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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Dec 29. 2022

50대 중반에 꿈꾸는 인생 2막

소비와 투자 사이

수명이 80세라고 대충 가정해 보면, 아직도 25년이 조금 더 남았다.

지금의 생활에 너무 감사하고 만족하지만  이렇게

남은 25년을 보낼 생각을 하면 가끔 가슴이 답답했다.

아이들 뒷바라지에 집착하던  나는 솔직히 일욕심은 일찌감치 버렸다. 성취욕이 유별나 일중독자에 가까웠던 남편을 밀어주는 것도 내 몫이라 생각했다.(물론 친정엄마와 외할머니의 전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이제는 시간이 지나 그에 대한 보상을 누리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 생각했고  실제로 지난 3~4년간

후회 없이 즐겼다.  하지만 조금씩 정신이 들면서  75~80세까지 이런 패턴으로 살다 죽는 건 조금 억울할 것 같았다. 


영원지속한 즐거움은 존재할 수 없기에 뭔가를

하고 싶었지만 이거다 손에 잡히는 것도 없었다.

내 미래를 준비하자고 이제 와서 나에게 돈 쓰는 일은 아깝게 느껴졌다.  투자는 안 하면서  의미 있고 심지어 돈도 버는 일을 찾아보다가 깨달았다.

날강도 심보가 따로 없구나!  


사실 사두면 내가 쓰다가 딸에게 주고 또 손녀까지 대를 이어 즐기는 소비를 하고  싶었다.  그것도 좋은 투자지만  문제는 지속가능한 일거리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 물론 볼 때마다 흐뭇하고 나갈 때마다 즐겁긴 하겠지만  그것도 유효기간이있겠지 싶다)


그러다가  언니 따라  두 번째로 참석한  성당 미사에서  우연히  대학원 소개지를  보게 된 것이다.

머릿속에 이 공부를 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내 두 번째 인생이 꾸려지지 않을까  하는 계획이 미사 내내 그려졌고 가슴이 뛰었다. 오로지  나의 앞날에 대한 꿈을 꾸며 설레는 기분을 언제 느껴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언니는 뭐든 해야 길이 열린다는 말로 응원해 줬고

엄마  역시  박수로 격려해 주셨다.


 대학원 준비는  비밀리에 진행됐다.

ㅡ떨어질까 봐

ㅡ솔직히 붙어도 갈지 말지 모르겠어서


남편에게 운을 떼어보긴 했다.

 ㅡ나 갑자기 공부가 하고 싶어 져서 대학원 갈지도 몰라. 학비 대줄 거임?

남편이 잠시 놀라더니,

ㅡ참 신기하네.  사람이 죽기 전에 해야 하는 공부량이  있나 봐.  그렇게 죽자고 공부를 안 하더니. 일단 붙고 말해~^^


는 깔깔대며 웃었다. 얄미운 이 인간은  나를 너무 잘 안다. 그의 말대로 나는 대학입학 이후 공부를 진짜 안 했다.  

그러다 방송 작가됐다고 방송국 들어가선 자료 찾고 섭외하고  그때그때 프로그램 만들기에 여념이 없어 비우기만 했지 채울 시간이 없었다.

물론 책은 꾸준히 읽었지만  지난 몇 년간은 그나마

독서도 팽개치고 열심히 놀기만 했고 남편은 진짜 신들린 듯 즐겁게 논다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런 내가 부러웠는지  가끔 모임에 따라 나오려고 했고  실제로 술값을  내주는 조건?으로  절친들의 술자리에 가끔 합석하기도  했다.




유웨이에 들어가 입학원서를 작성하고 돈을 내고

30년 전 성적증명서와 졸업증명서를 떼는데  모든 게 모교 홈페이지에서  인터넷으로 몇백 원에 해결됐다. 이런 세상이 된지도 몰랐다니  한결 스스로가 뒤떨어진 듯 느껴졌다. 예전에 써둔 이력서도 뽑았다.

원서에 첨부할 적당한  사진이 없어서  30대 후반에 찍은 증명사진을 업로드했다.  업로드하는 것도 너무 어려워 아이들에게 부탁했더니  매우 신기해하면서 도와주었다. 엄마가 공부를 한다고?

모두에게 신기한 이 일이 용두사미가 되진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 됐다.


문제는 자기소개서. 첫 문장만 잘 풀리면 금방 쓸 텐데  뭐라 써야 될지 고민이 깊어졌다.  오랜 시간 쿠키와 크림이를 쓰다듬고 뽀뽀를 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생겼고 한 시간 만에 다 썼다.  자소서는 흡족했지만 언니밖에 보여줄 수가 없는  현실이 한이었다.  언니가 아주 잘 썼다고 '구라도 잘 친다'며 엄지 척을 했다. '거짓말'보다는  과장이 조금 된 것일 뿐이다.

다음날 우체국에 달려가 정성스레  등기로 서류를 보내고 2주 후,  드디어  면접날이 다가왔다.

생명윤리를 공부하는 대학원인만큼 나름 예상문제를  뽑아보기도 했지만 자소서를 믿고

별 준비는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최대한 어려 보이게 화장을 하고  점잖은 옷을 입고 동동거리며 면접장에 갔는데,  지원자들이 너무 젊었다. 최대로 잡아도 30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온 40대 초반의  여인이 그나마 나랑  제일 가까워 보였다.


게다가 내가 면접 1번 타자! 당황해서 이게 무슨 일이냐고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랜덤으로 정했단다.

