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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으로 불안한
서른 즈음 이야기

탑골 공원에서도 새로운 사랑을 상상해본다.


여자친구가드디어 결혼 이야기 꺼내서
밥 먹다가 체하는 줄 알았어

때는 남자친구와 연애 한 달째 허니문 기간이었다. 함께 손 붙잡고 동네 산책을 하던 중, 길 위에서 상기된 표정의 코리빙 친구 '바른'을 마주쳤다. 그리고 결혼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했다. 연애한 지 2년 차, 바른 커플도 드디어 결혼을 논하기 좋은 서른 즈음이 된 것이다.


바른의 결혼 고민은 우리 커플에게도 순식간에 어색한 기류를 남겼다. 나야 사회적으로 결혼을 고민할 30대이지만, 20대의 그에게 괜히 분위기를 무겁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가 이 연애를 선택하면서 어느 정도 감수한 것이니까. 30대인 친구 바른도 결혼 이야기에 스트레스를 받는 마당에 말이다.


결혼 미루려는 남자, 결혼 재촉하는 여자


서른 즈음에 남자들은 결혼을 미루려 하고, 여자들은 결혼 앞에서 비참해질까? 흔한 클리셰이다. 


바른은 여자친구의 결혼 선포에 1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아직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 우리가 이걸로 헤어져도 슬퍼하지 말자'라고 전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바른이 딱히 나쁜 남자도 아니다. 지금 결혼에 골인한 많은 주변 남성들도, 여자 친구의 결혼 선전포고에 당황스러움을 토로하는 장면을 흔히 목격했다.


반면에 여자들은 결혼에 성공하지 못한 연애를 트라우마로 안고 산다. 단순히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하지 못한 것 이상의 좌절감을 느낀다. 반대로 프로포즈를 받은 여자의 인스타그램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격려를 받는다. 취업 이후로 인생의 과제를 하나 클리어한 축제 분위기이다. 


20대처럼 살면 어떠해서!

  

20대처럼 연애에 무한한 가능성을 상상해볼 수 없을까?


시간은 더 거슬러 올라가 20대 때의 나를 돌아본다. 그땐 인생의 새로운 국면마다 옆자리 사람이 달라졌다. 출국하던 비행기를 마중하는 자와 입국하는 비행기를 마중하는 자가 달라지듯 말이다. 한 편의 스토리마다 애틋했고 끝날 때마다 그만큼 아파했다. 그래도 분명한 건 내 인생이 또 다른 사랑으로 채워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한 편의 연애가 끝날 때면, 공허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에 하릴없이 섹스앤더시티를 정주행 하고는 한다. 나의 뮤즈는 단연 끊임없이 새로운 사랑에 빠질 줄 아는 사만다였다. 이번 연애는 나가리로 끝났지만, 앞으로 또 다가올 재밌는 모험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나 오십하고 빌어먹을 두살인데 이 드레스 끝내주게 입을 거다



탑골 공원에서도 사랑은 계속 흐르지 않을까?


지난 주말 이웃주민 바른의 색다른 모습을 보았다. 늘어진 티쌰츠가 아닌 잘 다려진 셔츠를 입고, 뮤지컬 그리스 배우인 양 머리까지 정갈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몇 주전 결국 헤어졌다고 하니, 직감적으로 그에게 새로운 사랑이 싹트고 있음을 느꼈다. 역시나, 언제나, 누구나, 어떻든 연애의 첫 시작은 달콤하다.


나는 바른의 전 여자친구의 새로운 사랑을 더욱 응원하고 싶다. 유혹의 기술을 장착한 언니들이 남자를 결혼으로 밀어 붙이는 개미 지옥 전략은 모르겠다. 그저 40에도 결혼이 느긋한 그들을 보고 느꼈다. 우리 여자들도 탑골 공원에서도 다시 뜨겁게 사랑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면 어떨까.


서른 즈음. 대략 연애 경력 10년쯤 되면 반복되는 연애가 지칠 만도 하다. 경력 20년 즈음에는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경력 30년쯤이 되어서도 사만다처럼 한결같이 뜨거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시작되면 언제나, 누구나, 어떻든 연애의 첫 시작은 달콤할 것이다. 




지난 가을에 썼던 글을 연말 겨울이 되어서야 서랍에서 꺼내본다. 


작년 겨울 함께 이 주제에 대해서 방구석에서 나누었던 친구가, 얼마전 로맨틱한 프로포즈를 받고 누군가와 미래를 함께 꿈꾸게 되었다. 서로 이미 함께할 걸 알 즈음, 부담주지 않는, 일상에 스며든 프로포즈였다.


친구의 지난 고민과 이번의 프로포즈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결혼이 꼭 쟁취해야 하는 영역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커플처럼 결이 비슷한 좋은 사람을 만나면, 어느 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도착하는 목적지는 아닐까? 


그게 20대든, 30대든, 40대든, 50대든, 60대든.

반복되는 사랑은 설레면서 걱정도 되기 마련이다. 

이런 좋은 감정을 왜 일찍이 정리하려 할까?

오늘의 글 마무리는 스텔라장의 Forever와 함께


https://bit.ly/3lIdPRr

이제 막 시작하는 우리가
영원을 약속해 버리는 건
어쩌면 미래의 우리에게
큰 잘못을 하는 걸지도 몰라

이제껏 영원을 약속했던
나의 과거의 모든 인연들은 끝이 났고
더 이상 영원을 약속하는 일은
없어야만 한다고 난 믿었어 

I’ll love you forever 
이번만큼은 진짜였으면 해
I’ll love you forever
너도 내 맘과 같았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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