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로 이해하는 <한일협정>과 <강제동원판결>의 쟁점
한국집의 아들딸들(국민)이 일본집의 아들들(기업)과 아버지(정부)에게 맞거나 속아 끌려가서 강제로 노역에 동원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한국집의 아들딸은 거동을 못할 정도로 몸이 으스러졌고 손가락이 잘리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아들딸들은 일본집에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해야 할 판이죠. 그런데 집에 돌아온 아들딸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한국집의 아버지가 갑자기 일본집의 아버지를 찾아가서 아버지들끼리 “양 집 구성원들 간의 청구권은 소멸된 것으로 본다.”는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정신을 차린 한국집의 아들딸들은 이 사실을 알고 무척 황당합니다. 정작 맞은 것은 아들딸인데 아버지가 갑자기 아들딸을 대신해서 합의를 보다니요. 이런 합의는 당연히 무효가 되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미 자기들끼리 조약을 맺은 한국의 아버지와 일본의 아버지는 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합니다. “이 지구촌 마을에는, 아들딸이 <다른 집에 가서> 배상을 받아내려면 아버지 허락을 먼저 받아야 한다는 법칙이 있어. 그런데, 아버지들끼리 합의를 했으니, 우리는 이제 아들딸들이 <다른 집에 가서> 배상을 요구하도록 허락할 수가 없어.’ (외교적 보호권 소멸주장)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힘없는 한국의 아들딸들은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의 정부기관에 따르면, 그때 한국의 아버지는 일본집의 아들들에게 몰래 뇌물까지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서 한국의 아들딸들은 자신들을 때린 일본의 아들이 자기네 집이 아닌, 바로 한국의 집안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잠깐만요. 아버지들의 말에 따르면, 지구촌 마을의 법칙은 <다른 집에 가서> 배상을 받아내려면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아버지끼리의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잖아요? <우리 집>인 한국집에 있는 일본의 아들 재산에서 배상을 받는 건 상관이 없어진 것입니다. 즉, 한국의 아들딸들을 무자비하게 때린 일본 아들이 다시 뻔뻔하게 한국에 들어와서 번 재산이 있어서, 이 돈으로 한국의 아들딸들이 맞은 데 대한 배상을 받겠다고 하는 건, <다른 집>이 아니라 <우리 집>에서니까 아버지끼리의 합의와는 상관없이, 혹은 허락이 없어도 된다는 결론이 되죠. 그래서, 한국집의 아들딸들은 법원에 소송을 겁니다.
그러자 일본의 아버지가 길길이 날뜁니다. 자신은 한국의 아버지와 합의를 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한국의 아들딸들은 따질 말이 무척 많습니다.
먼저, 맞은 당사자는 한국의 아들딸인데, 아버지들끼리 무슨 자격으로 합의를 했는지에 대해서 일본집 아버지도 속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일본집 아버지는 우물쭈물하고만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집의 아버지가 소련집의 아버지와 조약을 맺었을 때에 (1956 일소공동선언), 일본집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들에게는 ‘아버지 간 조약으로 아들들의 권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란다’라고 이야기해 왔거든요.
게다가, 한국과 일본의 두 아버지의 이야기는 분명히 <다른 집에 가서> 배상을 받으려면 아버지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거든요. 거꾸로 말해서 한국집에서라면, 한국의 아들딸은 그대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러면, 한국집에 있는 가해자 일본아들의 재산을 대상으로는 당연히 피해자인 한국의 아들딸이 손해배상을 주장할 수 있는 게 아닌가요? 심지어 일본의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한국 아들딸의 경우, <우리 집에 와서> 청구할 수 없을 뿐이다’는 말까지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1981. 8. 27. 참의원 예산 위원회에서 외무성의 답변, ‘외교적 보호권의 포기에 불과하다 ‘)
그러니, 한국에 있는 재산에 대하여 법원에서 한국의 아들딸이 이긴 건 당연한 결과겠죠. (대법원 2018. 10. 30 전원합의체 판결) 이제야 정의가 이루어지나 보다 하고 다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집의 아버지가 갑자기 눈치 없이 다시 한번 나섭니다. 피눈물로 세월을 보낸 한국의 아들딸들에게, ‘이쯤 하면 되었고 우리 가족들이 열심히 일해서 저축해 둔 돈을 좀 떼다가 너한테 줄 테니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고 합니다. (2023.3.6. 정부의 재단배상안 발표)
한국의 아들딸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사과받고 배상받고 싶은 사람은, 나를 망가트리고도 이곳에 와서 그대로 장사를 하고 있는 일본집 사람이지, 내가 세금 내고 내 노력으로 일군 내 나라가 아니라고 울분으로 이야기합니다.
힘없는 나라에서 태어난 죄로, 목숨을 위협받고도 정부가 쥐어주는 푼돈으로 가슴속 상처를 치유하고 살았다가 이제야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고 생각한 피해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다시 내 나라의 돈으로 화해를 강요하는 것은, 힘센 다른 나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했던 아버지의 비굴한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일본은 여러 번 말을 바꾸어 왔습니다. 자국의 국민들에게는 “정부 간 조약은 국민의 청구권을 소멸시키지 않는다”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 주장을 한국의 피해자들에게도 투영하면서, 한국 피해자들의 실체적 권리는 살아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내 전범기업의 재산으로부터 강제집행을 하려 했더니 법적 근거는 제시하지도 못한 채 ‘정부 간의 약속’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이미 해결되었다고 얼버부리며 입장을 애매하게 하고 있습니다.
일본집 아버지의 이런 양면성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물론이지만, 두 번이나 아들딸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한국집의 아버지는 누구를 위한 아버지인가요.
이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