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둘이서 괌 한 달 살기
괌섬에서는 하루가 일찍 시작된다. 한국에서 유치원생들의 평균 등원 시간이 9시인데 반해 이곳은 8시에 바로 수업이 시작되기 때문에 7시 45분이면 담임선생님과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실에 도착한다. 한국과의 시차는 한 시간으로 괌이 한 시간 더 빠르기 때문에 사실상 새벽 5시에 기상하는 것과 같다. 늘 8시 정도에 일어났던 아이에게 기상 시간을 앞 당기는 건 아이도 나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여, 우리는 썸머 캠프가 시작되기 전 PIC 도착한 첫날부터 열흘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연습했다. 다행히도 태평양의 햇살은 너무도 강렬해 아침 6시면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떠졌고(일부러 암막 커튼을 치지 않았다) 오후 내내 바다와 수영장에서 살다시피 한 생활에 취침 시간도 빨라져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시작되는 괌의 시간에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었다. 괌에서 썸머 캠프나 스쿨링을 염두해 두고 있다면 기상 시간에 대한 훈련도 어느 정도 필요할 것이다.
킨더 캠프에서는 무엇이든 스스로
아이의 나이가 만 60개월 미만의 경우 미국 1학년이 아닌 그 아래 단계인 '킨더 캠프(Kinder Prep)’에 가야 한다. 에이전시를 통해 아이의 생년월일을 미리 알려주었고 학교 측에서 킨더 썸머 캠프 서류를 받게 되었다. 사실 에이전시를 통하지 않아도 엄마가 직접 원하는 학교에 양식을 다운로드하여 등록해도 무방하고 심지어 한국 학생 비중이 매우 높은 ‘세인트폴(Saint Paul Christian School)’의 경우 한국 담당자가 있어 카톡으로도 등록 문의가 가능하다. 나는 ‘센존 스쿨 (St. John's school)’로 보내고 싶었고, 괌 한 달 살기와 썸머 캠프 등록을 알아보던 시점에는 원하는 학교의 프로그램이 학교 사이트에 공지되기 직전이라 에이전시를 통해 등록하였다. 에이전시를 통해 좀 더 편히 진행 한 장점도 있었지만, 숙소 선택권이 적었던 단점도 있었다. 다만, 등록을 준비하며 좀 더 안전하고 명확하게 진행하고 싶었기에 했던 선택이었다.
썸머 캠프 시작 전, 열흘 정도의 시간을 여행만 다니며 지내기엔 아까워 이곳 생활 적응에 도움이 될 수 있게 괌 현지 스포츠 아카데미를 검색해 등록 여부를 문의하였고 학교에 제출할 서류를 준비하면서 아이에게 3개월 후 우리는 괌에서 살아야 한다는 걸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며 그러기 위해선 간단한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명분으로 하원 후, 영어 학원에 등록시켰다. 괌 도착 후, 썸머 캠프 입학 전에 한 주간 다닌 스포츠 아카데미 ‘펀 플렉스 괌(FunPLEX Guam)’수업은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할 아이에게 쿠션 역할을 해 주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두 달 반 동안 유치원을 다닌 경험은 있지만, 팬데믹으로 3년 가까이 외국에 나온 적이 없었기에 외국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는데, 스포츠는 아이가 좋아하고 자신 있어하는 과목이라 즐겁게 다니며 낯설음을 줄일 수 있었고, 학원생과 코치님 모두 로컬 사람들이었지만, 수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하시는 원장님이 한국분이셔서 아이가 부담 없이 참여했다.
괌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한 번이라도 생활해 본 사람이라면 한국의 병원과 유치원이 얼마나 편리하고 고마운지 잘 알 것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6세 아이들이 큰 일을 보면 한국의 경우 선생님들께서 말끔히 처리를 도와주시지만, 괌 킨더 캠프에선 아이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 이를 한국에서부터 훈련을 해 보았지만, 비데 사용은 가능해도 일반 화장실에선 영 미덥지 않아 등교 전에 무조건 큰일을 보도록 했다. 다행히 건강한 아이는 눈뜨면 아침밥을 달라고 하는데 내가 도시락을 싸는 동안 밥을 먹고 나면 화장실로 직행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비롯 이곳의 학교들도 자체 카페테리아에서 점심 식사를 신청할 수 있다. 캠프 첫 주는 나도 학교 식단을 보고 신청했다. 주로 이곳 음식인 로코모코와 치킨 그리고 피자였는데 킨더 반 친구들이 우리 아이 제외하곤 모두 로컬과 미군 자녀들이라 처음엔 비슷한 걸 먹는 게 동질감을 줄 거라 생각해 신청했었다. 그런데 3일쯤 지나 아이가 엄마 도시락이 먹고 싶단다. 이유는 학교 음식이 짜다고. 그렇게 나는 한국 유치원에 감사한 마음을 매일같이 상기시키며 아침 6시면 아이 도시락을 싸주는 부지런한 엄마가 되었다.
