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장편소설-여성 3대의 이야기
요즘 여성 소설가들이 부쩍 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몇년 전부터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글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도서관에서 끌린다 싶어 집었다 하면 여성 소설가들이다. 심지어 골라 읽기도 한다. 만족도가 꽤 높다.
'밝은 밤'은 그 어떤 배경 없이 펼쳤다.
주인공은 얼마 전 이혼을 했다. 슬쩍슬쩍 내비치는 개인사가 궁금증을 일으킨다. 옆집 사는 누구, 친구의 건너 친구의 이야기처럼 대놓고 "어떤 일이 있엇다고??"라고 물을 순 없지만 슬쩍 귀를 갖다대는 느낌처럼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엄마와의 갈등, 남편과 헤어진 이유, 그래서 지금 이 작은 도시에 자리잡고 살아가는 이야기까지.
이혼을 하고 서울을 떠난 주인공은
어린 시절 몇 주 머물렀던 할머니집이 있는 소도시 희령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낡은 아파트로 들어가 입주하며 살았는데, 거기서 예기치않게 할머니와 맞닥뜨리게 된다. 할머니는 그저 편안한 관계로 이웃보다 조금 더 진한 느낌으로 만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할머니를 둘러싼 이야기를 듣는다.
주인공-엄마-할머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다. 백정의 딸이었던 할머니의 엄마가 아버지와 만나게 된 이야기와 그로 인해 만나게 된 새비 아저씨 부부. 그 스토리는 결국 주인공에게까지 흘러들어온다.
주인공은 억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보다는, 할머니에게 툭툭 묻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행시킨다. 미지근할 정도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속도가 참 좋다. 이야기의 속도와 전개 방식이 엇비슷해 자연스럽게 스민다.
할머니의 엄마가 이북에서 대구로, 그리고 희령으로 피난오면서 겪어야 했던 이야기는 한국사를 관통하고 있고 할머니가 만났던 사람들은 그 역사의 너비를 보여준다. 이야기를 슬며시 건네지만, 날카롭다. 그래서 역사의 칼날에 베여 상처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히로시마로 큰돈을 벌러 간 희자 아버지, 대구로 피난와서 일찍 죽은 희자 어머니, 대구에서 만난 할머니.
어쩌면 그 많은 명사로 끝날 법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침잠해들어가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나도 문득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저 잊혀지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은 많은 이야기들을 이미 들려주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적는 것은 나의 몫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깜냥이 될까. 문득 그런 생각에 잠기게 되는 소설이다.
섣불리 화해를 하지도 않고 이유없이 불화하지 않는다.
그저 속도가 조금 안맞거나, 각도가 어긋났을 뿐이다.
그래 그렇게 믿자. 그 각도를 어그러뜨린 역사의 소용돌이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