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도 기적이라고 인정할 정도로 큰 은혜를 입어 놓고 화장실 드나들 때 마음 바뀌듯, 이제 살았다고 성당을 배신하다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길 수 있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말도 내 귓가에 울린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인 것이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충만한 마음으로 교사를 일 년 반 하고 미국에 가서도, 귀국 후에도 성당을 계속 다니는 5년간,
그저 자기의 소망을 빌러 다니는 내가 조금씩 혐오스러워졌다. 나와 내 자식 내 남편 내 가족의 안위와 평화를 비는, 내 욕심을 채우는 그런 기도나 하러 성당에 다니는 일이 옳을까,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여러 가지 봉사활동도 하고 성경 공부도 하고 아들도 복사를 시키고 매주 성당에 나가며 겉보기엔 충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성당에 가서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께 사심으로 가득한 기도나 드리고 집에 오는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럴 때마저 딸아이의 중학교 입시와 아들에 대해 하느님께 드린 나의 굵직한 기도는 모두 이루어졌다. 겁이 나면서도 기도는 멈출 수가 없었고 그럴수록 불안했다.
원하는 바가 작건 크건 이루어지면 감사 기도를 드리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 하느님의 뜻이겠거니 받아들인대도 실망스러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 점차 지쳐갔다.
버릇처럼 성당에 다니던 어느 해, 아이의 수능날이 되었다. 그 날 나는 추운 성당에 머무르며 하루종일 기도를 했다. 국어, 수학, 점심시간, 영어 그리고 과학. 정확히 과목까지 헤아리며 모의고사처럼만 보게 해달라고 .
성당도 추웠지만 기도를 하는 마음은 더 추웠다.
아이가 모의고사 성적을 믿고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것을 아는데, 염치없는 것 아닐까 부끄러우면서도 너무 급해서 하느님께 한 번만 더 봐주십사 기도했던 것 같다. 한편으론, 이 기도가 이루어지는 게 이치에 맞지않는다는 생각이 올라오는 것을 꾹꾹 누르면서 손을 모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최선을 다한 자가 응당 받을 복이다.
의대를 가고 싶어 했던 딸은, 그 어려운 국어 영어는 거의 만점을 받고 수학을 처참하게 망쳤다. 늘 수학이 불안했던 아이, 실망은 너무나 컸고 집에 돌아와 앓아누웠지만, 사실 아이가 받아온 성적표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수능 최저를 적용하지 않거나 한다 해도 폭넓게 적용하는 수시 제도를 얕잡아보고 폄하하는 나였지만, 그 제도 덕분에 아이는 불만스러워도 나는 만족할만한 학교에 붙게 됐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 너무 지친 나는 새 인생을 살고 싶어 몸부림을 치다가 평소 재밌게 들으며 마음의 위안을 삼았던 법륜 스님이 운영하는 정토회를 저벅저벅 찾아갔다.
물론 성당과의 결별은 아니었다.
내 인생이 가장 괴로웠던 18년 그리고 19년 사이, 카톡과 전화로만 연락하던 경주에 사는 마음 친구 Y는 당시 나의 상담사였다. 상담뿐 아니라 그녀는 자신이 늘 듣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몇 개를 내게 보내주었는데 결국은 그녀덕분에 정토회까지
발을 딛게 된 것이다. 성당에서 신부님이 늘 해주시는 점잖은 말씀보다 막말 섞어서 조언하듯 쉽게 일러주는 스님 말씀이 마음에 콕콕 박혔다. 못 알아듣거나 대단한 말은 없는데도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웃게 되고 마음이 치유됐다.
정토회에서 난생처음 부처님 말씀을 듣게 됐는데, 불교는 절대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소원을 간구하는 기독교와는 완전히 달랐다.
'수행하고 해탈하면 너도 나도 부처가 된다'는 간단한 원리가 주가 되는 종교였다. 그뿐이 아니다.
"내일이 아니라, 나중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순간, 행복해지세요.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스님이 가장 강조하는 이 말씀은 항상 나를 뒷전으로 두고 살아온 내게 너무나 위안이 되고 감사한 말씀이었다. 또한 누구 때문이 아니라, 무슨 바람이 이루어져서가 아니라, 내 욕심에서 벗어나면 행복해진다는 너무나 단순한 원리가 그대로 내게 꽂혔다.
마음의 괴로움은 무지로부터 오며 행복하기 위해선 욕망을 갈구하기보다 내려놓을 때 비로소 행복이 찾아온 다는 스님의 말씀은 진리였다.
부처님 말씀을 들으며 나는 내 바람을 간구하거나 소망 성취를 위한 기도에 매달리는 일을 그만두었다. 나의 욕망을 깨닫고 그것을 내려놓는 심적 수행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날 무렵, 나는 남편에게 요구하던 이혼 얘기를 접었고 친구들과 본격적으로 우정을 쌓기 위해 골프채를 잡았다.
그즈음, 딸은 내 말을 안 듣고 반수를 하겠다며 멀쩡한 학교에 휴학계를 냈고 엄마는 갑자기 두 번째 암에 걸렸다. 혼란스럽고 힘든 일이 한꺼번에 몰아닥쳤지만 내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딸의 재수 성공을 위해 응원은 하되 따로 기도를 하지 않았고 뒷바라지, 라이드라든가 보약 챙겨주기 등등을 일절 하지 않았다. 딸은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대치동을 다녔고 자정이 넘어도 혼자 왔다. 예전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공부를 제대로 하는지 마는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참견도 하지 않았다.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이니 부모는 거기까지 해줬으면 그다음은 본인몫이라는 스님의 말씀이 큰 영향을 미쳤다.
나중에 아이에게 들으니, 처음엔 너무 당황했지만 엄마가 골프다 수행이다 너무 바쁘고 무관심해지니 '내가 내 살길 찾아야야겠다' 하며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이다.
엄마의 큰 수술이 있던 날도 반드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엄마가 건강을 회복하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담담하게 마음을 다잡고 엄마의 수술실 앞에서 대기했다.
PS 발행하고보니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