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시 춤이 추고 싶어지는 찰나
오랜만에 아침부터 린디합(스윙) 음악을 들었다. 언젠가 소셜댄스를 배우게 된다면, 야매로 브라질에서 쌈바 리듬도 익혔고 하니 남미의 느낌을 이어받아 살사를 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4년전 마주한 린디합영상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여성 댄서가 춤추다가 드레스 벨트가 풀어졌는데, 당황하지 않고 재치있게 즉흥적 안무로 받아치는 그 장면처럼 살아가자는 생각을 한 거다.
https://youtu.be/v3hvBbNFzWY?t=180
그 영상을 마주한 때의 신선함이 아직도 기억난다. 설날 연휴 마지막 날, 출근할 생각에 다음 날 회의에서 들어온 공격을 어떻게 방어하지 괴로워하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나름의 바뀌겠다는 인생관을 담은 닉네임을 정하고(정도로 살아가지 말고, 비탈길로 빠져나가도 괜찮다는 그런 의미였다ㅋㅋ), 바로 클래스를 등록하고 그러고 나서 약 한달 뒤에 회사도 그만두게 되었다.
언어의 개입이 없는 춤을 출 때 그 순간 만큼은 가장 순수해진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른 채로,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한 채, 연락처 교환 같은 훗날의 약속 없이, 주말 저녁 그 자리에 가면 만나던 사람들이 있었다. 주어진 3-4분의 순간을 즐기고 또 다음 사람과 춤을 이어간다. 그만큼 본능적이고 순수한 만남이 있을 수 있을까.
물론 사람이 모인 곳에 순수함이 유지될리는 없다. 당연히 춤이 유일한 목적이 아닌 사람들도 더 많았고, 제도와 규칙이 생기고 레벨도 생긴다. 그 곳의 사회 생활에서도 스트레스 받았던 여러 순간들도 기억에 스쳐지나갔다. 목적이 생기니까 그룹이 생기고, 레벨이 생기고, 권력이 생기고. 그런 판이 벌어졌을 때 과몰입하는 스타일인지라 그 게임에서 레벨업하기 위해 "열심히" 했다.
이렇게 춤 하나에도 인간이 모이고 결국 정치가 만들어지는 걸 보고, 린디합 창시자 프랭키 매닝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반평생 평범하게 우편국 직원으로서 살았는데, 사람들이 내가 없이도 알아서 이 문화를 100년 가까이 즐기고 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요즘은 경계없이 주인없이 만들어지는 문화의 탄생이 더 위대하다고 느껴진다. 그의 장례식 장에서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린디합을 췄을 때 그걸로 보상이 충분했을 거 같다.
프랭키 매닝의 장례식에서 춤추는 댄서들
https://www.youtube.com/watch?v=BzJyws9jI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