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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딸 돌잔치 앨범 첫 장 문구를 써줬다

누군가의 마음을 문장으로 의뢰받는 순간

by 서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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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 앨범 글귀가 필요한데 네 도움이 필요해‘ 자고 일어나니 카톡이 와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오랜 친구 D의 연락이었다. 서로 다른 대학을 가고 사회생활을 하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가 유일하게 연락해 온 친구다. 이상하게도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으면 소식을 듣기가 어려웠다.


누가 연락하든 상관없지만 몇 년 동안 먼저 연락하지 않아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이상 아니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래되어 잊힌 인연들도 있었다. 그와 다르게 D와 나는 뜸하다가도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근황 토크를 하는 사이였다. 그랬던 친구 D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녀의 반려견이 떠난 후 새 가족으로 맞이한 강아지도 키운다.


나는 엄마가 된 적이 없어 엄마의 마음을 잘 모른다. 누군가의 처음을 축하하는 돌잔치 문구를 대충 써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추상적인 단어밖에 생각이 안 났다. 글을 쓰던 가장 처음을 떠올렸다. 원고지에 글을 쓰고 또 읽고 고치던 시간들. 초등학교 때 독후감을 썼는데 읽으면서 왠지 잘 쓴 거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었다. 스스로 느끼는 어떤 확신 같은 거. 뿌듯한 기분, 그러니까 흰 순두부처럼 몽글몽글한 느낌이 가슴을 꽉 채우면 상을 받았다.


D는 시적인 문구를 원했다. 그녀도 그녀의 딸도 특별한 첫 감정을 남기고 싶었을 거다. 나는 D의 딸이 나중에 한글을 읽을 때쯤 자신의 앨범을 소리 내 읽는 것을 상상했다. 그래서 아이의 첫 시간과 훗날 시간들을 상징적으로 쓸 단어들을 생각하며 오랜만에 글을 썼다. 사실 글이라기에 쪽팔리는 게 앨범 앞장에 들어가는 몇 줄이다. 친구는 내게 냄새, 울타리라는 단어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D는 ’냄새‘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기 냄새가 떠오른다고. 아무것도 묻지 않은 순수한 천연의 냄새 그 자체. 순간 아차 싶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가 생각한 것과 정 반대의 냄새를 생각했었다. 오줌 냄새, 청국장 냄새, 담배 냄새. 나는 세상에 많이도 찌들었나 보다 생각하며 다시 아기 냄새를 떠올렸다.


단어는 언제나 그것을 둘러싼 삶을 데리고 온다. D가 부탁한 울타리란 단어에서는 단단한 보금자리, 둥지, 초록의 풍경을 떠올렸다. 사실 나는 살짝 도와준 것뿐이고 그녀가 쓴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했기에 여러 번 문장을 고치기 더 쉬웠으니 말이다. 글귀를 쓰고 이름을 비롯해 사랑해라는 문장을 넣고 싶다고 했다. 나는 문장 마지막 부분이 아니라 마지막 문장 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넣고 그 뒤에 표현하는 문장을 적었다.


"사랑해 OO아 라는 단어가 마지막에 없어서 좋아"

내 의도가 충분히 그녀에게 닿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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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작가님"

그녀에게 나는 글 잘 쓰는 작가님이었다. 나는 늘 스스로를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D는 달랐다. 나는 아직도 D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예전에 지방지에서 신인문학상을 탔었는데 중앙지인 줄 알고 냈던 것이었다. 수상한 것 자체는 기뻤는데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길 법도 한데 많이 아쉬웠었다. 그때 D가 내게 말했다.


"네 글을 지방지에서도 알아주나 보다"


나는 말갛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녀가 내게 하는 말들은 대게 말갛게 다가왔다.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을 때나 격려를 받을 때 의례적인 건지 복사 붙여넣기를 하는 건지 진심인지 정도는 구분할 줄 알게 된 나이. D가 내게 하는 말들은 따뜻하면서도 다정하고 진심이면서도 포장되지 않았다. D가 내게 하는 말을 들으면 가끔 깜짝깜짝 놀랄 때가 몇 번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축하해, 힘내,라는 단어는 형식적인데 똑같은 말을 해도 그녀가 나를 축하해 줄 때 나는 다른 감각을 느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묻지 않은 아기 냄새를 좋아하는 D는 D의 마음과 닮아있었다.


내 소중한 친구 D야. 너의 딸 유하의 처음을 정말 축하해.

아래는 내가 쓴 앨범 글귀다.


아가야, 너는 우리에게 처음 스며든 빛이야.

네 냄새가 낮과 밤을 덮고, 하루가 되고, 계절이되고

우린 너를 품으며 서로의 울타리가 되는 법을 배웠으니.

그 틈에서 피어난 내 아가, 사랑해 유하야

너는 우리 삶에 가장 고운 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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