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 기여 = 더 큰 자유
안녕하세요. 논스 오호라에 살고 있는 캐리입니다. 2020년 3월 31일 논스에 입주하여 벌써 1년 반의 시간이 흘렀는데요.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논스도 참 여러 가지 시도를 던졌더라고요. 크립토의 성지, 미래 혁명가들의 베이스캠프, 창업가의 마을, MZ를 위한 마을 등등등
논스의 슬로건은 때에 맞춰 변신했지만, 변하지 않는 최상위 가치관은 바로 <자유>라고 생각해요. 보통 어떤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데 어느 정도 강요가 작동하기 마련이죠. 그래야 체제를 스케일업 하는데 추진력을 얻으니깐요. 하지만 논스에서는 그럴법한 상황에서도 강요(일명 잔소리)가 잘 없었어요.
그렇기에 이토록 매력적인 사람들이 한 곳에 오랜 시간 모여있을 수 있었고요. 한편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는 정말 은은하게 논스를 알아가게 되더라고요. 너무나 은은해서 끝끝내 논스를 알지 못하고 헤어지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래서 1.5주년을 맞이하여 제가 주관적으로 느낀 논스의 아하 모먼트를 끄적여봅니다.
논스를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기여로 만들어가는 마을>로 정의 내려 봤어요.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라서 의식의 흐름을 그저 늘어뜨려 봅니다. 그리고 저는 여전히 관찰자일 뿐, 논스와 저는 여전히 오해로 엮인 관계일 수 있답니다.
논스를 처음 접한 계기는 스타트업 씬에서 도는 시샘과 현타가 섞인 뒷담화였다.
"창업가의 마을이라니 뜬 구름 잡는 소리하네. 스타트업이 장난인가"
"원래 코인하던 애들이 운이 좋아 돈 벌더니 세상을 바꿀 거라는 허영심이 가득하다"
"정말 탈블(록체인)은 지능 순이다." (당시 1BTC 400만원 시절 -> 현재 약 5,000만원)
당시 오르다가 주저앉아버린 코인 가격에 저마다 사연이 있는지, 세상은 블록체인에 대해 냉소적이었다. 하지만 광고에 잘 선동되는 나는 <창업가의 마을>이라는 키워드에 꽂혀서 논스에 대해서 편견 없이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브런치 글을 읽어보니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괴짜가 있어서, 가끔 춤도 추는 낭만쟁이들에게 반해서, 홀린 듯 지원서를 써내려갔다.
한편 논스도 크립토 씬의 긴 겨울을 나면서 정체성 혼란의 구간을 겪고 있었다. 원래 정체성인 블록체인을 희석하고 <창업가의 마을>로 리브랜딩 하는 덕분에, 블록체인의 블자도 모르는 내가 논스를 선택하는 명분이 생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트로이목마 전략이라고 고증되고 있는데...
아무튼 논스와의 인연은 이렇게 서로 오해로 시작되었다.
"논스에게 뭘 해줄 수 있어요?"
"저... 배달의 민족 VIP에요. 그걸로 어떻게 안될까요?"
"에이~~~ 저희가 이거는 계속 물어볼 거예요"
논스 입주 첫날 받은 가장 첫 번째 질문이었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이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논스가 나에게 맡겨놓은 짐보따리 찾듯이 기여를 바라는 것도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엄연히 렌트 비용을 지불하는 고객인데, 더 해주겠다고 하지 않고 뭔가를 내놓으라니 말이다.
더욱이 논스는 이전에 살던 정돈된 코리빙 하우스와 많이 달랐다. 로비에 널브러진 택배 박스, 소파에서 자다가 방금 일하러 간듯한 담요의 형상, 대한민국 시간을 굳이 따르지 않고 밤늦게까지 일하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일어나는 사람들. 혼돈이 넘실대지만 잔소리하는 커뮤니티 매니저가 없었다.
논스는 빠르게 지나가고 싶은 임시거처지였다. 창업을 하고, 어엿하게 대표 타이틀을 달고, 금의환향을 하듯이 다시 스타트업 씬이라고 불리는 세계로 대표 타이틀을 달고 넘어가고 싶었을지 모른다.
