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이야기와 질문들
오랜만이에요. 여기 <시크릿테이프> 매거진 첫번 째 글이 다음 메인에 데뷔하고, 감사하게도 연애 에세이를 함께 집필하려는 분들께 메시지도 받게되었어요. 잊지 않고 매일 아침 찔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행복한 연애를 하는데, 왜 과거사를 글로 쓰냐는 애정어린 잔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매거진을 폐쇄할까도 많이 고민했네요. 그래서 꼭 연애사가 아니더라도 <살면서 느끼는 솔직한 감정>에 대한 에세이를 폭넓게 써보려고 하여요.
저는 고통이라는 감정의 파도 속에 자주 허우적거렸어요. 나를 괴롭히는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고, 객관적 원인은 무엇이고, 나를 위해 어떤 경험을 설계해야 좋은지 알고 싶었죠. 나에 대해 전지적 작가 시점(메타인지)이 잘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답니다.
여러 가지 발버둥을 쳐봤지만 사실 만사형통한 약은 없었어요. 나와는 다른 인생의 결을 가지신 심리상담 선생님의 솔루션은 저를 더 힘들게 할 뿐이었고요. 오히려 비슷한 고민을 가진 더 멋진 사람들이랑 그룹 카운셀링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죠.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코리빙 '논스'는 한국에서 볼 수 없는 꽤나 독특한 커뮤니티예요. 논스에서 삶의 현타 한 번씩 쎄게 느껴본 각 분야 덕후들이 모여서 집단 '현자 타임'을 결성했죠. 인지과학, 동양철학, 생물학, 명상, 요가의 다양한 방식을 죄다 결합하느라 준비한 2시간이 늘 빡빡했답니다.
현자타임은 나, 너, 우리, 일, 사랑,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말하면서 자기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 최종 아웃풋입니다.
원한다면 함께한 참가자로부터 익명의 솔직한 피드백을 받아봅니다.
그때 현자타임 멤버 - 다형, 영원, 정훈, 우진 - 와 함께 만든 나를 돌아보는 질문과 답변을 공유해봅니다 :) 저 혼자만 알 수 있는 감정 일기이지만, 같은 질문으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실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누구나 잘못 놓인 벽돌 두 장을 갖고 있다
그전까지 내 눈은 오로지 두 개의 잘못된 벽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 밖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눈뜬장님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그 벽을 바라보는 것조차 싫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는 것도 싫었다. 그 벽을 폭발시켜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훌륭하게 쌓아 올려진 벽돌들을 볼 수 있었다. 벽은 전혀 흉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 방문객이 말한 대로 ‘매우 아름다운 벽’이었다.
아주 사소한 실수 때문에 모든 것이 망쳐졌다고 생각한 적 있나요? 저는 그랬어요. 동종업계에서 일했던 사람과의 안 좋은 이별이 제 커리어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 불특정 다수가 그 사람에게서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들었으면 어떡하지 강박적으로 걱정했어요.
그리고 이어진 마음 질문들에서 나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모임이 끝난 직후에 혼자서 쓰고 간직했던 일기입니다. 분명히 내가 생각하는 나는 충분히 아름다웠는데 말이죠. 그때는 마음의 벽돌 2장이 왜 나를 다 망쳤다고 생각했을까요?
요즘 사람들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오히려 마음의 소리를 우쭈쭈 다 들어줘서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요 며칠 나는 헤어진 연인(과거 버전, 현재 연애 이상무)에게 복수심에 불타서 크게 한방 먹여줬다. 하지만 복수의 끝에는 지저분한 반격과 후회만 남을 뿐이었다. 한참 복수심이 가득 찼을 때, '복수의 심리학'이라는 책도 읽어봤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하게 글을 써보고 싶다.
내가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아집에서 한 발자국만 물러나도 훨씬 근사한 최후를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론은 나의 마음의 소리를 귀 기울이지만, 그 소리가 어린아이의 떼가 아닌지 현명하게 분별할 것.
nature.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행복한 사람은 동생이다.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 만족할 줄 알고, 그렇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는 조금 달랐다. 욕심 많고, 경쟁심 강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밤샘을 불사르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나를 신기하게 여긴다.
nurture. 부모님이 알려준 세상보다, 인터넷을 통해 내가 발견한 세상을 동경했다. 10대 때 나에게 큰 영향을 준 건 바로 프리메이슨이었다. 난 특권층에서 공유되는 세상의 비밀을 알고 싶었다. 프리메이슨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것, 세상을 움직이는 어떤 세력, 나도 그 진실에 다가서고 싶다는 지적 자극, 이것이 목가적으로 보내던 10대 시절을 깨워준 사건이었다.
I could be any color. 타고난 나와, 가꾼 나는 굉장히 다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색깔로든 쉽게 변해왔다. 뇌과학에서 제일 좋아하는 원칙이 <뇌의 가소성>이다. 뇌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유연하게 변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때마다 잔뜩 버그가 나지만 말이다.
인생에 새로운 컬러로 변신해야 할 때, 연애 대상을 통해 컬러칩을 쉽게 얻으려고 했던 거 아닐까? 그게 내 손에 넣어지지 않아서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던 거 아닐까? 나의 아름답지 못한 욕망을 민낯으로 맞이할 때 더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직면해야 했다.
욕망에 충실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싶지 않다. 그저 그 욕망을 혼자 힘으로는 일궈낼 자신이 없다는 것을 부끄러워 해야 했다. 내가 원하는 곳을 그 사람이 조금 더 빨리 데려다 줄 것이라 착각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관계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좌절감을 느꼈다.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음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 하는 내 고집에 질렸다. <비폭력 대화법> 책을 들고서 그 사람과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 또한 내가 이기기 위한, 내가 맞다는 변론을 늘어놓기 위한 도구로 들고간 거 아니였을까? 인생 한번 쯤 내가 그냥 한 쿠션 먹어준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현자타임은 올해 가장 외로운 터널을 건너고 있을 때 저에게 큰 도움이 된 시간이었어요. 아마 외롭다는 감정은 허상이었을 거예요. 분명 주변에 저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그저 나 혼자 하염없이 동굴을 파고 들어갔죠.
지금은 아주 쌀쌀한 겨울이지만, 마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화창합니다. 사실 힘든 시기가 지나고 여기 시크릿 테이프에 글을 쓸 일이 많이 줄었어요. 그런데 문득 옛날에 썼던 글들이 조금 흠좀무이긴 하더라고요. 기록이 너무 어두운 쪽으로만 편향될 것 같아, 밝을 때의 감정도 어딘가 잘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제가 누군가의 글을 보고 힘을 얻었듯, 고통의 구간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면 제 글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고요. 무엇보다 현자타임을 함께해줬던 다형, 영원, 정훈, 우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