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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희 Feb 09. 2020

고독

인간의 근원적 감정에 대하여


 2008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희경 작가가 KBS 드라마 <고독>을 새로이 집필하며 몇몇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다. 작가님에게 고독이란 무엇이냐, 는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고독이라는 단어가 문학적으로 쓰이는 걸 제외하면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말이지 않나. 그러나 사랑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고독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온갖 편견 덩어리의 세상에 맞서 싸울지라도 내 사랑을 고독하지 않게 만드는 것.


 <고독>은 열다섯 차이가 나는 영우(류승범)와 경민(이미숙)이 세상의 편견에 맞서며 사랑해가는 과정을 다룬 드라마로 당시 사회적 반향이 상당했다.


 사회초년생, 미혼이던 나는 그 드라마를 보면서 자주 감정 이입하곤 했다. 노희경 작가의 말처럼 '사랑하고 있는데 고독하다면 그건 사랑이 아닌 거야'를 되뇌었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마흔을 바라보는 내가 고독을 바라본다.


 미혼일 때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실이 '결혼'이라 믿었다. 그래서 결혼에 골인하면 고독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했다 하여, 아이를 낳았다 하여,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하여 고독과 멀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과 있어도, 친구와 있어도 고독은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불시에 찾아왔다.


 고독을 느낄 때 나는 그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까. 어느 때부터인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를 둘러싼 모습을 언어로 세밀히 치환해 나갔다. 


 가령 홀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상황이라고 가정하자.  

   


 앞에 놓은 잔과 소서는 어떤 모양이며 재질인지, 커피의 온도는 뜨거운지 적당한지 혹은 조금 식었는지, 커피의 맛은 씁쓸한지 달콤한지 시큼한지. 그러면서 그 안에 있는 나의 감정을 언어로 재구성한다. 쓰는 행위를 통해 나라는 인간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고독은 인간의 근원적 감정이란 생각을 자주 한다. 행복이라는 찰나의 감정이 스쳐 지나가면 인간은 본래 고독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다.


 예전에는 '외로움'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고, 외로움을 느끼는 게 마치 불행한 것으로 인식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불현듯 느끼는 고독이 딱히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고독이 두렵지 않으니 고독하지 않기 위해 타인과 교감하고 소통하려는 섣부른 시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 상대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 내면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고독과 마주하며 나는 내가 과거보다 더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고독'을 떠올렸을 때 필연처럼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일본의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작품을 떠올리면 상실, 고독, 실존, 허무라는 단어부터 생각난다. 하루키 소설 전반에 일관되게 흐르는 정서는 문명화된 사회에서의 고립된 자아와 그를 둘러싼 고독한 세계이다. <노르웨이의 숲>의 나루세나 <해변의 카프카>의 카프카, <1Q84>의 덴고, 아오마메, 후카에리 등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고독하다. 타인과 교류하며 관계의 반경을 넓히기보다 혼자의 생활에 천착하며 스스로 고독을 택하는 사람들. 고독한 자아들은 불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주 IPTV 채널을 돌리다 마음이 끌려 어떤 영화를 보게 되었다. 고독이 인간에게 지니는 가치를 훌륭하게 다룬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영화 <토니 타키타니>.



 토니의 어머니는 토니를 낳은 지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난다. 하나뿐인 아버지마저 연주 순회로 집을 자주 비워 토니는 유년기의 대부분을 홀로 낸다. 혼자 요리하고, 혼자 청소하고, 혼자 그림을 그리며 토니는 차츰 혼자인 삶에 익숙해져 다. 어른이 된 토니 타니타니는 과거를 이렇게 회상한다.


특별히 외롭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다.

 

 감독의 연출이 뛰어나고, 미장센과 대사 등 버릴 게 없는 영화였다. 영화에서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배우들의 구두나 의상 등 스타일링이 굉장히 세련되어 눈요기도 제법 됐다. 적절히 흐르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OST도 마음에 스몄다.


 고독을 느끼는 분들, 고독의 본질을 알고 싶은 분들, 내면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싶은 분들께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하루키가 그러하듯 영화에 대한 호와 불호는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어떤 분께는 분명 가슴에 스밀 영화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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