논스의 마을회관 화이트보드에는 이 달의 퇴사자를 축하하는 묘한 전통이 있다. 퇴사가 KPI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다. 우선은 회사를 나와야지 창업을 할 수가 있다. 앞서 여러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논스라는 모험을 선택한 건 함께 창업할 수 있는 동업자를 찾고 싶어서였다. 회사에서 사탕수수밭 노예처럼 생활하면서도 일잘러라는 뽕에 취해 살았었다. 이제는 노예에서 신분상승하고 싶었고, 단순히 그 체제의 가장 꼭대기인 대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종종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지쳐서 나가떨어진 그 구조를 똑같이 모방하고, 꼬리칸에서 열심히 올라가서 열차의 조종석에 타면 그때 나는 만족할 수 있을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제도에 대해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왜 초기창업자들끼리만 지분을 나눠가져야 할까? 자본가는 투자로 지분을 살 수 있는데, 노동으로 기여한 사람들은 왜 지분을 얻지 못할까? 블록체인 기술로는 기존의 기업의 창업 방식과는 다른 구조를 꿈꿔볼 수가 있다.
논스에서 창업이란 것은 이 시대의 주류가 되어버린 '실리콘밸리식 스타트업'과 결이 다르다. 거대한 나만의 성을 이루기 위해 직원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지 않는다. 고객을 획득하기 위해 중독을 일으키거나 데이터 주권을 착취하는 것을 불쉿이라고 여긴다. 논스에서 추구하는 것이 창업이라는 단어로 설명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시장에서 돈 버는 법이 아니라, 새로운 체제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 논스이지 않을까?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여전히 실리콘밸리식 성장 방정식에 더 익숙해 있다. 본격적으로 Web 3.0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한참 시간이 흘러서이다.
평화로운 논스 생활 중 1호점의 주거공간이 사라지는 위기가 있었다. 지금도 부동산은 우리를 계속 괴롭히는 빌런이다. 이하 생략하는 많은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둥지를 얻은 곳이 <5호점: 오호라>이다.
"내가 호점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다들 깨끗하게 주방을 쓰도록 할게"
새로운 호점 체제를 갖추면서 호점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때 한 친구가 호점장을 자처할 때 한 공약이다. 그 친구는 호의로 한 말인데 나는 왜 이 말이 그토록 걸렸을까?깨끗함의 기준이 한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가이드가 규율이 되어버린다면? 규율을 안 지킨 것에 대해 잔소리를 받아야 한다면? 아무래도 한 명이 주도하는 호점장이라는 제도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지나고 보니 이게 바로 논스에 고여버린 모먼트였다. 잔소리가 싫었던 나는 어느덧 논스의 철학과 매우 닮아있었다. 내가 느낀 불편함을 함께하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느꼈을 테다. 그래서 1명에게 집중되어 있는 호점장이라는 제도보다 <오호라 마이닝>이라는 제도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체계를 만들어 나갔다.
논스의 KPI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퇴사입니다. 여러분의 회사 생활 만족스러웠나요? 주인이 정해져 있고 권한이 제한된 회사 생활은 안락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니체가 말하듯 군중(herd) 밖을 나오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새롭게 오호라 생활을 시작한 이후, 논스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것이 가장 돈은 안되지만, 가장 즐겁고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그럼에도 논스 생활에 순탄치 않은 일이 계속 발생했다. 그동안 논스 운영 적자 구조를 메꾸기 위한 월세 인상 감행이 있었다. 어느덧 1인실 월세가 관리비 포함 131만원이 되었다. 다인실의 월세도 80만원으로 여느 1인 오피스텔 가격과 비등하게 되었다.
가격 인상으로 인해 베이프캠프로서 논스의 역할을 잃은 것은 아쉽다. 지금 당장 돈이 안되는 모험적인 일에 도전하기가 심적으로 부담스러워진 구조다. 특히 당장 수입이 없는 멤버들이 현실적인 이유로 논스를 떠나고 "성공해서 돌아온다"라는 답변을 들었을 때가 가장 속상했다.
논스 운영진도 어느 때보다 현타의 표정이 가득해 보였다. 이럴 때일수록 커뮤니티 구성원으로서 오히려 믿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커뮤니티에 대한 믿음을 떠나 현실적으로 생각해봐도 남는 장사였다. 의외로 사람들을 만나서 교류하는데 페이드 커뮤니티에 월에 30만원 정도는 쓰고 있었다. 월세 초과분에 대해 투자 정보, 인사이트, 일거리 기회 등을 더 적극적으로 얻자고 정신승리하기로 했다.
한편 강렬하게 강남에 건물주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논스 운영진 YS에게 주기적으로 부동산 관련해서 무엇이든 돕겠다고 이따금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답을 찾은 것 같다는 희소식이 들려오는데...!
