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람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잭변 LHS Jan 08. 2023

비가 내리는 후에

기구한 역사의 도시

베트남 중부는 12월에 여행하기 그리 좋은 날씨가 아니라는 것을, 후에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우기가 끝나가는 계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후에 위를 잔뜩 휘감은 구름은 언제라도 비를 뿌릴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가 꿈속에서도 그리는 동남아의 푸른 하늘은, 12월의 후에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오히려 런던의 그것을 닮았겠다 싶은 흐린 눅눅함이 후에를 감싸고 있다.


후에는 베트남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도시란다.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의 수도였기에, 큰 왕궁이 남아 있다. 그 큰 왕궁은 이제는 베트남 사람들이 보존해야 할 유적이 되었지만, 공산혁명을 이룰 당시에는, 그 왕궁은 베트남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은 왕궁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큰 규모의 왕궁은 일부러 황폐하게 둔 것 같은 무심함이 맴돌고 있다. 혹은 괴기할 정도의 왕궁의 적막함은 지난세기 수십년간 이어진 전쟁들의 상흔인지도 모르겠다. 그 무심함과 적막함은 추적추적 끊이지 않는 빗소리로 증폭된다.

후에는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의 분단 시절에는, 군사분계선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였다고 한다. 그래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이 번갈아가면서 이 도시를 점령했었단다. 왕조시절과 분단시절, 베트남의 기구한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낸 도시인 셈이다.


지금은 후에도 관광도시로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후에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거리가 따로 있다. 후에성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예쁜 카페들과 이국적인 술집들이 모여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다. 그 곳에는 DMZ(비무장지대)라는 맥주집도 있다. 분단시절을 연상시키는 이름에, 옛 시절의 물건들로 인테리어를 한, 싼 가격의 맥주집이다.


나는 DMZ바에 들어가서, 로컬 맥주와 함께 피자와 감자칩을 시킨다. 바 곳곳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각자의 나라말로 이야기를 나누며 앉아있다. 그네를 지배했던 프랑스의 관광객들도, 그네가 싸웠던 미국의 관광객들도, 또 그네의 전쟁에 참전했던 한국의 관광객들도 모두 이 곳 ‘비무장지대’라는 이름의 술집에 앉아서, 비가 내리는 이 기구한 도시의 거리를 바라본다.


비는 참 많은 것들을 씻어 내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