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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Jan 04. 2023

 내가 '수줍은 캣맘'이 된 이유

죄책감과 미안함

크림이가 우리 식구가 되기 전, 쿠키와 산책을  하다 길냥이를 만나면 쿠키는  하네스를 끊을 기세로 흥분을 했다. 눈치 빠른 길냥이들은 잽싸게 자동차 밑이나 은신처로 사라지고 쿠키는 낑낑거리며 그 자취를 찾아 좇기를 여러 번,  그저 허탕을 치고 마는데.

하루는 산책길에 잠시  폰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깜장 길냥이가  정말 처키 같은 사나운 표정으로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고 손톱을 세우며 쿠키에게 달려드는 게 아닌가?

쿠키도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고 나  역시 식겁하며 쿠키의 목줄을 있는 힘껏 잡아끌고 발을 구르며 고양이를 쫓았다.

강아지 파였던 나는 길고양이에 대해  무관심했는데 그 사나운 길고양이를 본 이후엔 아예 비호감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크림이가 오고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마음에 가득해지면서 길냥이를 보면  안녕~하는 인사를 건네게 되고 길냥이들도 우리 크림이와 다를 바없는 귀여운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주인을 만났더라면 안락한 집에서 우리 집 여배우 크림이처럼 온갖 까탈을 부리며 집사들의 애간장을 녹였을 텐데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크림이가 온 뒤론 쿠키도 예전처럼 길가의 냥이들에게  그다지 큰 반응을 하진 않았다.


그러던  중, 우리 집에 놀러 와 쿠키도 보고 크림이도 보고 간  S언니가 어느 날 카톡에 고양이 사진을 올렸다.  언니네 빌라 앞마당에 예쁜 얼굴로 누워있는 고양이 사진이었다. 언니말로는  임신한 것 같은데 가끔 와서 머물고 간다는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누런 줄의 냥이였는데 얼굴은 흔하지 않게 예뻤다.


빌라 경비원아저씨가 먹을 것을 챙겨준다고 했다.

단 한 번도 동물을 키워본 일  없는 이 언니는  쿠키와 크림이의 영향 때문인지? 그 냥이에게

상자도  마련해주고 물심양면  신경을 써주며

상황을 공유했다.  냥이 덕분에  언니와 더 많은 이야길 나누게 됐다.


엄마가 놀던곳에서 논다.  신기하다


몇 달 후엔  새끼들과 빌라 앞마당에 나타난 사진도  볼 수 있었다. 하루 두어 번 앞마당에 들러 놀다간다고 했다.   이렇게 길냥이들에게 신경을 써주는 맘이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나는 언니가 이 기회에 애기 고양이를 길러 "같은 반려인 동지"가 되길 바랐지만  혹시나 언니가

도저히 자신 없어하면 내가 맡을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엄마와 붙어 다니는 아기냥이를 맘대로 빼앗아 입양하는 것은 '아기도둑'일뿐이다.  

우리는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니와 수영장에서  무더위를 식히고 집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언니가 아기냥이를 상자에 담아 병원에 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언니네 마당에 아기고양이

한 마리가  움직이질 못하고 풀밭에 누워 겨우 숨만 쉬고 있어서  병원에 델고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언니가 간다는 그 병원은,  쿠키가 미용만 하고 치료는 안 하는 ㅡ개인적으로  치료는 못 미더운 병원이었다.  하지만, 나는  언니에게  그 병원에 절대 가지 말라고,  쿠키가 치료받는 다른 병원으로 방향을 틀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왜냐면 그 병원은 언니 집과 매우 가까웠고, 그리고 언니 고양이도 아닌 길냥이를 데리고 가는 중이라  더 먼 곳으로  가라고 하기가 미안했다.


그리고  설마... 했다.  

규모로는  쿠키 치료병원보다 몇 배는 크고 수의사도  스무 명 정도  있는 곳이라  어서 빨리 병원에 가서 응급처치를 받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 아기냥이는 아주  오랫동안,  순서대로  기다리다  한참 후   처치를 받았고  집에 왔다고 했다. 잠시 , 자는 줄 알았던 아기냥이에게 처방받은 우유를 먹이려는 순간, 언니는 깨달았다.

아가냥이의 숨이 이미 끊어져있었다는 걸...


병원에  실려간다는 마지막 모습....


지금도 눈물이 난다.  벌써 6개월이 지난 일이지만

사진으로만 보던 임신한 엄마냥이와  가족이 되어

마당에 있던 냥이들 그리고 혼자 버려진 작은 냥이의 모습들이 선하다.


