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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유 Jun 27. 2022

사진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낯선 사진 속 고등학교 친구들 

코로나가 완화되면서 2년 만에 고등학교 재경 동창회가 열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자리를 잡은 친구들 중 연락이 닿는 친구들이 30~40명인데, 나는 매년 참석하지는 않는다. 동창이라고 다 친한 것은 아니어서 친한 애들이 참석할 때만 슬쩍 합류한다. 올해는 모처럼 만이라 참석하려 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결국 가지 못했다. 

동창회가 있던 날 저녁, 단톡방에 사진이 올라왔다. 동창회에 참석한 친구들이 단체 사진을 찍어 올렸는데,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친구들이 너무 늙어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앞줄에 앉은 친구 몇 명은 거짓말 조금 보태 할머니처럼 보일 정도였다. 다들 어느새 이렇게 늙어버렸는지 세월이 야속했다. 

"설마 나도 저렇게 늙어 보일까?"

친구들 사진을 들여다보다 문득 궁금해졌다. 마음속으로는 "난 저렇지는 않지. 난 훨씬 젊어 보여. 원래 난 동안이잖아." 생각하면서도 확인받고 싶어졌다. 남편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남편은 신중하게 사진을 살펴보고 대답했다.

"응 비슷해"

"뭐라고? 내가 훨씬 젊어 보이지 않아? 다른 사람 눈에는 나도 저렇게 보인단 말이야?"

"그 나이 또래 다 그래"

눈치 없는 남편은 내 질문의 의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친구들 사진을 보고 받은 충격보다 더 큰 강도의 충격이 밀려왔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무리한 시술은 받지 않겠다는 나였지만 그 순간 잠시 '이거 더 늦기 전에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사진 찍는 게 마냥 즐겁지 않은 지는 꽤 되었다. 40대까지만 해도 사진을 찍으면 실물보다 잘 나와서 만족스러웠는데, 50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사진에 세월의 흔적이 묻어 나와 잘 나올 때까지 여러 번 다시 찍는 일이 많아졌다. 필터를 사용하면 좀 더 그럴듯한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익숙하지 않아 휴대폰에 기본으로 장착된 카메라를 주로 이용한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얻으려면 각도부터 거리까지 세심하게 조정해 수십 번을 찍어야 한다. 

십 수년 전 집안 모임을 할 때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당시 50대 중반쯤이었던 올케 언니는 늘 찍기 싫어했다. 늙어서 예쁘지도 않은 모습 사진에 담기 싫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때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언니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다. 


그러고 보면 사람 마음은 참 알 수가 없다. 보통 현재의 모습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막상 현재 모습이 있는 그대로 사진에 담기면 부정한다. 사진이 잘못 나왔다고. 현재 모습보다 예쁘고 멋있게 나와야 제대로 나왔다며 만족해한다. 나이가 들고 나니 덜 예쁘게 나오는 건 참을 수 있는데, 늙어 보이게 나오는 게 몸서리치게 싫다. 지금도 이런데 더 나이 들면 사진 찍는 게 더 무서워질 것도 같다. 


사진에 찍힌 모습이 현재의 내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하려도 해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왜 거울로 봤을 때보다 사진이 더 나이 들어 보이는가 말이다. 물론 아무런 근거 없는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궤변을 늘어놓는 것 같기도 하다. 


사진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사진은 죄가 없다. 하지만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는 사진이니 가능한 한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좀 더 멋지고 예쁜 모습으로 찍히고 싶어 하는 마음 또한 무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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