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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Mar 29. 2020

아이가 보는 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다워’야 한다.

장기화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심리적으로 가뜩이나 편치 않은 일상이 지속되는 가온데 인류애를 상실케 만든 ‘N 번방’ 사건이라 불리는 미성년자가 다수 포함된, 성 착취 범죄가 연일 이슈가 되며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다. 아이와 반려견을 키우며 살고 있는 평범한 아줌마에겐 생소한 텔레그램 메신저부터 ‘박사’, ’갓갓’이라 불리는 범죄자들의 호칭과 사이버 암흑세계에 있던 그들을 수면 위로 끌어낸 ‘추적단 불꽃’ 또, 그들을 그 세계의 방식으로 처단 중이라는 텔레그램 자경단 ‘주홍 글씨’등 무협 판타지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주인공들이 가상공간과 현실 세계를 넘나들며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 나와 같은 일반 대중들은 놀라고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뉴스와 탐사 보도 방송을 통해 알려진 그들은 앳된 얼굴의 평범한 청년들이었고, 그들에게 수익을 바치는 고객이자 게임 룰을 함께 만들어가며 그들이 만들어 놓은 놀이터에서 탐닉하고 열광한 다양한 연령대의 수많은 이들이 있었으니 과학기술의 발달이 범죄에도 영향을 미쳐 마치 다수가 참여하는 롤 플레잉 게임처럼 각자의 역할에 따라 범죄에 가담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기존엔 없던 처음 보는 행태의 범죄여서 더 무섭게 느껴졌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범죄 행위에는 어린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으로 행한 성폭행과 함께 개인 신상정보와 수치스러운 영상의 유포 등 피해자로 하여금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야 했을 인격 살인 행위가 더해지니 요즘 뉴스를 접하면 참담하기 그지없는 심정이다.


어쩌면 이렇듯 범죄에 스스럼없이 가담했을 이들 대부분이 우리가 사회에서 살아가며 마주칠 평범한 이들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범죄자를 잡고 직접적으로 사회 정의 구현을 실현할 수는 없지만,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가정교육이라 칭하는 역할에 대해, 많은 고민과 생각을 갖게 했다. 부모는 아이에게 희미하게 보이는 세상을 명확히 보게 하는 돋보기안경과 같은 존재일 터인데 나는 아이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La vita è bella

“이것은 동화처럼 슬프고 놀라우며 행복이 담긴 이야기다.”


주인공 귀도의 아들 조슈아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 사망자가 1만 명이 넘어선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명 감독이자 배우 ‘로베르토 베니니 (Roberto Benigni)’가 감독과 주연을 모두 맡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La vita è bella)’이다. 2차 대전 당시, 유태인 수용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참혹한 상황에서 아들 조슈아를 위해 아버지 귀도는 아들에게 이 수용소 캠프는 단지 게임일 뿐이고, 최초로 1,000점을 따는 사람에게 탱크를 준다고 거짓말을 하며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도 아들의 마음에 두려움이 자리 잡지 않도록 해준다. 그것이 아버지 귀도가 아들 조슈아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었다.

 

“이것이 나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희생한 이야기. 그것이 아버지가 주신 귀한 선물이었다.”


마지막 독백을 통해 아들 조슈아는 두렵고 절망만 가득했던 아들의 인생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는 걸 깨달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집은 바이러스 이전에도 지금도 똑같은 집인데, 편안하고 안락했던 우리 집이 심리적인 요인으로 창살 없는 감옥처럼 답답하게만 느꼈다. 신문이라도 읽을라 치면 아들은 장난감 상자를 쏟으며 함께 놀자고 온 집안을 어지럽혔던 걸 나는 때때로 참지 못하고 화를 냈었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고전 영화를 20년 만에 다시 본 그날, 새벽녘까지 베개를 뒤척이며 ‘나는 아이에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어떻게 해석해 주어야 할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였다. 바이러스 공포도, 무서운 사회의 범죄들도 아이에게만큼은 내가 보여주는 세상으로 보일 터인데 나는 그걸 잊고 있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타인의 심정에 공감하되 지나치게 매몰되지 말았어야 하는데 나는 자꾸만 기사 글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아이는 그저 내가 느끼는 대로, 내가 찌푸리며 보는 그대로를 똑같이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주말 오전에 봄 햇살이 좋아 반려견을 데리고 아이와 남산 도서관 길을 산책하였다. 코로나의 여파로 도서관은 휴관 중이지만, 도서관 앞 목련은 흐드러지게 만개하였다. 잔디밭에는 노란 민들레 꽃과 보라색 제비꽃들이 보였다. 플라스틱 삽을 들고 작은 돌들을 나르던 아이에게 “지금 뭐해?"라고 묻자, “민들레 울타리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엄마가 얼마 전 우리 집 마당에 수선화 심고 돌로 주변을 감싼 것을 보고 따라 한 거란다. 그리고 민들레를 밟으면 아야 하니까 울타리를 만드는 거라고 한다. 아이의 시선은 늘 엄마를 향하고 있었다. 아이가 보는 세상은 엄마였다. 더 많이 웃고 행복해야겠다. 그래서 귀도처럼 위대한 아버지는 될 수 없더라도 아이가 훗날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련 해지는 것보다, 빙그레 웃음이 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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