지난 1년 반 동안 크립토 두 번의 겨울과 두 번의 상승장을 지켜봤다. 원래 양치기 소년 거짓말도 3번째면 안 믿는데, 반대로 의심만 하다 두 번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 걸 보면 믿음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게 이제야 정말 크립토를 배우자는 열의에 가득 찼다. 이게 이렇게 1.5년이 걸리다니 정말 은은한 프로그레스였다.
크립토 스터디를 할수록 새로운 역사적 물결에 동참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블록체인 역사를 살펴보면 70년대 프라이버시에 권리 개척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정부는 암호학 지식의 소유권을 제한하고자 했다. 하지만 마틴 헬맨, 윗필드 디피, 랄크 머클 등 암호학을 민간에게도 개방하려는 여러 노력 끝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비트코인은 이 오랜 운동 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실험물이다.
나처럼 투자에 크게 관심 없는 사람일지라도, 혹은 크립토가 거대한 도박장이라고만 생각하신다면 이 아티클을 읽어 보기를 꼭 추천한다! 70, 80, 90, 00년대의 흐름과 암호 기술 발전의 배후에 있던 사람들
<창업가의 마을>로 유입된 사람이었지만, 지금 보니 논스랑 참 머쓱하게 안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논스는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기여로 만들어 나가는 마을이지 않을까 싶다. 논스와 블록체인 정신은 떼려야 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여전히 나와 논스의 사이는 오해 관계일 수 있다.
1. 논스에 모인 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를 원한다. (국가, 회사 등으로부터 잔소리를 싫어함)
2. 기여를 하면 커뮤니티의 가치가 상승한다. (오픈소스는 누가 시키는 게 아니라 좋아서 한다)
3. 논스 커뮤니티에 기여를 하면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다. (비록 지금은 완벽히 그 구조는 아니지만!)
4. 커뮤니티에 인풋을 하면 아웃풋이 돌아오는 구조이다. (pay forward!)
5. 국가, 회사의 체제를 넘어서서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1번으로 순환)
그렇게 1년 반 만에 임시거처지였던 논스는 삶의 터전이 되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건국의 해이던 1945년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혹은 2045년으로 넘어가서 100살을 먹은 대한민국이 아니 다른 도시에 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굳이 건국이라는 거사를 떠올리 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만큼 내가 사는 곳을 더 좋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비폭력대화>라는 책을 읽고 논스가 더 건강한 대화로 가득 찬 커뮤니티가 되도록 팟을 열어 함께 연구를 하고 있다. 독서모임 중에 SE가 커뮤니티의 이루는 3가지 꼭짓점이라며 그래프를 그렸다. 삼각형 안에는 무수한 점이 찍힐 수 있는데, 비슷한 점끼리 모여서 사는 다부족 사회가 미래가 되지 않을까? 분명 논스는 자유를 기반으로 할 테지만 여기에 공감과, 규칙(혹은 강요)이 몇 스푼씩 섞일 것이다. 논스가 어떤 점을 찍을 것인가는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1. 극단적 자유의 아나키스트 사회
2. 공감을 기반의 민주적 사회
3. 강요로 이루어지는 독재 사회
지금까지 논스와 오해로 처음 만나서, 열렬히 활동하는 마을 주민이 되어버린 사연이었다. 어떤 드라마틱 서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은은한 이 글을 누가 여기까지 읽어줄까 싶지만 빼곡히 기록으로 남겨본다. 기록이 주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얼마전 4호점 멤버인 석중님의 입주지원서를 보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해서 놀란 적이 있다. 무엇이라 특정하진 않았지만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 그리고 기록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
"심리적 기재를 프라이버시에 대한 존중 없이 마냥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너무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윤리적인 UX가 무엇 일지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원문: https://brunch.co.kr/@nonce/101
아무런 연줄도 없던 논스였지만, 나 또한 누군가의 글들로 신호가 닿았다. 마찬가지로 미래에 함께할 수 있는 부족원을 찾는다는 느낌으로 글로서 신호를 보내본다. 이런 분들이 논스에 오신다면 재밌는 무언가를 같이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1. 위대해지기 보다는 자유를 더 추구하는 분
2. 성장을 명목으로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싫은 분
3. 창업자가 떠나도 회사/커뮤니티에 조인한 후발주자에게 기꺼이 지분을 나눠줄 수 있는 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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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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