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 감정에 대한 고찰 그리고 한달 고백 프로젝트 중단의 사연
'위기의 싱글 구간'이라는 브런치 글을 쓸 때만 해도, 나는 연애를 마치 전략 게임처럼 접근하고 있었다. 관심 있는 사람에게 먼저 고백하여 관계의 주도권을 잡고,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베스트셀러의 소재로 삼겠다는 완벽한 헤징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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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생은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 직진으로 다가온 현재의 남자친구 덕에 그 프로젝트는 시작도 못한 채 백버너로 밀려났다.이 프로젝트는 결혼을 하기 전 비슷한 또래의 결혼을 앞둔 여자들과 공동집필을 해보고 싶다.
요즘의 연애는 나의 감정 지도를 완전히 새로 그리게 했다. 과거의 연애에서 '멋있다', '지적이다'는 피드백을 듣던 내가 상대에게 '귀엽다'라는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는게 의아할 뿐이다. 7살이나 어린 사람에게서 말이다;
이전 연애에서는 내가 커리어적으로 활약할 때 멋있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내가 멋진 사람이라 좋다는 말을 주변에 하는 것도 전해듣곤 했다. 과거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서로의 비전을 나누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결국 이 친구와는 마지막에 사업을 같이하며 주로 전우애를 쌓아왔다.
이전 이전 연애에서는 '어떤 대화를 해도 지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말에 집중했다. 내가 글쓰는 사람으로서 동경했던 사람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 지지고볶고 싸우다가 마지막 한 줄기 인정 욕구가 충족되었다. 결국은 시간이 지나 결은 다르지만 그 사람과 비슷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지금 남자친구와 연애 초기에는 나의 '지적임'을 알아봐주지 않는 남자친구가 이상했다. 날 왜 좋아해?라는 질문에 지적이고 멋있어서 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었다. 왜 날 귀여워 할까 궁금해서 검색도 해보기에 이른다.
아무래도 나의 추구미는 슈퍼우먼이었다. 그래서 올해초 내가 취약해진 상태에서 누구와도 연애를 시작하기가 두려웠다. 내가 충분히 강하고 꿀리지 않게(?) 경제적/심리적 여건을 완성하고 연애를 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귀여움은 우리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고,
동시에 우리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게 만든다
- 콘라드 로렌츠
하지만 요즘은 비로소 귀여움에 적응 중이다. 귀여움을 받다보니 나의 취약성까지 인정하게 되었다. 아 돈 벌기 힘들다~ 아 막막해~ 어디서 깨지고 돌아와서는 깨갱 거리는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하루는 내가 업무적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어서 모니터 앞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그랬더니 자신이 가장이 되겠다면서 자기만 믿으라고 그럴듯하게 떵떵 거리는 것 아닌가. K장녀로서 대학도 장학금으로 다니고, 생활비도 각종 통역 알바를 참여하면서 버틴 나에게 인생에 처음 비빌 언덕이 생긴 것 같았다.
얼마전에 남자친구의 어머니, 아버지께서 남자친구를 아기라고 부르는 모습에 웃음이 번졌다. 아니 나보고 애기 취급하더니, 집에서는 스스로 아기였구나. 세상에는 귀여움도 되물림 되는구나. 나 또한 귀여움을 되물림하여 세상의 많은 것들을 귀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조금씩 배워간다.
행정 업무 하기 전에 후뚜루마뚜루 연애 이야기 하니 키보드가 신나게 쳐지는구나~ 다음 생에 태어나면 노력 없이 사랑받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는데, 어쩌면 '귀여운 게 직업'인 삶이 슈퍼우먼보다 내 천성에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벌써 다음 생에 도착해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