물론, 이곳도 사설 데이케어(어린이집과 비슷한 보육시설)에선 화장실 뒷 처리 등을 해 준다. 썸머 캠프는 교육 시설인 학교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화장실 처리와 옷 갈아입기 등 모두 아이 스스로 해야 한다. 캠프 수업 활동은 담임 선생님이 만든 텔레그램 단톡방에서 공유되었는데, 이곳에선 주로 ‘텔레그램(Telegram)과 ‘왓츠앱(WhatsApp)’이 카톡을 대신하고 있어 캠프를 보내는 엄마는 두 앱을 다운로드하여 기본적인 사용법을 익혀두면 좋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텔레그램을 사용하는데 익숙지 않았던 나는 두 번이나 단톡방에서 나가 번번이 다시 추가해 달라고 요청해야 했다.
그래서 영어는 좀 어때?
썸머 캠프를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한 집중 특강 수업의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앞서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겠다. 영어가 모국어인 곳에서 생활하며 로컬 친구들과 수업을 하는 경험을 통해 영어가 지루한 공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넓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는 걸 자연스레 깨닫게 해 주고 그동안 익혔던 아이의 영어 수준을 아이 스스로 가늠해 보는 시간으로 여기는 게 썸머 캠프를 보낸 엄마들의 평균적인 바람일 것이다.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 지난겨울 괌에서 두 아이를 스쿨링 시켰던 후배의 경험이 이곳 생활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일반 유치원 출신의 초등 3학년과 학습식 영어 유치원에 재학 중 인 7살 남매는 이곳에서 얻어 간 부분이 각기 달랐는데 먼저 큰 아이의 경우 두 달간 이곳에서 생활하며 영어에 자신감이 붙어 머리로는 알면서도 입으로 발화가 안 되었던 회화가 학교 매점과 카페에서 간단한 주문 등을 스스로 해보며 할 수 있게 되었고, 영어 구사능력이 뛰어났던 둘째의 경우는 암기와 작문 위주의 빡빡한 한국식 영어 유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곳의 수업이 모처럼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학교 생활의 추억을 만들었다 전했다.
아이와 한 달 살기를 떠나오기 전, 반복적으로 본인의 이름과 나이, 엄마의 이름, 화장실이 가고 싶다, 물 주세요, 배가 아프다 등을 연습시켰지만, 과연 캠프에서 상황에 맞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아이에게 애슐이라는 로컬 친구가 생겼고 하루는 방과 후,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엄마, 너 괜찮아? 가 영어로 모야?”라고 물었다. 왜 알고 싶냐 물으니 애슐이 감기로 학교를 안 나왔다는 거다. 하여, 애슐 학교 오면 “Are you ok?’라고 하면 돼 라고 했는데, 다음날 학교에서 애슐을 보자마자 “Are you ok?’를 외쳤고 애슐이 환하게 웃으며 아이와 허그를 나누었다. 친구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었기에 머릿속에 박혔는지 아이는 이 말을 나에게도 종종 사용한다. 주로 내가 화를 낼 때지만 말이다.
내가 한 달 살기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익숙했던 환경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며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유연한 사고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뿐만 아니라 점점 편협한 꼰대가 되어가는 나에게도 해당된다.) 학창 시절 개학 첫 날, 학년이 바뀌어 새로운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냐야 했던 긴장감을 기억할 것이다. 몇몇은 아는 얼굴이 있던 교실이었음에도 바뀐 환경에 적응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하물며 언어도 다른 이곳에 모두 처음 만나는 이들만 있는 공간에 적응하는 건 아이에게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다. 물론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부분이 이기도 하지만, 부모라고 내 아이를 정확히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여기기에 한 달 살기와 썸머 캠프를 계획한다면 떠나기 전, 아이와도 꾸준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례로 캠프 첫날, 아이 옆 반에 배정되었던 한국 부모가 자신의 아이는 영어 유치원을 1년 반 이상 다녔기에 유치부가 아닌 1학년 과정으로 바꿔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학교의 답변은 킨더에서 적응을 먼저 해 보고 문제가 없다면 1학년 수업 참여를 고려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정작 문제는 캠프가 시작되자 아이가 교실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거부한 것이었다. 부모는 아이의 영어 구사 능력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지만, 낯선 환경에서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못했는지 무척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 아이가 제시간에 등교하는 모습은 2주가 지났을 무렵부터였다. 썸머 캠프의 반을 아이의 등교 거부로 참여하지 못한 것이다. 미취학 전 아이들에게 낯선 곳처럼 두려운 곳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성향에 맞게 충분히 이해시키는 시간이 필요하다. 괌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로의 캠프와 스쿨링을 검색해 보면 필요한 서류가 무엇인지, 받아야 할 검사가 무엇인지 자세히 잘 나와있기 때문에 누구나 서류 준비는 문제없이 할 것이다. 우리 아이는 좋아하는 바다를 매일 갈 수 있고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 만으로도 즐겁게 썸머 캠프를 기다렸지만, 이는 아이가 미취학 전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좀 더 쉬웠을 것이다. 초등학교만 가도 아이들은 자신만의 생각이 있기에 꼼꼼한 서류 준비만큼 아이가 새로운 상황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충분히 설명하고 도와주는 것이 캠프를 준비함에 있어 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