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가 숨기고 있는 변화와 포용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이민
마늘과 쑥을 먹고 변신한 곰과 결혼한 하늘나라 사람의 이야기
민족국가에는 저마다의 건국신화가 있다.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는 한 건국신화 속 인물은, 늑대를 닮은 로마제국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이스라엘 민족의 건국신화 속에는, 불타는 가시덤불에서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선지자가, 홍해를 갈라 나라를 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민족의 건국신화 속 주인공은, 특이하게도 ‘마늘과 쑥을 먹은 곰’이다. “동굴에 갇혀서 마늘과 쑥을 먹은 곰이 사람으로 변해서 낳은 아들이, 한반도에 처음으로 국가를 만들었대”라는 이야기를 들은 외국인 친구는, 말은 못 해도 '너네 나라 건국신화 참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종종 ‘한민족이 참을성이 많은 민족’이라는 뜻이라고 해석되고는 한다.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으며 꼼짝하지 않고 동굴에서 보냈다는 이야기가, 선뜻 역동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의 고고학자들은 이 단군신화를 신화대로만 읽지 않고 다른 식으로 해석한다. 유력한 설은, 이 이야기가 환인으로 상징되는 이주집단이, 곰을 숭상하던 토착집단과 결합하여 국가를 이루고, 호랑이를 숭상하던 토착집단은 화합하지 못해 결국 배제된 역사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정작 단군신화의 밑바탕에는 ‘변화에의 갈망’과 ‘포용’이라는 주제가 있다.
변화와 포용의 이야기
웅녀는, 주어진 동물의 모습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변화하고자 했다. 그리고, 자신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물고기나 꿀이 아니라, 그 맛없는 쑥과 마늘을 먹어가며 주어진 고난도의 새로운 테스트를 수행해내고야 만다. (그러고 보면 현대의 채식 다이어트에도 어울리는 스토리인가 싶기도 하고, 한민족의 성깔머리를 은유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하늘사람인 환인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그는 사람으로 변한 웅녀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의 배우자로 받아들인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다가도 ‘아 참 얘는 곰이었지’ 하고 흠칫할 법도 한데, 환인은 그런 선입견 없이 변화를 성취해 낸 곰과 혼인을 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건국신화는, 변화를 받아들일 자세가 된 곰의 부족과, 결국 그들과 하나가 되는, 포용력을 가진 이주집단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단군신화가 그리는 이야기는 '변화'와 '포용'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호랑이는 이야기의 조연으로 남지 않은가.
누구보다 빠르게 변하고 수용해 온 역사
사실, 우리네 역사가 그랬다. 누구보다 빨리 인쇄 기술을 만들었고, 쓰던 한자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글자를 창제해 지식을 퍼뜨렸으며, 서구 근대 문물까지 빠르게 습득하여 결국 폐허로부터 선진국을 일궈냈다. 그런 식으로, 대한민국은 안주나 폐쇄에 적합한 나라가 아니라 변화와 포용을 추구해 온 나라다. '빨리빨리'문화라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만큼 빠른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로서의 정체성이 드러난 측면도 있지 않나 싶다.
조선시대 말기에 변화를 거부하다가 나라를 잃은 비극적 역사가 있기는 해서, 우리는 스스로 변화에 둔감한 민족은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단군신화 속 주인공인 곰도 미련함의 상징인 것처럼 오독되기도 했다. 하지만 암울한 식민지 시절에도 조선에는 수많은 사상가들이 보이지 않는 새로운 길들을 모색하며 경쟁하고 있었고, 오히려 일본의 군국주의 신민들보다 치열하게 논쟁했다. 수십 년간 앞서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였던 일본제국보다,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이 훨씬 급격한 변화를 통해 모던뽀이와 모던걸로 변신하기도 했었다.
반세기가 지나, 격동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현대사를 거친 한국의 경제와 문화는 다시 한번 변화의 아이콘으로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팝을 수용해 변화시킨 케이팝이나, 황야 같은 미대륙에 ‘미나리’처럼 꿋꿋하게 도전하는 사람들을 그리는 영화는, 그 자체로 아메리칸드림이기도 하지만, 코리안 챌린지이기도 하다. 이들이 그리는 도전과 포용의 역사는 단군신화에서 이미 예고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민이 가지는 의미
이주해 온 환인의 민족을 받아들여 변화하는 곰의 부족의 이야기, 이 ‘변화’와 ‘수용’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민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연상시킨다. 대한민국에서는 특히 이민을 수용하는 문제에 관하여,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단일민족이라는 환상‘은 사실 신라시대 허황후 시절에 깨어진 지 오래지만, 낯선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무의식에는 여전히 쉽게 호소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율은 세계 최악의 수준이며, 이대로라면 한국은 2100년이면 인구가 절반 정도로 줄어들어서 소국으로 전락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인구가 중요한 이유는, 경제활동 인구를 확보하여 노령 인구의 생존을 책임진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에 더해 자국 경제의 사이즈 자체를 방어한다는 측면도 있다. 인구가 반토막이 날 국가의 화폐가 시장에서 정당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없다. 우리 돈 100만 원은 지금 환율로 800달러로 평가받겠지만, 100만 원으로 살 수 있는 노동력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400달러로 평가받아도 할 말 없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선진국들은 그런 측면에서라도, 인구의 유입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늘 그러했듯이 문화의 용광로가 되어 전 세계의 인력을 흡수하며 인구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모두 이민자의 아들이었다.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성이야말로, 여러 닫힌 문화의 강대국들의 도전을 이겨낸, 미국의 진정한 힘인 것이다. 유럽에서도 여러 나라가 이미 인구절벽에 대한 대책으로 포용적 이민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일본이 2021년 올림픽 개막식에서, 최종 점화주자로 혼혈이었던 오사카 나오미를 선정한 것은, 많은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비난을 받았지만, 꽤 야심찬 다문화주의의 선언에 다름없었다.
물론, 인종적 단일성이나 종교적 폐쇄성을 가진 국가들도 세계에는 많이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 중동의 여러 나라들이 그런 나라들의 한 예가 될 수 있겠다. 심지어 ‘민족’의 주체성을 제1의 모토로 삼고 있는 북한까지도 있다 하지만, 그런 닫힌 문화의 나라들이, 전세계 인재들을 끌어모으는 매력적인 사회라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단군신화가 제시하는, 미래에 대한 교훈
물론, 이민을 논할 때, 오랫동안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대한민국의 가치관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분명히 해야 한다. 다만, 자신감은 좀 가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적 가치는,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반세기 넘게 갈고닦아져 꽤 높은 수준을 이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환경에서 자란 많은 이민자들도 대한민국의 정의로운 가치를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져도 될 때다.
스스로 변화를 선택하여 자신의 꿈을 이 반도에서 펼치고 싶어하는 이들의 이야기와, 또 그런 이들을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남기라는 것이, 어쩌면 단군신화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주는 교훈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