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창업해 살며 느끼는 장점 그리고 치명적 단점
싱가포르에서 창업한 이유는 뭘까? 일단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 의미가 크다. 외환 입출입이 쉽고, 돈이 많아서 좋은 비즈니스가 있다면 투자금 모으기에 나쁘지 않다. 영어권이라 글로벌 진출 전 테스트베드로 의미가 있는 것도 장점이다. 전세계 출장 다니기도 편하다. 입출국 1분, 공항에서 집까지 30~40분. 올해만 60번 넘게 비행기를 탄 나로서는 여행 피로가 적은 게 큰 장점이다.
하지만 단점이 명확하다. 싱가포르는 창업에 호의적인 나라가 아니다. 적어도 내 기준엔 그렇다. 돈은 많지만 스타트업에 들어와 돈 버는 구조가 안 된다. 좋은 스타트업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는 유니콘이 곧잘 나온다. 카카오도 있고, 쿠팡도 있다. 싱가포르는? 그랩을 떠올린다면, 그건 말레이시아 태생이다.
싱가포르에서 유니콘이 잘 안 나오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내수 시장이 너무 작다. 둘째, 동남아 전체를 아우르기도 어렵다. 나라마다 문화도 언어도 규제도 다르고, 생활수준도 천차만별이다. 싱가포르는 국민소득 10만불, 말레이시아는 2만불도 안 되고, 인도네시아는 5천불 내외다. 급성장 모델 만들기가 쉽지 않다.
사업을 하면 할수록 한국만큼 창업하기 좋은 나라도 흔치 않다는 걸 느낀다. 미국, 중국은 G2라 비교 대상이 아니고, 일본이나 유럽 선진국, 싱가포르와 비교하면 한국처럼 정부가 창업을 밀어주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 5천만 균질한 시장, 빠른 트렌드 수용력, 높은 디지털 리터러시. 이런 조건이 다 갖춰진 곳이 몇이나 되나.
그럼 왜 싱가포르에 있냐고? 싱가포르가 가진 실질적 장점도 있다. 법인 설립, 계좌 개설 일사천리다. 계약이나 송금도 빠르다. 규제가 명확해서 비즈니스 플래닝이 쉽고, 세금 체계도 단순하다. 동남아, 중국, 인도까지 아시아 전역 거점으로는 최적이다.
내 생각은 간단하다. 한국에서 비즈니스 모델 만들고 검증한 다음, 싱가포르를 베이스캠프 삼아 아시아로 나간다. 한국의 균질한 시장과 빠른 실행력, 싱가포르의 금융 인프라와 지리적 이점. 둘 다 쓰면 된다. 싱가포르만으로는 안 되지만, 한국과 싱가포르를 엮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