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 네 마리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체크인
몇 마리라고?
네 마리?
아니... 아니 한 번도 해본 적도 없는데...
네 마리씩이나 그게 가능한 거야?
운전 중이라 스피커폰으로 볼륨을 높여 들으니 남편의 떨리는 음성을 통해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 네 마리… 이왕 태워 가는 거 비행기에 최대 다섯 마리래. 그래서 성인 1인당 2마리씩. 그러니까 총 네 마리가 된 거야. 오늘 검역을 위해 티켓이랑 여권 정보 보냈어.
이미 다 진행된 일이라니 남편도 더는 할 말이 없었는지 탄식에 가까운 깊은 한숨 소리와 함께 통화를 마쳤다. 남편의 반응에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히 말했지만 사실 나 역시 남편과 다를 바 없었다. 할 수 있다고, 어쩌면 지금 아니면 다시없을 기회일지도 모르는데, 좁은 철창 우리에 갇힌 삶이 전부였을 유기견들에게 고단했던 삶의 끝이 안락사로 귀결되지 않기를, 세상 어딘가엔 함께 해 줄 가족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 생각하고 최대한 태워 보겠다 답해 놓고는 마음속엔 15년 만에 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실수 없이 해낼 수 있을지, 혹여 긴 비행에 지친 아이들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나 않을지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유기견 해외 이동봉사"라 불리는 비행을 하겠다고 결정한 그날은 버킨백과 맞바꾼 실리콘밸리 두 달 살기 출국을 한 달여 앞두고 고령의 나이와 디스크 재활 관리로 함께 미국에 갈 수 없어 여행 기간 동안 친정 오빠네서 지낼 우리 집 16세 노견의 건강 검진을 위해 동물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던 날이었다. 지루함을 달래려 인스타그램을 통해 강아지들의 모습과 곧 떠날 샌프란시스코 사진을 보고 있는데 알고리즘의 마법은 “샌프란시스코 긴급 해외 이동 봉사자를 구합니다”라는 이미지를 누르게 하였고 그렇게 우리 가족은 총 네 마리의 유기견과 비행을 떠나게 되었다.
‘유기견 해외 이동봉사’는 길 위에 버려진 아이들과 개농장이라 불리는 지옥 같은 곳에서 구조되어도 국내에선 품종견이 아니어서, 크기가 커서, 몸이 불편해서 등의 이유로 입양이 거부되어 보호소 생활 후 안락사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강아지들을 해외에서 입양을 원하는 가족에서 보내는 자원봉사이다. 해외로 출국하는 사람의 동반 반려동물로 등록되면 유기견만 단독 비행하는 것에 비해 낮은 비용이 책정되어 더 많은 유기견들에게 기회가 돌아간다. ‘캐나다 체크인’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관련 내용이 방송되어 많이 알려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 수요에 비해 해외 이동봉사 지원자가 부족한 상황인데 특히나 팬데믹 기간 동안 국가 간의 이동이 멈추며 많은 유기견들이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어야 했다. 타 지역에 비해 샌프란시스코 이동 봉사자 모집이 자주 올라오는 이유는 캘리포니아주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반려동물 구매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AB485'라는 법안은 상업적 목적으로 동물을 번식하고 사육하는 펫샵 등에서 반려동물을 구매할 시 5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이 법안으로 캘리포니아주 주민들은 반려견을 키우려면 자연스레 유기견을 가족으로 맞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이동 봉사자 긴급 모집에 DM을 보내자 금세 비행 일정과 탑승객 수를 묻는 회신이 왔다. 이후엔 카톡 메신저로 자원봉사자 분들과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전달받았는데 사실상 번거로운 서류와 검역 준비는 유기견들을 구조한 분들과 보호소 단체 분들이 모든 걸 준비해 주시기에 우리 가족이 공항에서 해야 할 일은 유기견들을 수화물 목록에 올리고 출국 시간보다 한 시간여 먼저 가는 것뿐이었다. 출국 전 날까지 꼼꼼히 설명해 주신 덕에 가벼운 마음으로 두 달이라는 꽤 긴 시간을 지낼 짐들을 챙겨 공항으로 출발했다. 사진으로 만난 유기견 들이지만 10시간여의 비행을 앞둔 녀석들에게 무엇이라도 챙겨주고 싶어 전 날 딸기를 주어도 되는지 사전에 묻고 깨끗이 씻어 준비하였다.
여섯 살 아이에겐 왜 우리가 네 마리의 강아지들을 데리고 떠나야 하는지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했는데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걸 공항에 도착해 자원봉사자 분들을 만나는 순간 깨달았다.
서울에서 출발한 우리 가족보다 두어 시간 미리 공항에 도착해 검역 과정과 긴 비행으로 답답할 아이들을 충분히 산책시키고 배변시키기 위해 보소호 자원 봉사자 분들과 함께 유기견들이 입양되어 가정에 적응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돌보며 사회화에 도움을 준 위탁 가정 가족들이 모두 나와있었다. 공항에서 마주한 유기견들은 예상했던 모습과 너무도 달랐다. 위탁 가정에서 얼마나 사랑을 아낌없이 주었는지 처음 본 이들은 녀석들이 유기견일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준비해 온 딸기를 내어주는데 차분히 받아먹는 녀석들이 이쁘고 기특했다. 탑승 수속을 밟고 자원봉사자 분들과 검역 서류를 들고 유기견들의 비행 경비를 결재하면 끝이었다. 경비 역시 보호소에서 처리해 주시기에 우리는 그저 물리적으로 아이들을 이동시킬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데려가 주어 고맙다는 자원봉사자 분들의 인사말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기다리고 있을 현지 분들에게 우리 가족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보낼 사진을 찍고 나니 수화물 구역으로 갈 케이지에 태우기 전,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이상 아이들을 돌보아 준 위탁 가정의 보호자 분들이 아이들을 품에 꼭 안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 주책맞게 콧등이 시큰해졌다. 이 와중에 누군가 훌쩍이며 코를 풀어 돌아보니 긴 시간 함께 살아 못난 것도 닮는지 남편도 눈이 뻘게져 있는 게 아닌가. 오히려 여섯 살 우리 아이는 케이지마다 옮겨 다니며 작은 목소리로 비행 걱정하지 말라 당부하고 있었다.
긴 비행을 마친 우리는 서둘러 짐 찾는 곳으로 나왔다. 유기견들이 무섭진 않았을지 물은 먹었는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기다리는데 네 녀석 모두 별 탈 없이 도착해 다행이었다. 아이는 또 케이지마다 칭찬을 해 주고 있었고 곧 가족을 만날 거라는 말도 해 주었다. 입국 심사를 지나 검역관에게 자원봉사자 분들이 챙겨준 검역과 예방 접종 서류를 보여주니 5분도 걸리지 않고 모든 수속이 끝났다. 출국장을 나서 우리 가족을 찾을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으로 주위를 두리번 대자 입양 가족들이 하나 둘 환하게 웃으며 우리 가족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저 비행에 동행했을 뿐인 우리에게 모두 감사하다는 따듯한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마지막 왼쪽눈에 매력적인 점박이 무늬 쿠키까지 보내고 나니 긴장이 풀려 공항 의자에 앉자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6살 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좋은 사람이었네.
나도 엄마랑 이모들처럼(자원봉사자분들) 좋은 사람 할 거야.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엄마는 잔소리쟁이 대마왕이라고, 제발 흘리지 말고 먹고, 집에서 뛰지 말라고 목소리 높여 화를 낼 때마다 나를 피카추로 만들어 포켓몬에 가두겠다 했던 우리 아이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