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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유 Nov 28. 2022

정말 오랜만에 멋진 중년 여성을 만났다

50대 여성의 새로운 도전, 그 열정에 반하다 

40대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 열정이 넘쳤고, 성실했다. 그때는 목표도 없이 허송세월 하는 듯한 사람들을 보는 것도 싫어했다. 그들의 무기력함이 나에게 전염될까 일부러 멀리하기도 했다. 

50이 넘으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매일 치열하게 아등바등 사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람이 때로는 온몸에 힘을 빼고 나른하게 지낼 수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돌이켜 보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못 견뎌했다. 하지만 꼭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만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니고, 행복한 것도 아니지 않던가. 

그러면서 나는 달라졌다. 일하는 시간을 대폭 줄이고,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렸다. 주말에는 삼시세끼 밥해 먹고, 남편과 산책하고, 나머지 시간은 뒹굴뒹굴 해도 괜찮았고, 시간도 빨리 갔다. 이런 게 소소한 일상의 행복인가 싶었다. 삶은 만족스러웠고, 평화로웠다. 


그런데 지난 주 11월 23일 평소 즐겨보던 유퀴즈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작고 마르고, 화장기도 별로 없는 수수한 분이었다. 얼핏 보면 소녀 같은 느낌이지만 클로즈업해 들어가면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말소리도 크지 않다.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조근조근 이야기하는데,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전달이 잘 된다. 


평범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굴지의 대기업을 다녔다는 이력은 사실 내 관심 밖이다.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이던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어디에 다녔는가 보다는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 가이다. 

그녀는 제약회사에서 근무할 때 후발주자인 시알리스라는 발기부전 치료제를 2년 만에 1등으로 만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그 시장은 비아그라가 독주했다.  그런 시장에서 시알리스가 1위로 올라선 데는 '건강'이라는 콘셉트와 '지속력'을 강조한 홍보 역할이 컸다. 당연히 홍보의 중심에는 그녀가 있었다. 


세기의 대결로 주목받았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홍보도 그녀의 작품이다. 이세돌 9단을 섭외하는 것도, 인공지능이라는 낯선 주제를 알리는 것도 과제였는데 결과는 우리가 알다시피 대성공. 처음에는 준비한 기자석이 다 차지도 않을 정도로 큰 관심이 없었는데, 대국을 할수록 폭발적으로 관심이 늘어나 마지막 대국에는 수천 명의 기자가 몰려들어 기자석이 터질 정도였다고 한다. 


자기가 한 일을 이야기했을 때 '아, 그 일을 하셨던 분이에요'라는 소리를 듣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을 만들면서 제목만 대면 다 알 수 있는 그런 책을 아직까지 만들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참으로 부러운 대목이다. 


50세에 새로운 도전을 했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을 성공시킨 후 그는 구글코리아 전무로 승진한다. 그냥 그 자리를 즐겨도 되는데, 그녀는 구글 코리아 전무라는 자리를 박차고, 50세의 나이에 구글 본사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모두가 그녀를 알던 구글 코리아에서 아무도 그녀를 모르는 구글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나 못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의 체력이다. 마르고 연약해 보이는데, 히말라야 등반을 세 번이나 했고, 매일 수영을 하고, 주말에는 커다란 배낭을 매고 홀로 백패킹을 한단다. 놀라운 체력이다. 완전 반전이다. 


매일 4시간씩 영어공부도 열심히 한단다. 이미 영어로 소통하는데 큰 불편이 없는데도, 더 맛깔스러운 표현을 공부하기 위해 하루 4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사실 난 다른 사람의 성공을 그리 부러워하지 않는 편이다. 그건 그들의 삶이고, 내 삶 또한 그들 못지않게 멋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퀴즈에 출연한 그녀도 부럽지는 않다. 다만 50세가 넘어서도 여전히 열정을 불태우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내 삶을 돌아보게 한다. 젊었을 때처럼 무조건 하고 싶은 일이 지금은 없다. 열정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조금은 심심하지만 평온한 삶도 축복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를 보면서 '내가 너무 빨리 삶에 안주한 것은 아닌가' 자문하게 된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더 하자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편에게 '아마 혼자 살 거야. 가족이 있는데 저렇게 살 수는 없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마음속 어딘가에 가정을 이룬 여성이 그렇게 대단한 성취를 하고, 50세가 넘어 혼자 미국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거의 인터뷰 마지막에 그녀가 결혼을 했고, 장성한 아들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더 놀랐고, 함부로 독신여성일 것이라 추측했던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모처럼 내 삶을 돌아보게 하고, 좋은 자극이 된 그녀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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