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ko Jan 07. 2021

보이는 것만 보는 사회

눈이 소복이 쌓였다.

겨울이라 우리 집 앞마당 꽃나무들은 앙상하게 볼품없어지고 치우지 못한 낙엽들로 지저분했는데 함박눈이 하얗게 덮어 한 밤중임에도 환해졌다. 아이는 모처럼 내린 눈에 신이 나 추운 날씨에도 눈을 맞으며 마당에서 한참을 놀더니 노곤했는지 금세 노견과 엉덩이를 맞대고 잠들었다. 눈은 다시 녹겠지만, 잠시나마 눈이 만들어준 깨끗한 고요함에 요 며칠 견딜 수 없이 버거웠던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해가 바뀌어도 장기간 지속되는 코로나 확산에 모두가 지치고 예민한 이때, 양부모에 의해 살해된 16개월 입양아 학대 사건은 아이를 키우는 전국의 엄마들에게 우울증을 안겨주었다. 해당 사건에 대한 탐사 보도 프로그램 방영 후, 언론에선 실시간으로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맘 카페는 날이 가면 갈수록 터져 나오는 참혹한 진실 앞에 슬픔과 분노로 채워졌다. 그리고 모두에게 궁금증을 안겨주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우리 사회는 보이는 것들을 객관화된 지표라 여기며 상대를 판단하기 일쑤이다. 입양이라는 쉽게 하지 못하는 선행을 행하고 토끼 같은 딸을 둔 단란한 가정에 번듯한 직장, 그리고 논란에 기름을 부은 독실한 종교인 가족. 이들이 세상에 나온 지 고작 16개월이 된 아이에게 뼈가 으스러지고 장기가 찢어지도록 학대를 일삼았을 거라 쉽게 의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이를 지옥에서 구하려 했던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소아과 선생님의 신고는 헛된 노력이 되었다.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지금도 어느 곳에 선가 거짓된 강연을 하고 부지런히 글을 쓰고 있을 그녀. 몇 해 전 일이다. 시누이에게서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어떻게... 어떻게 나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수화기 너머 시누이는 수차례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극도로 흥분한 시누이가 쏟아낸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시누이가 친하게 지내는 지인 A는 같은 직장의 동료로 만나 금세 친해졌다. A는 명실공히 국내 최고 학부 출신이었고 교육자 집안에 건실한 남편과 자녀를 둔 이였다. 비상한 머리와 타고난 언변을 주로 타인을 비방하는 것에 쓰는 A였지만 화려한 패션과 지적인 A의 세련된 모습에 시누이에겐 A의 못된 성격마저 매력의 일부로 보였다고 한다. 인간관계에 문제를 겪고 친구가 없던  A는 자신을 받아주는 시누이를 가장 친한 친구라 여기며 시댁에도 종종 방문하곤 했다. 꽤나 가까워진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고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는 A가 시누이도 없는 시댁에 홀로 방문하였다.

 

시누이의 친구라 여겨 의심 없이 집에 그녀를 들였던 시부모님은 은퇴 이후, 자녀들의 용돈으로 빠듯이 생활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똑똑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파는 물건이라며 한 달치 생활비에 준하는 금액을 쓸모없는 다단계 제품값으로 지불하였다. 이를 알게 된 시누이가 너무 놀라 A에게 연락하여 추궁 끝에 알게 된 A의 진짜 모습은 놀랍고 씁쓸했다. 시부모님이 그토록 부러워했던 건실한 남편도, 스마트폰 속 바탕화면에 '내 심장'이라 쓰여 있던 어린 딸도 모두 거짓이었다. A는 반복되는 외도와 낭비벽으로 인해 일치감치 가정이 깨졌고 명문대 간판으로 쉽게 취업했던 직장에서 잦은 마찰을 일으키며  퇴직과 이직을 반복하여 동종 업계에선 더 이상 취업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자 다단계에 빠져있던 중이었다. 그 와중에도 세련된 외모를 유지하기 위한 허영은 줄지 않았는지 살고 있는 원룸의 월세도 몇 달째 밀리는 중이라며 환불은 어렵다 울먹였다고 한다. 그렇게 구질구질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던 그녀를 다시 보게 된 건 한 TV 프로그램에서였다,

 

출간 작가로서 책에 투영된 자신의 삶에 대해 강연을 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명문대 간판과 안정된 직장은 인생에  있어 일부에 불과하니 스스로를 정확히 진단하고 외적인 것에 치중하지 말라 자신의 딸에게 늘 가르친다는 말을 끝으로 강연을 마친 그녀를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다시 입양 아기의 사망 사건으로 돌아와 양부모가 아이를 입양한 사유에 대해 청약을 위한 대출과 양모의 과시성 성격이 언급되었다. 입양 전부터 동네에서 마주치는 또래 아이의 엄마들에게 다가가 같은 또래의 아이를 곧 입양한다며 묻지도 않은 이야길 먼저 꺼내었고 입양 가정에 대한 방송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며 입양을 자신을 포장하는 도구로 이용했다. 누구나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런데 그 욕망이 오직 타인의 시선을 받기 위한 것만이었다면 다른 방법도 많았을 것인데 어찌하여 가장 힘없는 아이의 삶을 선택한 것이었을까. 차라리 값비싼 명품백을 사서 과시하다 유행이 지나면 처박아 버리면 될 터인데. 아니면 오히려 명품백이었다면 소중히 다루다 싫증이 나도 더스트백을 씌우고 일련번호가 적힌 정품 인증 카드를 챙겨 박스에 고이 담아 되팔 때까지 애지중지 보관했으려나.

 

보이는 것이 전부라 여기는 사회

 

한동안 SNS를 통해 소품을 활용 해 비행기 내부에서 찍은 것처럼 사진을 찍어 #비행중 이라 피드를 올리는 것이 유행이었다. 정말 비행기를 타고 창 밖을 보고 싶은 욕망과 SNS의 허상이 만나 만들어진 것으로 여행을 못 가는 현 세태를 풍자한 것이다. 꿈의 직장이던 항공사가 적자에 허덕여 도산하고 여행사들의 폐업으로 수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은 현실은 안타깝지만 보고 싶지 않다. 아름다운 것들만 보고 싶다. 자세히 들여다 보고 관심을 기울이기엔 내 삶도 녹록지 않다.

 

시부모님께 다단계 제품을 팔았던 A는 요즘 강연과 함께 유튜브 방송도 시작했다. 영상 속 그녀가 있는 공간은 화이트톤의 책상과 화초들이 곳곳에 높인 꽤 근사한 스튜디오 같았다. 시누이에게 A가 이제는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나 보다 물으니 화면에 보이는 그 공간이 전부란다. 얼마 전에도 시누이에게 돈을 빌리려 한 A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었는데, A는 여전히 빚에 허덕이는 삶을 벗어나지 못했고 화면 속 화이트 톤의 그 책상 밑에 이불을 펴야 다리를 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일 만큼 모니터에 붙은 카메라 너머는 온통 옷가지와 살림살이로 발을 디딜 수 없는 작은 옥탑방이라 전했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A가 다시 재기한 것이라 착각한 것처럼 우리 사회가 양부모의 입양을 좋은 사람들의 선행으로만 여기고 그 안의 감취진 추악한 진실은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 끔찍한 비극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막 걸음을 떼어 아장아장 걸으며 엄마, 아빠를 겨우 할 수 있는 나이에 천사가 된 아이가 우리에게 정말 긴 이야기를 해 주고 떠났다. 어른들이 답해야 할 때다.



순하게 보이지만 사나운 우리집 노견 김구찌씨

 

 

매거진의 이전글 죄송합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