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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채집가 May 12. 2022

(나에 대한) 추앙 일지

-feat.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와 나의 상관성


'날 추앙해요'. 

추앙은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의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추앙하라니, 뜬금없는 관계 설정이다. 드라마 안에서 손석구와 김지원의 관계 말이다.

내가 한번도 채워진 적 없으니 추앙하라니.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드라마를 볼수록 점차 빠져든다. 냥 막연히 그 존재 자체를 응원하게 되는 사랑의 한 측면을, '추앙'이란 단어로 표현한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본다. 각종 계산과 경우의 수를 따지는 요즘 사랑 말고, 사랑 그 자체가 어쩌면 진짜 추앙이 아닐까.  


제멋대로 구겨질 대로 구겨진 사춘기 시절, 나를, 또는 내가 추앙하는 상대가 찾아온다. 바로 첫사랑.

대부분 첫사랑은 딱히 이유가 없다. 주로 10대나 20대 초반 이전에 경험하게 되니, 계산이 별로 없다. 

그냥 '막연히 죽을만큼' 좋다는 것이 첫사랑의 이유가 되곤 한다.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더듬이를 세우고, 그 사람을 발견하면 쿵, 하고 마음에 그늘이 만들어지는 사람. 한때 멍처럼 자리한 사람. 아직도 한여름 그 사람 위로 내리쬐던 햇살이 매우 반짝였다는 사실이나, 신입생이 되었던 3월에 입었던 흰 바지의 눈부심 같은 것이 기억난다. 정식으로 사귀어보진 않았지만 그런 마음이 건조한 나에게도 있었다는 자체가 작은 위안이 된다.  메마르고 건조한 사막같은 나도, 한때는 말랑한 마음이 있었다! 



어쩌면 구겨진 나를 조금이나마 펴주고, 텅텅 비어있는 것같던 나를 조금 채워준 것은 그들의 추앙 덕분이 아니었을까. 푹 젖은 채 세상으로 갓 나온 새같은 나를 말려준건, 추앙이라는 바람이자 햇살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를 감명깊게 보고 있는 나는, (나에 대한) 추앙 일지를 써보려고 한다. 



1. 고등학교 시절 어떤 남자 선배

한때 시를 쓴다고 인생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깡소주가 인생의 아주 중요한 맛인양 마셨던 날들이다.  어느 겨울에 그 선배와 식당같은 술집에서 마주쳤다. 거기서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소주를 계속 들이켰다. 나도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마지막에 일어나서 집으로 가려고 나설 때, 그 선배가 두르고 있던 체크무늬 목도리를 풀어주었다. 그러곤 헤어졌다. 

그런데 그 목도리는 정말 무지막지하게 냄새가 났다. 난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선배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걸 확인한 순간 목도리를 가방에 쑤셔넣었다. 그 목도리는 얼마 안가 버려졌다. 

그 선배가 좋다고 한적도, 내가 좋아라 한적도 없지만 그 장면이 생각나는 걸 보면, 일종의 추앙 아니었을까. 그 선배의 드라마 남주 흉내일수도 있지만.

추운 겨울밤 따뜻한(그러나 냄새나는) 목도리를 벗어줄 수 있는 정도의 작은 추앙. 나 혼자 추앙이라 단정지어본다.


2. 대학교 1학년 때 남자 동기

그 시절 삐삐가 가장 트렌디한 소통 수단이었다. 술을 마시다가도, 집에 있다가도 삐삐가 오면 전화를 하거나 음성 사서함을 듣곤 했다. 공중전화엔 삐삐를 들고 기다리는 줄이 늘 길었다. 486, 7942, 8282같은 숫자가 찍혀있기도 했다. 

1학년 12월 초, 음성사서함을 들으면 음악이 나오곤 했다. 하루, 이틀 계속됐다. 누구지? 괜한 설렘이 차올랐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누군가 나에게 고백해줄거 같았다. 

그런데... 기억이 안난다. 다른 단과대학 동기였던거 같은데... 고백 비슷했던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이런이런... 그것도 추앙이라 치자. 


3. 다른 과 선배

2학년때였나... 다른 과 학생회장 선배가 나를 좋아했었다. 제법 치기어린 고백같은것도 했던거 같고 집안 자랑?같은 것도 했던 거 같다. 난 그냥 그런 상황을 즐겼었지. 얼굴이 무척 하얬다는 것과 안드레아 보첼리 시디를 선물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선배의 나를 향한 짝사랑은 얼마 가지 않아 끝났는데, 난 그게 무척 의기양양했다. 


4. 우리과 동기

남자 동기가 있었는데, 참 친하게 지냈다.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던 그가 맨날 밤마다 술을 먹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 난 그 남자 동기와, 그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 동기를 연결시켜 주기 위해 몇번 노력을 했다. 하지만 둘은 이어지진 않았다. 왜냐하면 그 남자 동기는 나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나는 사람이나 사랑을 크게 믿지 않고 그닥 감정이 풍부하지 못해 제대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추앙을 나는 맘껏 즐겼다. 뭘 부탁하면 금방 해주었고, 그 동기가 다른 여자를 사귀다가도 내가 살짝 내쪽으로 당기면 당겨오기도 했다. 평생 나만큼 좋아하는 여자를 만날 수 없을거라 해주었다. 그 말은 진심으로 추앙이 되었다. 덕분에 구겨진 나의 어느 구석이 조금은 펴졌을지도 모른다. 


5. 다른 과 선배

무한히도 나를 추앙해주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말로만 하는 추앙이 아니라, 정말 헌신적이었다. 어쩌면 이 시기인지도 모른다. '추앙'을 통해 조금씩 펴지던 내가, 추앙의 한도초과로 넘치기 시작한 때가 말이다. 넘쳐서 오만해지는 부작용을 얻었다.  


5. 회사 동료

힘들고 외로웠던 순간에 묵묵히 내 말을 잘 들여주던 동료가 있었다. 그가 어느날 나에게 고백을 해왔다. 물론 새드 엔딩이었지만, 그는 나를 추앙해주었다. 별볼일 없는 나에게 똑똑하다고, 이쁘다고 해주었던 거 같다. 사회생활로 위축된 내가 조금은 채워졌다. 하지만 난 이미 오만의 기준치를 넘어 있었다. 그 오만은 한동안 지속되었지. 쯧쯧.  




생각해보니 그 이후에는 마땅히 추앙이랄 것이 없다. 

어쩌면 서로 가장 순수하게, 조건 없이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 가능했던 거 같다. 지극히 현실적인 나는 그닥 추앙을 해준 적이 없는 거 같다.  그것이 좀 미안하지만, 필요한 만큼의 추앙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받았겠지. 


그 시절, 막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 나는 그들의 추앙 덕분에 조금은 당당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그 추앙의 기억을,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되살려주었다. 

물론 나는 김지원이나 손석구처럼 막무가내식 추앙을 할 자신이 전혀 없다. 타인에 대한 문이 닫혔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는 조금 따뜻하게 다가온다. 복잡한 설명 없이도 서로를 알고 있는 가족, 선택권 없이 어릴 때부터 어쩔 수 없이 친구가 된 친구들. 늘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신다. 혼자 앉은 나도 드라마를 켜놓고 술을 마셔본다. 추앙의 추억을 곱씹으며. 


   

뜬금없는 이 조합이 마음에 든다. 나도 조금 이런 구석이 있다.  어디나 이런 존재가 있다. 투명도가 조금 높은 사람들. 

  

작가의 작품에는, 밥 먹는 행위가 아주 중요하게 등장한다. 아주 맛있게들 먹는다. 어쩌면 그게 우리를 살게 하는 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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