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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Mar 16. 2020

야무지지 않아도 괜찮아.

앗쌀하지 못한 나의 시누이

시어머님은 늘 막내며느리인 나를 앗쌀하고 야무진 사람이라 추켜세워 주신다. 사회생활을 오래 해 분별력이 있다거나, 깔끔을 떨어대는 결벽증이 있는 것을 막네 며느리 집에 가면 키우는 개도 깨끗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결혼 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삼 남매 중 막내인 남편의 아내로 나는 늘 시어머님께 잔소리 한번 들은 일 없이 살아왔다. 물론 여기엔 신혼집을 구함에 있어 보탬이 되어주시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우리 부부가 결혼할 당시엔, 남은 재산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박사학위 중이었던 시누이의 뒷바라지에 들어가 독서실 총무를 하며 서른이 넘은 나이게 고시에 합격했던 막내아들에겐 마음만 주실 수밖에 없었기에 비롯된 일이기도 하고, 개업을 위해 사무실 보증금이 필요했을 무렵 막내며느리의 유일한 고가 혼수였던 결혼반지가 통통한 네 번째 손가락에 더는 없다는 것도 짐짓 알고 계셨기에 어머님은 늘 미안함과 부모 도움 없이 차츰 자리 잡아가는 모습에 대견함이 크셨다. 이런 어머님이 유일하게 잔소리를 퍼붓는 이가 나의 시누이이다.


남편의 누나인 그녀는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 뒤늦게 유학을 떠나 청춘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공부하며 보낸 후, 한국에 돌아와 대학 강의와 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나에겐 더없이 좋은 시누이이자 커피를 좋아하는 취향이 같아 가끔 괜찮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편히 나누는 사이다.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영어 한 마디 못하시는 전형적인 한국 할머니인 나의 시어머니는 이제는 런던과 에든버러의 골목길을 훤히 꿰실 만큼 김치를 꽁꽁 얼려 겹겹이 비닐에 싸매고 담은 무거운 여행 가방을 들고 양국을 오가며 오랜 시간 뒷바라지하셨다. 시댁에 가면 나직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늘어놓으시는 시누이에 대한 불평은 주로 “그릇이 작아 어학원을 키울 생각을 안 한다. 수업 한번 준비하는데 3박 4일 밤을 새워한다. 강사들 시키면 될 일을 혼자 한다고 고집을 부리니 어학원이 크질 못한다. 찬찬하지가 못하다. 물건 볼 줄 모른다.” 정도이다. 어머님의 이야길 듣다 보면 처음엔 못마땅해하는 것 같지만, 당신께서 보시기엔 강의 준비에 몸을 상해가며 성의를 다하는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틋함이 녹아 있어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되신 시부모님이 시누이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느껴진다. 늘 시어머님의 아픈 손가락이던, 막내며느리 반만 닮으라며 잔소리를 듣던 나의 시누이가 ‘코로나 19’가 장기화되고 있는 요즘 ‘그릇이 작은 것도 재주였다’는 칭찬을 매일 듣는 중이니 산다는 건 정말이지 예측 불가능한 나날의 연속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위기에서 기회를 잡는 이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그리고 그건 특별한 사람들이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남편의 회사가 세무와 회계를 담당하는 클라이언트 중, 온라인 패션으로 규모가 크고 유명한 회사가 작년 하반기부터 떡볶이, 찌개 류 등의 각종 ‘간편 조리 식품’ 온라인 사업을 새로이 시작했을 때, 과거 미디어사 이전에 유통사에서 오랜 기간 몸담았던 나조차 생소하게 생각되었다. 물론 대형 마트와 편의점에서 급성장하는 카테고리가 레디 투 잇(Ready to Eat(RTE)), 레디 투 히트(Ready to Heat(RTH)), 레디 투 쿡(Ready to Cook(RTC) 등의 ‘간편 조리 식품’ 시장이다. 1인 가구가 대세인 지금, 4인 가구 기준의 구매 패턴은 예지녁에 깨졌기에 냉장고에 쟁여 두고 언제라도 유명 맛집의 레시피를 재현한 음식과 그조차도 귀찮고 바쁜 이들을 위한 배달 음식 시장의 매출이 날로 고공 행진 중인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것이다. 거기에 올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의 여파로 ‘집콕’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지금, 주위에서 우리가 담당하는 클라이언트들 업계는 괜찮냐? 요즘 다들 너무 힘들다는데 거기도 그렇지 않냐는 문의가 많은데, 물론 일부 중국 수입 비중이 높은 경우 배송에 대한 물류 문제가 발생한 것은 맞지만, 사실 대답이 곤란할 정도로 활황 중인 클라이언트 사들도 많다. 주요 고객사가 전자상거래 즉,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유통을 주로 하고 있기에 연 중, 거리에 사람이 넘쳐나던 명동 거리조차 사람이 없다는 상황과 달리 전자상거래 시장은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떡볶이와 찌개를 새로이 시작한 패션 회사는 집 밖 출입은 어렵고 ‘재택근무’와 ‘가정 보육’으로 삼시 세끼 준비하는 게 전쟁에 가까운 주부들의 쏟아지는 주문으로 전 직원이 배송만 챙기기도 버거울 만큼 매출 포텐이 터졌다. 처음 클라이언트사 대표님이 식품 사업을 준비할 때,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던 거나 잘해라’라는 말을 제일 많이 했다고 한다. 누가 알았겠는가? 전 세계가 바이러스 공포로 집 밖 출입도 두려울 만큼 시장 상황이 변할 줄 말이다.


다시 시누이 이야기로 돌아와, 시어머님께서 요즘 칭찬 일색으로 바뀐 나의 시누이는 자신의 전문 분야는 강사를 쓸 수 없고 본인이 직강을 해야 한다고 고수하던 고집스러운 원칙 덕에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학원업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인건비가 없었기에 수업을 멈추어도 인건비 문제가 없고, 보는 눈이 없어 돈도 안 되는 상가를 분양받았다는 잔소리만 들었던 학원은 월세 걱정이 없기에 잠시 수업을 멈추어 수강료가 줄었을 뿐,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해 사람을 내보내야 한다거나 월세를 보류해야 하는 여느 학원들과는 다른 상황인 것이다. 거기에 시어머님께서 가장 크게 칭찬을 하신 건  다름 아닌 마스크였다.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나에게 커다란 비닐봉지로 갖다 주신 물건은 다름 아닌 요즘 성인용보다 더 물량이 없어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유아용 방역 마스크였다. 깜짝 놀라 아니 이 구하기 어려운 걸 어떻게 사셨냐고 물으니,


“막내야. 저 바보가 연 초에 봄에 즈그 강의하려면 황사를 대비해야 한담서 왕창 산 것이 알고 보니 우리 손주용이더라. 너도 네 볼일 보려면 손주가 다시 학교에 댕겨야 하는디, 우리 손주 마스크 없이 어쩌까 하고 으른꺼 끈이라도 줄여 줘 볼까 해서 서랍을 열어보니 이게 한가득 이드라. 이런 효도가 으~디가 있대? "


시어머님이 늘 칭찬해 주시는 바지런한 막내며느리네 집이 윤이 나게 반짝이면 무엇 하나? 바이러스로 집에 찾아오는 이도 없는데 말이다. 공부만 하고 살아 느리고 앗쌀하지 못하단 소리만 듣고 살았어도, 찬찬하지 못해 성인용과 유아용 마스크를 구분 못 하고 샀어도 지금 나와 우리 가족에게 큰 기쁨을 선물해 준 건 나의 야무지지 못한 시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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