심호흡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니 세 명의 교수님이 앉아 계셨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자소서를 토대로  수다 떨듯 진행될 줄  알았는데  솔직히 매우 불쾌한 시간이었다. 

ㅡ자기소개해 보세요.

ㅡ지원한 이유가 뭔가요

까지는 그렇다 쳐도,

ㅡ나이가 너무 많은데 공부할 수  있겠어요?

지원자 중 최연장자일 것 같아요.

ㅡ방송작가는 대중을 상대로 흥미위주로   글을 쓰셨을 텐데  우리 공부는 진지한  학문인데   할 수 있겠어요?

ㅡ대부분이 직장인인 야간대학원이라 스터디도 많고 끝나고도 바로 집에 못 가는 경우가 많을 텐데

괜찮아요?

ㅡ학업을 그만둔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 공부할 자신이 있나요?

가 주된 질문이었다.

아니 내 나이가 어때서?!


당황했지만 차근차근 대답했다. 떨어지겠다고 체념하니 또 볼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고 편안해졌다.

ㅡ안 그래도 지원자들이 어려 보여 너무 놀랐다.  그러나 이 공부는 나이 들수록  더 진지하게 할 수 있는 공부라 생각했다.  놀기 좋아하는 내가

공부하고 싶을 줄은 나도 몰랐다.

ㅡ예능작가를 한 게 아니고 자연다큐 휴먼다큐

시사프로그램만 해서 흥미위주가 아닌 늘 진지한

생각으로 글을 썼다.

ㅡ어울리는 건 걱정 안 하셔도 된다(더 잘 논다)

ㅡ나도 사실 공부가 큰 걱정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

라고 솔직히 대답했고 내가 왜  이 공부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그리고 복제와 낙태 인간존엄사 문제에 대한 나의 생명윤리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 터덜터덜 방을 나섰다. 동시에 원서비 79000원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왔어...

 30분이 넘는 구박을 당한 느낌이었다.

내 나이가 이렇게 많고 도전하기에 의심나이란 말인가? 그날 절절이 깨달았다.

교수님들 중 나보다 나이가 어린 교수님이 두 분은 계셨을까?나이많은 제자를 두자니 부담스러웠을까?  그럴수도 있었겠지.  

 벌을 받는 느낌도 들었다. 젊은 시절,  배움에 나이가 없다는 둥 인생은 60부터라는 둥  그런  말을 들으면 피식 웃곤 했다. 배움에 왜 나이가 없어?  인생이 60부터면 30대인 나는 강보에 쌓인 애기란 말인가? 위로도 적당히 해야지....라는 삐딱한 시선에 대한 벌. ㅠ


그날  저녁은  마침 절친들과 내 생파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울적한 기분을 맛난 음식과 술잔에 담아 녹이고 케이크에 초까지 불며  잊기로 했다.




솔직히 나이  많다고 모욕을 당한 듯한 찝찝한 기분이  찌꺼기처럼 남아 합격은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

생일날  가족과 친구들 엄마에게 받는  생일 선물은 감사하게도 모두 현금이나 상품권이다.  

아들 일로 또다시 미국에 와야했기에  기분전환 겸  갖고 싶은 물건에 소비나 하자고 마음먹었다.  


미국에 도착해  정신없이 이런저런 일처리를 하고 겨우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려는데  갑자기 문자가 왔다.

발신인이 **대학원이었다. 맞다!!! 한국은 27일 아침...오늘이 합격자  발표날이지...갑자기 쿵 가슴이 내려앉으며 잠이 달아났다.

데이터를 꺼놔서 내용이 보이지  않았다.

지원해주셔서 감사하고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는 뻔한 인사치레를  데이터까지 켜고 봐야 할까? 안그래도 시차때문에 힘든데 기분까지 잡치면 아예 한 잠도 못잘 것 같았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진실을 용기 있게 마주하기로 하고 데이터를 켜서 문자를 다운로드했다.


[Web발신]
안녕하세요. 2023학년도 전기 **대학교 대학원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입학안내->입학공지 내용을[2023학년도 전기 신입생 합격자 발표 및 등록금 고지서 출력 안내] 확인하시고 등록 기간 내에 등록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마치  데자뷔 같았다.  14년 전 미세석회 조직검사가  양성이었던 그 날이 딱  떠올랐다.

두 가지 일 모두 성당과 관련된,  하느님의 축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땐   대리인으로  수녀님이 이번엔  언니가  관여한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과연 내가 돈값하는 공부를 해서

뭔가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인가. 노는 것을 그토록 좋아하는 내가 사랑하는 절친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줄이며 공부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인가.


엄마 언니 오빠 남편 몇몇 친구들 그리고 항상 내 사주를 봐주는 30년 지기 친구가  축하메시지와 함께 큰 용기를 주었다.

특히 그 친구는 바쁜 와중에  보이스톡으로 전화까지 해서 내년 사주까지 봐주며 격려와 조언을 담뿍 선물해 주었다.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인풋인데 적절하게 네 길을 잘 찾아갔다고, 정말 축하한다고.

 

망설임이  딱  멈춰졌다.

소비가 아니라 투자를 하자!

빨리 결혼했다면  손주도 볼  늦은 나이에 하는

이 공부가 즐겁기를,  이해력도 독해력도 딸리겠지만  중단 없이 마칠 수 있기를, 그래서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차피  나는 밤을 꼬박 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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