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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Mar 15. 2023

버킨백 대신 실리콘밸리

아이와 함께 실리콘밸리에 도착했다.

만기 일자 2022년 10월 5일, 은행으로부터 적금 만기 자동 해지 문자를 받고 통장의 별칭란에 적힌 ‘버킨’이라는 문구에 피식 웃음이 났다. 마흔에 찾아온 아이는 임신 내내 거꾸로 있더니 역아 산모를 위한 나비 체조 수련이 부족했는지 만삭까지 제자리로 오지 못해 제왕절개 수술을 하루 앞두고 있었다. 수술 하루 전 짐을 싸며 드디어 다리 저림과 함께 했던 임산부 생활을 끝낸다는 해방감과 무언가 스스로에게 기념이 될 만한 선물을 하겠다는 것이 고작 H사의 명품 백을 사기 위한 적금이었다니. 그러나 당시 나는 호르몬의 지배를 받아 출산을 앞두고 태어날 아기에 대한 설렘과 걱정이 분 단위로 요동치는 정상인과 도른자 사이 그 어디쯤에 있었다고 애써 변명해 본다.

 

노산 산모였기에 아이 건강에 대한 걱정이 병원 검사 결과를 통해 점차 줄어들자 그 자리를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면 마흔 중반을 넘어설 내 모습에 대한 걱정이 대신했다. 분명 머리숱도 줄 것이고 눈가에 주름이 가득할 거란 생각에 나를 치장하고 빛내 줄 무언가가 필요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의 예측대로 나는 지금 머리숱도 줄었고 눈가 주름에 기미가 더해진 개구쟁이 일곱 살 아들의 엄마가 되어있다. 거기에 한동안 마스크를 쓰고 지냈던 팬데믹 기간을 지나오니 화장은커녕 선크림이라도 잊지 않고 바르면 다행일 지경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해 한결 느긋해졌고 고작 유치원생에 불과해도 아침밥도 챙겨 먹는 체력 넘치는 아들의 태권도, 수영, 아이스하키 등 운동으로 꽉 짜인 9시 숙면 프로젝트 일정에 맞춰 살아가다 보니 오랜 기간 일했던 직장 생활 못지않게 엄마로의 하루도 카페인 없이는 살 수 없을 만큼 바쁘게 돌아간다.  

 

그렇게 ‘버킨’이라고 쓰인 통장으로 자동이체를 걸었던 적금이 만기가 도래해 목돈이 되었고 나는 이를 버킨백을 사는 대신 아이와 함께 가치 있는 경험에 투자하기로 마음먹고 남편과 상의하니 이 계획을 지지해 주었다. 우리는 미국의 많고 많은 도시 중 우리가 늘 사용하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탄생지이자 세계적인 IT와 TECH 기업들이 모여 있는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실리콘밸리를 품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의 산호세(San Jose) 지역은 미국에서도 부동산과 물가가 높기로 유명하다. 단순히 영어만을 목적으로 했다면 보다 저렴한 지역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장기 체류가 아닌 두 달이라는 주어진 시간 속에 안전한 주거와 더불어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시대에 필요한 인재들이 모인다는 이 지역이 궁금했기에 이를 모두 충족시킬 지역으로 산호세를 선택했다.


San Jose, CA

  이곳에 온 지 2주가 지났고 아이 아빠는 친정 오빠집에 가 있는 노견도 챙겨야 하고 업무적으로 가장 바쁜 시즌이 도래해 일주일 만에 서울로 돌아갔다. 우리는 에이비앤비를 통해 구한 산타클라라(Santa Clara) 대학 인근에서 지내며 아이는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캠벨(Campbell)에 있는 크리스천 사립학교를 다니고 있다. 통상 3개월 체류가 가능한 이스타(ESTA) 비자로는 퍼블릭 스쿨은 입학이 어렵고, 사립의 경우 학교 방침에 따라 가능하다. 지금의 학교는 단기 등록의 경우 8주 이상 등록해야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고 11월 초에 학교에서 요구한 서류(예방 접종 기록과 유치원 추천서)를 준비해 12월에 최종 통보를 받았다.


Santa Clara St, San Jose, CA

이웃집 마당에 어느 집 할 것 없이 오렌지와 레몬이 주렁주렁 열려 있어 이곳이 캘리포니아임을 매 순간 느끼게 해 주지만 요즘 아침과 밤사이에 이상 기후로 비가 오고 있다. 장마가 있는 나라에서 온 나로서는 낮에는 쨍하고 해가 나니 밤사이에 내리는 비가 대수랴 싶은데 동네 마트에 갈 때마다 할머니 캐셔 분이 storm에도 불구하고 와주어 고맙다 말씀하신다. 가까운 나파밸리(Napa Valley) 지역 산불 소식이 매년 끊이질 않을 만큼 건조한 지역이다 보니 이 정도 비바람에도 주지사에게 재난 메일을 받는 산호세의 3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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