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되면 깨닫는다.
아무 노력 없이도 쉽게 얻어지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노화라는 걸.
그러므로 누구나 꿈꾼다. 곱게 나이 들고 싶다고.
40대 중반을 넘어 50대를 향해 달려가며 흰머리가 하나둘 늘어난다.
흰머리즘이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울 아빠랑 동갑인 메릴스트립도, 울 엄마랑 동갑인 밀라 논나도 백발이 성성하지만 고운 어른들이라 그녀들처럼 고이고이 나이 들고 싶다고 늘 소망했었다. 그러나 흰머리로 시작한 노화를 맞이하며 깨달았다. 나는 곱게 나이 들고 싶지만 흰머리는 그리 곱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3년 전 즘부터 흰머리가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처음 한두 개를 발견했을 땐 전혀 슬프지 않았다. 외려 약간 신기한 그런 기분? 어라 나도 흰머리가 나네. 신기해서 하나 뽑은 뒤에 버리지 않고 화장대 위에 하루 두기도 했었다. 한두 개씩 보이는 흰머리를 피해 요리조리 가르마를 타며 잘 숨겨왔다. 더 나이가 들면 한 올 한 올이 소중하니 뽑지 말라는 선배님들의 말씀을 들으며 최대한 흰머리를 건드리지 않고 아직은 압도적 수적 우위를 지닌 검은 머리로 덮어가며 가려가며 숨겨가며 지내왔다. 사실 흰머리가 매우 많지만 비율로는 매우 작은데 심리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거라고 위로하면서...
한 2년은 그럭저럭 그게 잘 통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가르마를 타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어디로 길을 내도 흰머리가 한두 개는 튀어나와 내 심기를 건드렸기에. 흰머리는 대체로 다른 머리들과 함께 얌전히 누워있기를 거부한다. 심술이라도 부리듯 구불구불 꼬부라져 있거나 꼬장꼬장 홀로 서서 나를 긁는다.
대파 한 묶음을 사 와서 다듬다가 파뿌리를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옛날 주례사의 클리셰였던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의 비유는 아픈 현실이었다. 흰머리는 검은 머리처럼 직모가 아닌 경우가 많다. 색상도 튀지만 모양도 맥락 없이 파뿌리처럼 꼬불꼬불해서 볼품없다. 볼품없다 못해 너절하게 존재감을 내뿜는다. 독한 매직펌도 향기 좋은 트리트먼트에도 고분고분해지지 않는다.
노화가 곱게 오지 않으니 곱게 나이 들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