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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Jun 20. 2022

비를 쫄딱 맞은 해녀 복장 엄마와 맨발의 아이

아이와 둘이서 괌 한 달 살기

수업을 마친 아이와 함께 집 근처 도쿄 마트(Tokyo Mart)로 향했다. 상호 명 그대로 일본 식자재와 반찬, 그리고 도시락을 파는 곳으로 로컬들에도 점심 도시락이 늘 인기가 많고 나는 해변으로 피크닉을 가거나 아이가 좋아하는 나또를 사기 위해 종종 들리곤 했는데 이번엔 선물을 사기 위함이었다. 낯선 타지에서 도움을 받았으니 이를 당연시 여기지 않고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 감사 인사는 해야 된다 생각했고 또 아이에게도 일련의 과정을 함께 해 자연스레 배우게 하고 싶었다. 엄마도 바보 같은 실수를 할 수 있고 그래서 매우 부끄럽지만, 어쨌거나 해결하였고 끝은 맺어야 한다는 일종의 과정을 말이다.



오후 2시 반이면 수업을 마치는 아이와 루틴 하게 수영장에서만 놀기 보단 섬 이곳저곳을 함께 여행하며 알차게 보내려고 매주 새로운 장소로 일정을 짜고 있다. 그중 한국 여행자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괌 여행 코스인 ‘피시 아이 마린 파크(Fish Eye Marine Park)’에 가기로 했다. 이곳은 투몬에서 하갓냐(Hagåtña)를 지나 Marine Corps Dr.(1번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만나는 피티 베이(Piti Bay)에 있는 해중전망대(Observatory Viewing)이다. 괌섬에서 새로운 장소를 찾고자 할 때 나는 종종 괌에서 근무했던 한국 Travel nurs들의 블로그와 유튜브를 참고하는데 이유는 적어도 3개월에서 1년 정도 머무르며 근무하기에 여행자와 생활인으로서의 괌을 모두 경험해본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여, 귀여운 집 모양의 전망대에서 사진 찍고 해저 9m에 달하는 관측소의 풍경만으로도 아이들에겐 충분히 즐거운 장소이지만, Travel nurs 유튜브를 통해 스노클링 명소로서 최고라는 말에 물놀이 장비를 챙겨 아이와 방문했다. 이곳은 1999년 괌의 5대 해양보호구역(MPA) 부지로 선정되어 어떠한 종류의 어업도 허용되지 않아 낮은 곳에서부터 예쁜 물고기들을 만날 수 있다. 코를 막는 스노클링 물안경에 익숙지 않아했던 아이도 눈앞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자세히 보기 위해 시키지 않아도 어느새 바닷속에 얼굴을 밀어 넣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도 나도 한참을 바다에서 놀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구름에 차로 돌아오게 되었다. 시간은 어느덧 매표소 직원도 퇴근한 오후 5시. 이 시간엔 고속도로 옆에 있는 장소라 저녁에 야간 다이빙을 즐기러 오는 이들 외엔 인적이 드문 곳이다. 우리보다 앞서 바다에 들어갔던 학생들은 세차게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망대 끝의 깊은 바다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고, 나와 아이는 주차장 한편에 있는 샤워 호수에서 대충 바닷물을 헹궈내고 차에서 옷을 갈아입을 심산이었다. 세차게 내리는 빗물에 비닐백에 넣어 둔 스마트폰과 차키를 잠시 차 앞 좌석에 넣어두고 벽에 호수 하나 달아놓은 곳에서 대출 씻고 차문을 여는데


어?… 안 열리는 거다. 설마 잠긴 건가…아…이런


스마트폰과 차 키를 넣어 둔 비닐팩이 눈앞에 보이는데 차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비는 쏟아지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은 없고 도로에선 차들만 세차게 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아이는 또 깨끗이 씻긴다고 아쿠아 슈즈도 차 안에… 하… 바보 같은 엄마를 둔 덕에 아이는 무슨 죄인가 말이다. 당황한 내 표정에 6살 아들이 되려 눈치를 살피며


"엄마 괜찮을 거야 누가 도와주겠지."


