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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Jun 15. 2022

괌도 일기(GUAM島日記)

아이와 둘이서 괌 한 달 살기

주차장 입구에 들어서자 해는 쨍쨍한데 소낙비가 수압 상승 샤워필터처럼 쏟아졌다. 평소 같으면 호들갑을 떨며 차로 뛰어갔을 터인데 내리는 비를 맞으며 느긋하게 걷고 있다. 까맣게 그을려진 얼굴에 슬리퍼 차림으로 걷고 있는 나는 지금 남태평양의 작은 섬 괌에 와있다.


2020년 1월 아이와 70일간 지냈던 쿠알라룸푸르에서 돌아온 직후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으로 인해 세상 밖 여행은 접어두게 되었다. 그사이 여섯 살이 된 아이가 서툴게 그린 사람 얼굴마다 마스크가 이목구비의 일부처럼 되어버렸고, 작년 하반기부터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던 아이들이 일제히 등교를 시작한 그즈음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도 코로나가 동시 다발적으로 안 걸린 아이를 찾는 게 더 빠를 만큼 맹열히 휩쓸고 지나갔다. 그렇게 등원과 휴원을 반복하는 일상에 익숙해져 갔다.


지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부분의 국가에서 백신 접종을 완료하게 되었고 확산 추이도 완만해지는 엔데믹(endemic)으로 들어서며 관광업이 주업인 나라들을 필두로 잠겼던 국경의 빗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중 나는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하고 가까운 남태평양의 작은 섬 괌으로 아이와 떠나기로 결정했다.


괌으로 떠나게 된 이유는


사실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4시간 반 정도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와 우리가 떠나온 5월에도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를 제외한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해외 입국자의 격리 해제 시행 시범 단계에 있었고 한국으로 돌아갈 시, 현지에서 PCR 검사 비용은 모두 자가부담인데 절차도 번거롭기도 하고 금액도 꽤 든다. 그런데 지난 3월 괌 정부관광청에서 해외 입국자의 격리 면제와 PCR 검사 비용을 무료로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신문기사를 읽은 그날 나는 쌓아 둔 항공 마일리지로 괌으로 떠나는 티켓을 바로 예매했다. 마일리지 예매이다 보니 출발과 도착 날짜는 사용할 수 있는 좌석 일정에 맞추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한 달 하고 열흘 더 머무르는 일정이 되었다. 환율이 고공행진 중이라 예상했던 체류 비용보다 예산을 좀 더 잡아야 했지만, 예금의 일부를 외환 계좌로 분산해 두었던 습관이 도움이 되었다.


한 달 살기를 통해 얻고자 함은


아이에게 평생 자산으로 남겨주고픈 건 다양한 환경에서의 경험을 통해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함과 무엇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등을 통해 영상물을 보며 자라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할 수도 있지만 미취학 전만큼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유튜브가 아닌 직접 오감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펜데믹 기간 동안 동네 놀이터마저 폐쇄되었고 태어나 살아온 일상의 절반을 마스크를 착용한 채 답답하게 지냈기에 땀을 뻘뻘 흘리며 실컷 뛰어다니게 해 주고 싶었다. 온갖 기능이 모두 장착된 장난감이 없어도 모래랑 조개껍질만 있어도 상상력으로 온종일 재미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이니 말이다.


썸머 캠프가 영어 학원보다 효과적인가?


포털사이트에 괌 썸머캠프를 검색하면 맘 카페마다 엄마들의 질의응답 글이 한가득이다. 썸머 캠프의 대상은 우리 아이와 같이 60개월 미만의 유치원생 연령에 해당하는 킨더 캠프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주를 이룬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캠프의 참가 목적을 아이와 여행 추억 만들기 등 각자의 목표에 맞게 세우고 참가하나 간혹 영어에 흥미가 없는 아이를 캠프를 통해 단 기간에 영어 실력을 향상하고 싶다는 글이 있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 전하겠다. 한 달이라는 기간은 한국의 학군지로 불리는 유명 학원가에서 읽고, 쓰기를 온종일 하는 것이 실력 향상에는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무엇보다 영어권 국가의 교육 시스템 속에 아이가 적응하려면 아주 기초적인 영어로 듣고 말하는  정도는 되어야 캠프에 무리 없이 참여할 수 있다. 우리 아이 역시 영어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가 아닌지라 비행기 티켓을 예매한 그날부터 주 2회 영어학원에 등록해 기초 영어 수업을 받았다. 적어도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은 해야 하니 말이다. 아이에게 영어가 입시를 위한 학습용 언어가 아니라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영어권 국가의 환경에 노출을 원하는 엄마와 아이들에겐 썸머 캠프가 도움이 될 것이다.


괌 섬은 지금 어때?


