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할줄 알았던 3년 반 연애의 종지부.
I don't suppose I'll ever get you completely out of my heart, I don’t know.
I just know what we've got to do it right now. So please, say goodbye.
이글의 BGM: Goodbye My Baby
https://www.youtube.com/watch?v=xyUmcRkQthk
예전에 발칙한 글을 종종 썼다. 이 브런치의 첫 글만해도 연애 초기(과거형)에 과거의 연인(과거완료형)과 이별을 곱씹으며 썼던 글이니 말이다. 브런치의 첫 글 밀어주기 알고리즘이 발동했는지, 조용히 올린 글이 네이버 메인에 실리면서 단숨에 만명이 글을 보고, 시리즈를 같이 연재하자는 러브콜을 5명에게서 받았다.
내가 그 글을 쓰게 된데는 <헤어진 남자와 한달 간 포옹하기>를 쓰신 유월 작가님의 영향이 컸다. (지적인 본캐를 멀리서 동경했는데 우연히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을 읽게 되었다.) 너무 힘든 이별의 시간이 지나고 보면 벌거 아니라고 아파할 누군가와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문제는 이 발칙한 글이 바이럴되면서 당시 남자친구에 대한 동정의 시선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야심찼던 연애 연재는 마음 속에 고히 접어두었다.
그 이후로 나의 내면의 일어나는 발칙한 생각들이 잠잠해졌다. 그 전의 과거완료형 연애에서 내 자유분방한 태도에 대한 후회에서 비롯된 버그 패치였던 셈이다. 2022년 소피와 미국을 여행하며, 나의 모습이 일시적 억압이라는 그녀의 관찰이 유효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관계의 충실성에 대해 정말 많은 토론을 했고, 나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마치 은장도를 지니고 다니는 조선 여인네로 360도 다르게 변했다.
3년 반의 연애를 하면서 이렇게 정착하는 건가? 라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서로의 글의 첫 리뷰어가 되어주는 마음 한켠에 동경하던 부부상과는 대조되게, 나의 주파수의 보폭을 좁혀서 나눈 대화 속에서 이게 내가 느끼는 최고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의 단순한 강인함이 나를 보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지난 겨울 제주도에서 밤바다를 산책하다가 동년배 친구 주연이 질문을 던졌다. 결혼이 뭐라고 생각해? 나의 대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
그가 인생의 가장 힘든 언덕을 걷고 있을 때, 무겁고 버거운 마음이 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통화에서 나는 내 불안을 감당하지 못했다. 의연하게 기다릴 수 있는 자애를 가진 사람은 아닌데도, 나는 이걸 지켜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나를 포장하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내 인생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처음엔 걱정이 가장 컸고, 현실적인 문제들도 원망의 감정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스스로 끊어낼 수 없는 관계를 그가 끊어줬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사랑했던 그 친구의 강인함이다.
지난 겨울 매일 지나가던 급격한 경사의 길을 함께 뛰다가, 힘들어서 속도를 늦추고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그가 페이드아웃된 느낌이다. 함께 뛰지 못해서 미안해. 외로움을 좀처럼 타지 않는 너지만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아직도 종종 너가 내 삶에서 채워주던 작은 것들에 심장이 찌릿해. 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결국 나까지도 너를 괴롭히는 사람이라서 마음이 아파.
결국 억지로 이어지던 그 모든 것이 끊어지자 나는 다시 자유로워졌다. 마음 한켠 그 사람에게 기대왔고, 기대고 싶었기 때문에 불안을 느꼈던 거다. 그 사람이 힘들 때 내 두발로 서있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또 다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은 든다면 그건 사랑이 아닐 거라고. 나는 지금 이순간 비로소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레거시가 사라지고 다시 백지에서 내 이야기를 써내려갈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원래 자유로운 연애관과 결혼관을 가지고 있던 나는 또 재밌는 가설들을 세워보고 있다. 그 중에는 인생의 동반자가 없더라도 내가 원하는 유전자를 입양해서, 온체인으로 같이 양육해나가는 상상도 있었다. 작가로서 또 다른 재밌는 소재를 쌓아갈 수 있겠구나 하면서.
1월 나의 회고를 들으며 CarryC가 '성숙한 해방감'이라는 감상을 말해줬고 이 글의 제목이 되었다.
이번에 힘든 일을 겪으면서 법륜스님 영상 한 30편은 본것 같다. 오늘도 나의 피드에 꾸준히 등장하는 스님. 법륜스님이 시계토끼가 되어 자연스럽게 불교 세계관에도 빠지게 되었다.
요즘은 목탁 비트를 깔며 108배를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비구니가 되어 부디즘을 결합한 디제잉을 하다가 파계승이 되어 새로운 종교를 창시자가 되는 엉뚱항 상상을 하며 인재랑 클럽가는 이태원 거리에서 꺄르륵 웃어댔다.
아무쪼록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좌절에 빠지는게 아니라 당신께 기도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진정으로 품을 수 있는 그릇이 커지고, 세상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나는 동경하는 것에 아플 줄 알고 덤벼드는 짝사랑을 이어갈 인생이다. 나와 다른 것들을 사랑하고, 나를 덜어낼줄 알았기에, 나라는 팔레트에 다른 색이 차곡차곡 담긴다. 내 캔버스에 새로운 색깔을 덧대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 (2022년 하반기, 차라리 자웅동체가 되겠다며 끄적였던 글 중 발췌)
그렇게 뚜렷한 색깔이 없어서, 무엇이든 되는게 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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