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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Feb 22. 2020

육아 복병 '코로나 바이러스'

하원 후, 갈 곳 잃은 엄마와 아이

몇 주째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있는 중국 발 바이러스로 인해 집 밖 출입도 최소화하고 하원 후, 아이와 자주 가던 어린이 도서관과 공공기관, 놀이시설들도 당분간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에너지 넘치는 3세 아들과 집에서 놀아주는데도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기피하니 생활 반경도 좁아지고 며칠 전 꽤나 추웠던 날, 미세먼지 수치는 좋아 우리 집 노견과 동네 한 바퀴 산책한 것이 바로 코감기로 와 훌쩍거리는 처지라 사람들을 만나기도 괜히 미안해 모임도 자제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인 지인의 말에 따르면 현대인들이 다양한 요인으로 한 번쯤은 겪는다는 우울증엔 운동을 하든, 길을 걷든 햇살 받으며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처방약보다 더 효과적이라는데 바이러스 덕택에 아이와 집안에 꼼짝없이 갇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니 기분이 다운되고 사소한 일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이와 집에서 미술 놀이부터 찰흙 놀이며 스티커 붙이기 등 할 수 있는 실내 놀이를 하며 하원 이후 시간을 나름 알차게 보냈다. 그런데 놀이 소재의 한계가 오기 시작하자 저녁 식사 준비 때 만 틀던 만화를 주구 장장 틀어 놓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가 뽀로로에 몰두하는 그 시간 동안 후다닥 할 수 있는 집안일을 하자던 처음의 생각과 달리 나 역시도 체력이 부친다는 걸 핑계로 그 시간이 편해지기 시작했고, 매일 틀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또 다음날이면 오늘은 블록 놀이랑 책만 읽어주자 다짐하다 어느 순간 tv리모컨을 찾는 내 자신이 점점 한심하게 여겨지는 요즘이다.

그러던 중 남편이 한동안 관심 밖이던 골프에 다시 취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요즘 흔한 취미 중 하나 이기에 특별할 것도 없는데 주말 오전에 레슨을 한다는 말에 주말만큼이라도 아이와 반나절은 놀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선지 나는 참지 못하고 역병이 도는 이 대 환란의 시기에 골프는 무슨 골프냐며 남편에게 그간의 답답함을 모두 담아 퍼부었다. 애는 혼자 키우냐며 방언 터지듯 쏟아내는 내 분노의 폭언에 남편은 당황하며 레슨 마친 후 12시부터 저녁까지 아이를 혼자 돌볼 터이니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든 어디든 바람 쐬러 다녀 오란다. 한바탕 화를 내고 괜히 머쓱해진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마치고 목적지도 정하지 못한 채 화장을 하는데 온통 신경은 아이에게 쏠려 왼쪽 뺨에 선크림을 바르다 말고 나와 아이 한 번 찾고, 립스틱 한 번 바르고 나와 또 아이를 찾는다. 남편은 어서 외출하라는 데 나는 모가 못 미더워선지 자꾸 아이를 살피다 보니 외출 시간을 점점 미뤄졌다. 남편에게 아이 앞에서 과자 먹지 말아라, 치즈는 한 번만 줘라, 만화 너무 오래 보여주지 말라는 잔소리를 구구절절 늘어놓고도 계속 내 시선은 아이를 향해 있었다. 때마침 아이가 낮잠을 잘 시간이라 침대로 올라간 아이의 모습을 보고서야 집을 나섰다. 남편은 저녁식사도 알아서 먹을 테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못난 내 감정을 주체 못 해 남편에게 들이부은 기분이라 집에 올 때 맛있는 거 사 오겠다며 미안한 속 마음과는 달리 퉁명스레 말하고 집을 나섰다.

운전대를 잡고 목적도 없이 한남대교를 건너며 오늘의 내 감정을 들여다보았다. 지난 몇 주간 그저 좋아하는 카페와 떡볶이집을 가지 않고, 자주 연락하고 만나는 지인들과 코감기로 만남을 자제했고, 나와 아이의 아지트인 주민센터의 작은 도서관이 문을 닫아 하원 후 갈 곳을 잃었던 것뿐인데 왜 나는 이토록 화가 난 것일까?


스스로 이유를 찾아보자면 애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라 타인과 정서를 공감하고 유대감을 나눌 때 즐거움이 크기에 지인들과 소통하며 먹던 점심 모임이나 아이와 손을 잡고 공원과 마트에 장을 보러 가던 평범한 행복요소가 쌓이던 일상에 난데없는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그로 인해 이동의 제약과 불안감으로 작지만 하루하루 쌓이던 행복감이 비워지고 그 자리에 답답함과 몹쓸 분노가 들어오게 된 것이라 결론지었다.


네비도 없이 달려 차를 세우고 보니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아귀찜 집 앞이다. 아귀찜 포장을 부탁하고 근처 카페에 앉아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모두가 겪고 있을 어려운 이 시기에 유난스러웠구나 싶어 짧은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남편에게 사과 대신 아귀찜 간판을 찍어 보냈다. 매콤한 아귀찜에 막힌 코가 뻥 뚫리듯 시원하게 이 상황이 종료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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