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중도 포기 학생의 글을 보며
결전의 그날, 고3 열아홉 학생들의 수능일이었다. 나는 수능에 대한 감응이 크게 없다. 학업에 열정적이지도 않았고, 일찍이 수시에 붙어 긴장감은커녕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놀지 행복한 고민을 했었다. 십몇 년 전이지 이마를 짚으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가 수능 본 시즌은 유난히 추워 장갑을 꼈던 걸로 기억한다.
뉴스에서는 고사장 앞 학생들의 모습 속에 긴장감이 담뿍 담겨있었다.
대학이 뭐라고, 그렇게 절실했던 걸까. 수도권 혹은 서울권 대학에 가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이라며 스스로를 규정짓던 지난날의 나를 생각했다.
수능일 한 학생이 수능을 중도 포기했다는 글을 읽었다. 너무 긴장을 해 언어영역 시간부터 글자가 눈에도 안 들어오고 가슴이 떨렸다고 쓰여 있었다. 학생은 자신을 응원해 준 사람들 특히 부모님에게 미안해 힘들다고 말했다.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에 위로의 행렬이 이어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길거리를 배회하고만 있다니 마음이 아팠다. 가장 아픈 건 자기 자신일 테지. 수능일 공황증상이 오거나 긴장감에 스스로 컨트롤 못해 중도 포기했다는 글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우리 때야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긴 하다. 아파도 꼬박꼬박 학교에 출석했던 것처럼 일단 응시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봐야 했다. 암묵적인 룰 같은 거다.
시험을 포기한 스스로가 비참하고, 그동안 들인 시간과 돈에게 미안하고, 나를 믿어줬던 부모님에게 죄스럽고... 구구절절한 학생의 사연에 많은 사람들이 조용한 위로를 보냈다. 열아홉의 세상에는 높은 수능 성적과 대학교 합격이 전부일 터. 그러나 수능은 하나의 점일 뿐이다. 인생이 긴 선으로 뻗어나간다면 '수능'은 그 선을 지나가는 그냥 점이다.
누군가에게는 수능이 일생일대의 결전의 순간일 수도 있지만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십 년 후 내가 십 년 전 나를 보면 애틋하고 안타까울 때가 있다. 그게 뭐라고 치열하게 목매달았는지 연연했는지 잠을 못 잘 정도로 오래도록 생각했는지 말이다.
좋은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고,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한 삶일까? 이상적인 삶이긴 하겠다. 그러나 대학에 못 갔다고 해서 실패한 삶도 아니다. 졸업하고 취직하고 사회에 나와 둘러보니 좋은 대학을 나왔다 해서 꼭 성공하지도 않으며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해서 실패했다 할 순 없으니까.
성공한 지인들도 저마다 가슴에 말 못 할 짐덩이 하나 쥐면서 살고 있다. 인스타로 화려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지울 수 없는 상처 하나쯤 품고 있다. 수능 점수가 대학교 합격 불합격 여부를 결정하지만 인생을 길게 봤을 때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중도 포기면 어떤가. 한 해를 더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갈 수도 있고, 다음 해 수시를 써서 갈 수도 있다. 설령 원하는 대학교에 못 갔다고 해도 편입을 할 수도 있고, 전과를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수능이라는 루트가 절대적이지만은 않다.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학생을 위로했다.
학생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아 꼬옥 안아주고 싶다, 잠시 쉬어가는 것일 뿐, 수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등 따스한 말들이 가득했다.
안 되는 걸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힘들면 포기하고, 포기가 안되면 버티는 것도 모두 그들의 선택이니까.
십여 년 전 이맘때 수능 원서 표를 들고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수험표를 꼭 쥔 채 수험생 할인 식당, 가게 목록을 찾으며 걱정 없이 놀았다. 한 달 뒤면 성인이 된다는 설렘, 어른이라는 기대감을 가득 안고서. 학생에서 벗어나는 해방감 또 다른 곳에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으니까.
서른이 넘으니 이십 대 대학생들이 아기 같아 보인다. 그런데 대학생 때는 한두 살 차이 나는 선배가 무섭고, 부럽기도 했으며 되게 커 보였다. 엄마는 내게 “내가 네 나이면 돌도 씹어 먹었어”라고 말했다. 아직 젊으니 뭐라도 해볼 게 있을 거라는 엄마만의 위로였다. 지금은 내가 20대 혹은 30대 초반 친구들에게 이 말을 하고 있다.
70대 할머니가 보는 세상에서 나는 또 얼마나 작고 하찮아 보일까를 생각한다. 내가 뻗어가는 직선은 어디까지일까. 잘 모르겠다. 어떤 일에 실패하고 절망스러워도 지나가는 점일 뿐이다. 점이 모여서 인생의 선을 이룬다. 그러니 땅이 꺼질 듯 울 필요도 자존감이 낮아질 필요도 스스로를 삼키는 말도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계속 나아가는 어떤 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