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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5세 치뤄야 했던 과제, 난자냉동

by Sujin Keen

오늘은 조금 프라이빗하지만, 용기 내어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드디어 여자로서 그리고 예비 엄마로서 인생의 과제를 하나 치렀다. I finally freezed my eggs! 예이.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부분도 많아서 내 이야기가 어떤 누군가에게 또 좋은 영향을 받길 바라면서 공유해본다. 나 또한 나보다 앞길을 걸어간 정민 언니가 공유해줬기 때문에 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1. 난자 동결: 과정과 마음의 변화

크게 피검사로 난자 나이라고 불리는 AMH 수치를 측정하고, 피검사 결과와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소견을 들었다. 그리고 자가 주사 시작 10일. 이때 바로 해도 되고 기존 배란일 주기에 맞춰서 해도 된다고 했다. 주사 맞는 기간 난자 성숙도를 봐가면서 초음파 검진을 하고, 채취. 난자 성숙 후 동결. 그게 전부였다.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느낌이 드는 건 과배란 주사. 스스로 나에게 주사를 놓으면서였다. 은지가 태명을 짓자고 해서 난자들이 난포에 착 붙길 바라면서 '찰떡이들'이라고 부르며 지난 2주 태교하듯 살았다. 예서가 '찰떡이 엄마' 부르면서 찰떡 선물도 사줬다. 세포 활성에 좋은 비타민D, 아르기닌 먹어가면서. 미토콘드리아 활성화를 위해 밤 10시부터 잠들려고 노력했다. 복합적인 정신과 신체 수양 덕분이었을까. 원래 예측했던 내 나이 대비 평균보다 40% 상회한 난자들 채취에 성공했다. 의사 선생님이 시술 끝나고 환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너무 안 아프게 수술이 끝나서 의아할 정도였다.


2. 시술 후, 몸과 마음에 새겨진 흔적

수술대에 올라서 마취 주사가 들어가기 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못 깨어날 수도 있지. 하지만 잘 살았다. 그렇게 눈이 스르륵 감겼다. 그리고 어떻게 걸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15분 뒤 회복실에 잘 누워 있었다. 사실 과배란 주사 부작용 중에 호르몬 영향으로 우울/불안 증세가 올라올 수 있다고 해서 가장 마음에 걸렸다. 이 날씨에 희미한 눈으로 바라보면 보이는 복근을 자랑하지 못해서 아쉽기도 했다. 배에 복수가 차서 탱탱하게 부었다. 이 정도면 임산부석 앉아도 되는 거 아니야? 할 정도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 기간 내 퍼포먼스가 낮아질 수도 있다고 미리 말해뒀다. 하지만 생각보다 정신이 너무 또렷하고, 어떤 책임감이 마음속에 올라오면서 삶의 밀도가 매우 올라왔다.


3. 미래를 향한 나만의 태교

좋은 아빠이자 홈스쿨링으로 아이를 키워낸 제이든이 지금부터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져주셨다. 그 질문이 나를 태교하듯 살게 만들었고,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기 위해서 건강한 습관 하나하나 신경 쓰게 되었다. 내가 안 지키는데 아이한테 좋은 걸 물려줄 수 없으니까.

나는 미래의 내 아이가 평온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요즘의 추구미이지 내가 태생적으로 갖췄던 무언가는 아니다. 지는 것도 싫어해서 동네 친구들이랑 이길 때까지 내 고집을 꺾지 않았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살다 보니 평온하고 담대하고 (편도체를 안정화시키고, 전두엽을 활성화..) 아이에게 물려주기 위해선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2년 전부터 명상을 하고 많은 노력을 하다가, 최근에 하나님을 만나면서 조금씩 나의 마음에 평온함의 씨앗이 깃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조금 더 나를 닮는다면 끊임없는 호기심과 맘만 먹으면 배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덤비는 근자감도 물려주고 싶다.


4. 연대와 가족의 새로운 그림

사실 나는 막 사회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때, 남자들과 대등해지고 싶었고, 체력/기 싸움(?)적으로 밀릴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성 커뮤니티의 존재가 왜 있었나 싶었는데. 함께해준 언니들이 있었다. 나도 그런 언니가 되어야겠다는 결심과. 산부인과이다 보니 수면마취 시술에 '남편'이 필요했다. 오늘 내 일일 남편으로 예은이가 함께 동행해줬다. 서울시에서 200만원까지도 지원해주고, 구체적으로 뭘 하는지, 아프진 않은지, 몸에 해롭진 않은지, 어떤 마음으로 들었는지 무엇이든 물어보살~

어떤 형태의 가족을 꾸릴지 모르겠다. 한동안은 결혼이 정말 급하다고 생각했다 (주식 양도소득세도 아낄 겸,,). 이제 이 나이의 가임력을 저장해서 시간을 벌었으니 정말 정말 정말 나의 소울메이트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치혜가 "캐리가 애를 낳으면 그건 논스의 아이야"라고 말한 것도 감동이기도 했고. 혼자서 키우는 사유리나 그걸 또 해내려고 하는 동년배 친구들도 주변에서 보면서. 이제 더 이상 어정쩡한 사람 만나지 말아야지 싶었다 하하


5. 일과 삶, 균형을 위한 탐색

주변에 젊은 창업가 친구들이 많다. 꿈 많고 열정적인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이번에 예비 엄마 체험을 맛보기로 하면서, 병원 가고 주기적으로 자가 주사 맞고 (분유 타고, 기저귀 갈아주는 건 얼마나 더 힘들 것인가). 예전엔 목표를 향해 150% 가속 페달을 밟았는데, 언젠가 아이가 태어나면 내 에너지를 이 생명과 나눠야 하겠구나가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재택을 베이스로 하면서도 일과 삶을 병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조를 만들어가는 실험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구간도 다시 오지 않을 젊음이기에! 요즘은 내가 10년 뒤, 그리고 20년 뒤에 잘 늙어가는 모습으로 살아가신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들이대고 있다. 만나서 티타임 나누고 이야기하고. 그리고 나도 한편으로 막연히 30대 중반되면 다 끝난 거 아니야?하고 두려워할 누군가에게는 조금은 안도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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