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가스라이팅, 나와 남의 만족 사이

정신적 흡연 - 담배 대신에 하드락 플레이리스트

I could be any color. 


나를 표현하고 싶은 문장 중 하나이다. 어릴 때는 나의 색깔이 뚜렷하지 않았다. 대신 상황에 따라 필요한 색깔로 빠르게 변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팔레트는 주로 회사 생활이었다.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개인적 사생활을 포기해서라도 조직에 과몰입하는 페르소나가 되곤 했다. 


그러다 보니 가스라이팅에 취약한 스타일이 되었다. 굳이 상대가 엄청난 술수를 쓰는 게 아니더라도, 나 스스로 최면에 빠져버린달까. 어쩌면 다른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 헌신할 수 있다는 그 느낌에 뽕이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강력한 환각제라도 시간이 지나면 깨기 마련이다. 그리고 깨어나면서 온갖 환멸이 한꺼번에 밀려오게 된다. 2018년 여름 인생 첫 이직을 앞두고, 여느 때처럼 새벽까지 야근을 하며 듣는 노동요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놨다.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직장 생활인데, 떠나는 것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여러 압력에 목구멍과 심장 사이에 묵직한 무언가 자리 잡았다. 아- 이럴 때 담배가 피고 싶은 것이려니 싶었다. 편의점에서 담배 주문하는 것이 낯설었기에, 플레이리스트로 그 느낌을 대신하였다.


Hardrock rather than cigarette
담배 대신 하드락


플레이리스트의 가장 첫 곡이자 마지막 곡으로 The Pretty Reckless의 Miss Nothing을 꼽았다. 여기서 Miss는 그리울 게 없다는 동사로 쓰이기도, Miss Korea처럼 아무것도 아닌 여자라는 중의적 표현으로 쓰였다. 이 곡을 들으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욕망으로 살아가지 말자고 되뇌곤 한다.

 

My one mistake that I never let you down
On miss nothing, miss everything
I'll waste my time and I'll burn my mind.


The Pretty Reckless의 보컬 테일러 맘슨은 아역 배우로 시작하여, 가십걸의 제니로 크게 사랑받은 배우였다. 하지만 그녀의 후에 밝히기를 연기가 너무 하기 싫었다고 한다. 연기자로서 커리어는 엄마로부터 강요되었을 뿐이라고. 드디어 진짜 하고 싶던 그다지 힙하지 않은 장르인 하드락 가수가 된 후 자기만의 색깔을 찾고 있다.


내 유일한 실수는 누군가 실망시키지 않으려 한 것.

누군가의 아무것도 아니면서, 비로소 나의 모든 것.

맘껏 내 시간을 낭비하고, 내 마음만 잔뜩 태울 것이다.

 



이 글의 초안을 작성한 건 2년 반 전 일이다. 얼마 전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그들도 왜 변하게 되었을까?를 얘기하다 문득 잔뜩 취해 살던 이 시절이 떠올랐다. 


어떤 일이든 좁은 시야에서 과몰입하면 광광 거리며 지랄하게 된다. 그 이후 두 번째 직장 생활도 온전히 나를 버닝 했지만, 소모되는 느낌은 더 강력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줌 아웃해서 나의 좌표를 넓은 시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도 지금도 문득 내가 나를 잃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꼭 일에서만 아니더라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내가 아닌 상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그 뽕에 취하려는 것이 아닐까? 이제 줌아웃으로 모자란다. 광각 렌즈를 장착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나랑 나, 마음 들여다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