처받은 사람들,
그 영혼들이 사라지지 않고 대불호텔에서 다시 뒤섞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다.
누군가의 편에 서서 소설을 읽는다면, 다시 처음부터 읽어내려가야 할지도 모른다.
나머지는, 스포일러가 될까봐 글을 아낀다.
죽음이 한스러운 영혼이 만약 유령이 된다면, 우리 땅은 유령으로 득시글거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