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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도촬

아빠, 사랑을 찍다.

by 언제라도봄

아빠가 도촬을 했다.


한가로운 토요일 오전 친정 가족 단톡방에 사진이 하나 올라온다.

70대 중반을 넘긴 아빠가 찍은 사진.

헉. 도촬한 사진인가?

사진을 보자마자 이런 사진을 찍어도 되나부터 걱정되어 검색해 보니 '도촬'인 것은 맞지만 이런 도촬은 불법촬영은 아니라고 한다. 한숨을 돌리고 다시 단톡방으로 들어갔다.

사진 밑에 아빠가 한마디 하신다.

"42년 전 나랑 우리 딸, 그리고 아들 생각나서 찍어봤어.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더라."


그 사진은 어린 남매와 손을 잡고 가는 젊은 아빠의 뒷모습이었다.


아빠가 찍은 사진을 챗GPT에게 그림으로 부탁했다. 실제 사진이 훨씬 더 따스하고 다정한 느낌이다.




사진 속에는 아빠와 대여섯 살로 보이는 누나 그리고 더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성별이 바뀌긴 했지만 우리 아이들도 저 또래 시절로 돌아가려면 10년 이상을 거꾸로 날아가야 한다. 중3인 큰 아이는 웬만한 성인보다 키가 크고 초6인 딸도 내 키를 따라잡을 날이 그리 머지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도 길에서 저리 귀여운 사이즈의 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게 되고, 뒤돌아보게 된다. 한껏 입꼬리가 올라간 미소를 짓게 되고 종종 가슴 한켠이 찡해진다. 이제 10년즘 지난 나도 그때가 이토록 그리운데 아빠의 그리움의 깊이는 가늠하기 힘들다.


아빠에겐 이제 손주들도 다 커서 아기라고 부를 만한 손주는 없다. 물론 다 컸어도 지금도 너무나 예뻐하시고 자주 궁금해하시고 보고 싶어 하신다. 당신보다 키도 몸집도 훨씬 큰 손주를 보면서도 매번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인다. 그럼에도 저렇게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관심과 따스한 눈길을 주었을 아빠가 신기하다. 엄마도 아빠도 아기를 정말 예뻐하는 분들이지만, 아빠는 엄마나 내가 지나가는 아기들을 보며 귀여워하면 도통 이해를 못 하셨다. 아빠의 아기사랑은 이른바 늘 '핏줄한정'이었다. 친손주가 아니더라도 조카의 아이라도 피가 조금이라도 섞인 아이들은 세상기준으로 못생겨도 예뻐죽겠다 하시지만 정말 예쁘고 귀여운 아이가 지나가도 눈길 한번 돌리지 않으시던 아빠였다.


그런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재빠르게 핸드폰을 꺼내어 타인의 순간을 담았다.

아빠도 40여 년 전 나와 동생의 손을 잡고 나란히 길을 걷던 때가 있었을 테다. 우리들이 작아서 아빠의 발걸음을 늦춰야 했던 그날. 너무 흔해서 혹은 특별한 날이 아니어서 기억도 정확히 나지 않던 그 어느 날이었겠지. 지나가는 어르신들이 아이들이 귀엽다고 말해주셨을 수도 있고 아빠에게 좋을 때다고 해줬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아빠도 그날이 그렇게 좋은 날인지도 모르셨을지도 모른다. 10년 전 내가 그랬듯이.


아빠가 그 순간 부러웠던 것은,

사진으로라도 잠깐 훔치고 싶었던 것은

아마 젊음도 아니고,

젊을 때의 영광도 아니고,

그저 아이들이 어렸던 그 어느 평범한 날일지도 모른다.


세월을 앞만 보고 흘러가는 줄 알았는데, 어쩌면 둥글게 돌고 돌아 같은 장면을 한두 번 더 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내 아이에게서 나의 어릴 적을 보고, 또 그때의 젊은 엄마아빠를 헤아리게 되기도 한다. 또 당신의 과거이자 자식에게도 과거였던 순간을 지그시 바라봤을 부모의 눈길에서 나의 미래를 보게 되기도 하는 듯하다.


비록 호르몬 오락가락하는 사춘기아이 둘과 일상을 보내지만 분명 10년 후면 30년 후면 가슴 시리게 그리울 오늘일 것이 분명하다. 더 이상 어설픈 발음으로 말을 하지 않고, 서툴게 글씨를 쓰지도 않고, (서툴게 쓸 때보다 더 알아보기는 힘들다.) 더 이상 보들 말랑한 살결도 아니지만 미래의 어느 날에 '그때로 돌아가면 좋겠다'를 종일 되뇔 오늘을 제대로 누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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