3년 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도착 첫날부터 일과를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괌에 와서는 날씨 탓인지 이곳 사람들에 동화되어 느긋해진 건지 20여 일을 지내고 나서야 끄적이고 있다. 흔히들 괌을 면적으로 비슷한 거제시와 비교하는데 거제시도 인구가 24만 명에 가까운데 비해 괌은 꾸준히 증가하고는 있지만 16만 명에 불과하다. 괌 관광객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를 담당하는 한국이 여름 방학과 휴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7월부터는 이곳도 북적이겠지만, 아직까지는 어딜 가나 한적하고 평화롭다. 괌은 미국령이긴 해도 미국에서 오기 정말 먼 곳이다. 미국 본토(주(state))로 가려면 일단 하와이까지 가야 한다. 즉, 괌에서 LA, New York 등지로 갈 경우 목적지에 따라 하와이나 도쿄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그래서 괌을 천조국의 흑산도쯤으로 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의 경우 비자 발급도 까다롭고 중국 현지에서 자가격리 기간이 길어 괌에서 지금 마주치는 중국인은 중국인 관광객이 아닌 타이완 사람들이거나 괌 거주자이다. 전체 인구에 대다수가 차모로 원주민과 필리핀 그리고 아시아인으로 백인 비중이 현저히 낮다. 또 백인들 중 다수가 미군 소속이다. 괌은 하와이와 더불어 미군의 태평양 전략 요충지로 미 해군, 미 해병대, 미 공군이 주둔해 있다. 괌에서 가장 아름다운 리티비안 해변(Ritidian Point) 근처에 앤더슨 공군기지(U.S. Air Force Andersen AirBase) 그리고 괌 미 해군기지(U.S. Naval Base Guam)가 섬 서쪽 부근에 자리 잡고 있다. 부대 내에도 군인 가족을 위한 학교가 있지만,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도 군복을 입은 엄마들이 등 하원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아이와 같은 반 친구 알리의 엄마도 공군이다.

우리가 도착한 5월은 건기에 해당되고 6월이  지금은 연중 가장 더운 시기이며 6 말부터는 스콜성 호우가 내리는 우기가 시작된다. 2 반만의 타국 생활에 한껏 들떠 챙겨  원피스와 화장품은 도착  일주일 만에  가방에 다시 넣었다. 단기 여행을  것이라면 더위를 참고 인생 샷을 남기겠다며 꿋꿋이 입겠지만, 이곳에선 치렁치렁한 원피스 보단 티셔츠에 반바지와 슬리퍼로 간편한 옷차림에 아침부터 낮까진 운전할  팔이 타들어갈 듯이 햇살이 강하고 쇼핑몰이나 마트는 에어컨이 쎄기 때문에 긴팔  하나를 들고 다니고 있다. 요즘 낮에 주차된 차에 올라탈 때면 불가마 한증막에 들어가는 느낌인데 해가 지고 나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 비로소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이들을 보게 된다. 공해가 없는 청정한 남태평양  가온데 있는 이곳의 저녁노을은 황홀하다는 표현도 부족할 만큼 아름답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난 괌섬의 밤하늘은 반짝이는 별들이 수놓는다. 매일 이렇게 쏟아지는 햇살을 쬐고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보고 살아서인지 이곳의 사람들은 늘 웃고 친절하다. 타인과의 눈 마주침에 어색한 게 당연한 서울에서 경직된 얼굴로 살다 온 나도 여기선 긴장을 풀고 웃고 다닌다. 마흔 넘어 생긴 작은 기미에 유난을 떨며 피부과에서 레이저를 하네 마네 하던 나인데 괌섬 생활 일주일 만에 아이도 나도 차모로 원주민처럼 까맣게 그을리고 나니 더는 기미 정도는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매일 아침 드라이를 하던 습관도 이곳에서 하지 않는 걸 보면 마흔 중반을 살아오며 이렇게 외모에 신경을 안 쓰고 느긋히 지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대신 7시 45분에 등교하는 썸머 캠프 일정에 맞춰 점심 도시락을 싸고 아이를 깨워 아침밥을 먹이느라 나에겐 미라클 모닝 시간에 가까운 아침 6시에 기상하고 있다.  


괌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플루메리아(Plumeria)이다. 향긋한 향을 지닌 이국적인 이 꽃은 나무에 피어 있을 땐 그 형태가 조화처럼 꼿꼿한데 바닥에 떨어져 하루만 지나도 갈변해 버린다. 플루메리아 꽃말은 "당신을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라는데 결혼 후 10년 만에 만난 아이가 내겐 플루메리아와 같은 존재이기에 떨어진 플루메리아 꽃잎처럼 기억이 바래지기 전에 아이와 함께 하는 괌섬에서의 시간을 남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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