하는데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주변을 보니 도로 건너편에 'Visitor Center'라고 쓰인 건물이 보였다. 정문 유리문 한쪽이 열려있는 것이 보여 저곳에 가면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생각하면 정말 아이에게 미안한 건, 4차선 도로를 달리게 한 것이다. 한국의 고속도로처럼  100km로 달리는 건 아니지만, 이곳도 남부로 향하는 해안 도로라 차들이 시내보단 속도를 내는 편인데 이런 위험한 길을 건너게 한다니 엄마로서 정말 최악이었다. 그렇게 심호흡 한번 하고 아이와 함께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도로 건너편 건물에 들어서니 영업이 끝난 레스토랑의 테이블이 보이고 오른쪽에 문을 열으니 다행히 사람들이 있는 사무실이었다.


퇴근 준비를 하던 이들은 갑작스러운 우리의 방문에 모두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흡사 해녀처럼 보이는 검은색 래시가드를 입은 웬 아줌마와 그 옆엔 젖은 수영복 차림에 심지어 맨발인 유치원생이 사무실로 들어왔으니 말이다. 크게 놀랐던 직원들은 이내 무슨 일이냐 물었다. 이들은 모두 ‘피시 아이 마린 파크’ 회사의 직원들로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차키가 차 안에 있는데 문이 잠겨 스마트폰도 없다고 렌터카로 전화 한 통 쓸 수 있냐는 말을 하니 회사 로고가 새겨진 하늘색 유니폼 티셔츠를 입은 중년의 여성이 일어나 “혹시 한국 분이세요? 하고 한국말을 하는 게 아닌가?” 그녀의 이름은 가오리상으로 80년 대에 도쿄에서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인바운드 가이드를 했다고 전했다. 가오리상을 비롯한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은 나에게 렌터카 회사를 물은 후, 전화를 걸어 내 사정을 전하고 이곳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문제를 해결해 줄 직원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 와중에 렌터카 회사에선 이름만으론 자신들의 고객이라 확인이 안 된다며 차량 넘버를 요구했는데 그때, 마리안이라는 여성분이 길 건너로 다녀오는 건 너무 위험하니 아이와 이곳에 앉아 있으라 하고 대신 다녀와 주었다. 그렇게 렌터카에서 출장비 50$과 이곳에 오기까지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하였다. 아니 이 섬을 한 바퀴 돌아도 그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은랴마는 누굴 탓하랴 내 실수인 것을. 그렇게 나와 아이는 직원들의 배려에 사무실 밖 의자에 앉아 렌터카 직원을 기다렸다. 시간은 6시가 넘어 직원들이 퇴근을 해야 했는데 회사 책임자로 보이는 이가 한국말을 하는 카오리와 마리안에게 우리가 안전하게 렌터카 직원을 만날 때까지 남아 보호하라고 지시하였고, 아이에게 웃으며 초콜릿을 건넸다. 부끄러움과 고마움으로 힘없이 앉아 있는 나와 달리 아들은 아이에게 장난을 걸어주는 마리안을 따라다니며 노래도 부르고 태권도 동작을 보여주며 즐거워하였다. 이 상황에서도 밝은 아이가 나는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렌터카 회사에서 사람이 도착했고 우리는 석양이 보랏빛으로 바뀔 때쯤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아이를 따듯한 물에 씻기고 저녁을 먹였다. 만화를 보며 밥을 한 술 뜬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이제 괜찮아? 세상엔 고마운 사람이 참 많다 그렇지?”


6살 아들의 말에 긴장했던 마음이 비로소 풀리고 웃음이 나왔다.


“웅, 너무 부끄럽고 고마웠어.”


다음날, 도쿄 마트 냉장실에서 보았던 북해도산 롤케이크를 사서 아이와 다시 방문하였다. 금요일은 전망대가 휴무인지라 어제 근무했던 직원의 절반만 남아있었다. 직원들은 환하게 웃으며 괜찮냐 안부를 물었고, 나와 아이는 케이크를 전하며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전했다. 엄마의 바보 같은 행동으로 벌어진 일련의 소동이었지만, 아이도 나도 마음 따듯한 순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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