"고양이가 죽어있어요!! 고양이가 죽었어!!"

갑작스러운 언니전화에 나도 기겁을 했다.

그 어린 냥이의 사진을 공유하며 친구들과 입양처를 찾고 있던 중이었고 이래저래 정 되면 언니나 내가 입양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병원에 간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정안되면 내가 임보를 해도  일단 카톡의  방방마다 아기냥이의  입양처를 구하고 있었다.


 나는 그 언니와 통화를 하며 꺼이꺼이 울었다.

언니의 꾹꾹 눌러도 터져나오는 구슬픈 울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우리는 너나할것 없이 부둥켜 안고 울었다.  전화였지만  

아기냥이가 너무너무  가엾어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이럴줄 알았다면 배라도 고프지않게 뭐라도 먹여서 보낼걸  그랬어...가엾어라 가엾어라.

언니의 그말이 가슴을 쳤다.


 동물을 키워본 일 없는  사람이  길냥이를 보살피기로 한 용기와 도전은 한순간에 공포와 크나큰 슬픔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한 번도 개나 고양이를 키워본 일 없는데  몇 달간 마당도 빌려주고 길냥이 아기의  치료를 위해 거금까지 쓴  그 언니가 받았을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

나였어도  병원에 다녀온 아기 냥이가 죽어있는 모습을 보는  건  너무 무섭고 놀랍고 슬퍼서 어찌할 바를 모를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인연이었을까?  그 어미길냥이는  자꾸 무리에서 쳐지는 약한 새끼를 언니에게  부탁하고 놓고 간 것일지도 모르는데.... 모든 게 내 책임 같았다.

고양이도 언니도 너무 불쌍했고 그 '빌어먹을' 병원을 못 가게  말리지  못한 죄책감이 자꾸만  커졌다. 생각할수록  뼈저리게 후회되는 일이다.

규모가 그토록 큰 동물병원에서  아무리 다른 동물들이 순서를 기다렸다 해도 응급처치를 바로 해주지 못한 시스템이 이해가 안 갔고  응급처치를 받았음에도 집에 가서 바로 죽은 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펑펑 울면서 그 병원  담당 의사와 통화를 했다.  의사도 집에 가자마자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놀라는 눈치였다. 쿠키 엄마라고 밝히고 (아직도 미용은 그곳에서 받고 있으므로 ) 어떻게 된 거냐 물었다. 유기묘라  제대로 된 치료를 하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나와 어쩔 수가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또한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고.

이미 수십 만 원의 비용을 받은 상태인데도 그 돈이 제대로 된 응급치료비용도 안 됐다는 얘기에 말문이 막혔다. 동네주민들의 반려동물 사랑으로 구멍가게  크기만 하던 그 병원은 3층짜리 24시간 진료하는 큰 병원으로 바뀐 지 오래다.

그 병원의 원장은 방송에도 자주 나오는 사람이다.

접수대에만 서너 명의  직원이 있고 수의사만 스무 명은 되는 병원에서 유기동물 치료에 적극적인 지원이 없는 것도  이번  일을 겪고 보니  괘씸했고 돈벌이에만 눈이 먼 병원 같았다.

특히나 고양이 치료에 엉터리빵터리나 다름없는  그 병원은 도대체 왜 개병원이라 이름 짓지 않고 동물병원이라 써붙이고 영업을 하는 건지  또 화가 난다. (그 병원은 우리 크림이가 고무밴드를 삼켜서 급히 갔을 때도 고양이를 토하게하는 약하나 없다며  100만 원짜리 내시경만 권했던 곳이다.)


이후에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떠올릴 때마다 가슴한쪽이 아리고 슬픈 일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주책맞게 눈물이 줄줄 난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는 까탈스러운 크림이가

안 먹는 사료를  덜어 길냥이들이 지나는 나무 밑 풀숲에  가끔씩 갖다 놓는  일을 시작했다.

그 사건 이후,  죄책감을 덜기 위해 ,그러나 길냥이들을 만나 정을 주고 또 눈물 쏟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딱 그 정도로'수줍게'하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키우지 못할 길냥이들에게 혹시나 주린 배를 채울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지금은 그 빚을 갚아나가는 중이라고, 혼자 생각한다.

그 언니에게도 , 고양이별로 너무 일찍 떠난 그 아기냥이에게도 미안해서.

근데 갚아질는지는 모르겠다....



크림이를 보면 길냥이가 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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