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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Apr 13. 2022

강아지 때문에 일합니다

"내게는 부양가족이 있거든요"

  "제가 회사를 다녀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반려견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예요"

  "약 값이 꽤 많이 들거든요. 그리고 얘한테는 저 밖에 없거든요"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회사 면접 자리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기업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 할 수 있다란 말이라도 해야 되지 않은가. 하지만 내 말투는 꽤 진지했다. 어느새 질문은 내 반려견을 향해 가 있었다. 

  "몇 살이에요?"

 


  면접을 본 게 열댓 번은 된 것 같은데 몇 번은 가식적으로 그러니까 에프엠대로 대답을 했었다. 매번 후회 없이 면접을 보겠노라하며 임했지만 어느 순간 솔직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강아지 반려견 딸기 때문에 단돈 천 원이라도 벌어야 하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반려견과 아빠. 내가 책임져야 하는 가족이 둘이나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폐인처럼 있었던 나를 일하게 만든 건 반려견 녀석이었다. 때는 5-6년 전,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고 하루 종일 쿨쿨 잠만 자던 시절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녀석은 어디라도 다녀오자고 팔로 쿡쿡 나를 찔렀다. 녀석, 반려견 딸기가 마치 '주인장 햇빛이라도 쐬고 와야 돼 어서 일어나'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가끔 강아지를 키워야 돼서 일한다는 진지한 말에 '그깟 강아지가 뭐라고 웃기네'라며 코웃음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뭐 그러면 어떤가, 녀석 때문에 일하는 건 저명한 사실인데.

   


  오랜만에 반려견과 산책을 나갔다. 꼬리를 한껏 위로 꼿꼿이 올리고 팔딱팔딱 뛰는, 녀석이 한껏 들떠 있었다. 육안으로 보기에 확실히 나이가 들어서 뒷다리 근육이 약해진 것이 눈에 보였다. 햇살이 뜨겁게 우리를 비췄고 녀석과 나의 그림자가 그 옆으로 드리워졌다. 그림자를 볼 때마다 녀석과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밖으로 나간 나들이가 좋은지 녀석이 풀숲에 코를 박고 계속 킁킁거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년 정도의 공백 기간 동안 언론고시를 준비했었다. 생전에 엄마가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으나 연속 낙방을 경험하며 계속 절망했었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좌절할 때마다 녀석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으며 내 팔을 핥아댔다. 몇 주 동안 집에 옴싹달싹하지 않고 있을 때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 것 또한 녀석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일하나 보다.

  그런 녀석이 요새는 기력을 조금씩 잃어간다. 내가 앞에 있어도 다른 쪽을 바라보며 나를 찾고,  문소리를 들어도 짖지 않는다. 현관문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적도 잦았다.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강아지의 시간을 사람 시간과 동일하게 만들고 싶어졌다. 시간이 같아져서 함께 늙어가고 싶다. 

  나는 면접에서 오늘도 자신 있게 말한다. 

  "제게는 부양가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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