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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 Jan 20. 2023

비밀스러운 기도가 진짜로 이루어질 확률

소설_1


아무렇지 않은 날이 오길 바랍니다.

가슴속 쇠가 갈리는 느낌도,

눈앞이 흐리고 숨이 차는 것도,

이상하리만치 삽시간에 없어지는 다리의 힘도

네,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은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국민학교 2, 3학년쯤 되었을 겁니다. 동네에 아주 큰 교회가 있었는데 일요일마다 우리 집이 있는 골목 어귀에서 별사탕이나 자두 사탕, 운이 좋을 땐 딸기 파이 과자 따위를 나눠주며 교회에 놀러 오라고 홍보를 어지간히도 했습니다.


전 어릴 적 기억이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일부러 일정 부분을 도려내기라도 한 듯, 기억과 기억들이 탁탁 끊겨있을뿐더러 그마저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디선가 본듯한데 어떤 이들은 태어나는 순간의 기억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부럽긴 합니다만 그것이 진실인지는 그 사람 자신조차도 확신하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적 견해입니다.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서 그렇습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신기할 만큼 기억이 없는 저를 보고 혹자는 말합니다. 혹시 사고가 있었던 건 아니냐는 둥 심리적인 이유로 하여금 기억을 자체 삭제한 건 아니냐는 둥 쓸데없이 드라마 만들기에 여념이 없기에 저도 다소곳이 한 말씀드리자면 제가 그렇게 사연 있어 보이는 얼굴인가요?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사실 저를 향한 시선에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딜 가든 어떤 상황에서든 늘 약간의 특별한 대우라면 대우랄까 사실상 ’ 취급’을 받고 다닙니다. 풍기는 분위기라든지 생김새가 워낙에 밝은 구석이라곤 눈 씻고 봐도 없으니 말이죠.

애당초 ’ 밝은 구석’이라는 말 자체가 어폐이기에 전 그런 평가 따윈 신경 쓰지 않는 편입니다. 제 유일한 장점이 바로 무신경이죠. 주특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무신경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나눠주는 사탕의 유혹은 국민학교 저학년 꼬맹이에게는 강력합니다. 사탕은 곧 저와 같은 골목에 사는 친구들 몇몇과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당신께는 미안하지만 당신을 진심으로 믿는다거나 당신의 자녀가 된다거나 그런 건 의미도 몰랐고, 유감스럽게도 당신의 존재 자체를 거의 모르다시피 했습니다. 집안의 몇몇 어른들은 불경을 외는 사람들이었으며 그 당시엔 유튜브는커녕 컴퓨터 보급도 원활하지 않았던 때니.... 요컨대 죄송하단 겁니다. 그리고 이건 지나치게 직설적이어서 어째 비꼬는 것 같기도 하고 때에 맞지 않는 설명이긴 하지만, 애석하게도 전 유전자와 관련된 학문 쪽에 관심이 많을뿐더러 창조나 믿음이라는 단어보다는 기원이나 근거 따위의 단어에 더욱 흥미를 느끼는 타입으로 성장해 가기도 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타입에 근거하여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제가 교회에 간 계기는 공짜 사탕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허나 그 또한 당신의 계획이었던 걸까요. 참으로 신기합니다. 뭐가 신기하냐면 기도란 것이 신기합니다.


 교회는 재미있었습니다. 딱히 누가 알려주거나 시킨 것도 아니지만 눈치껏 행동했습니다. 노래를 따라 불렀고 기도를 할 때 손을 모으는 것도 잘 따라 했습니다. 특히나 기도는 ’ 하이라이트’라는 말이 100퍼센트 어울리는 참 의식입니다. 앞뒤 가릴 것도 없이 다짜고짜 바라는 것들을 주르륵 나열하며 당장 제 소원을 이루어 주세요!라고 윽박지르며 방방 뛰는 행위를 머릿속으로 했을 뿐인데도 실제로 숨이 가쁜 느낌, 아니, 숨이 확실히 가빴습니다. 모처럼의 주일날 이 어찌 ’ 하이라이트’가 아닐 수 있을까요.

각설하고. 그딴 식으로 요청했는데도, 과연 당신은 이런 예의 없는 어린양까지도 하나하나 살피시는 것을 보니 대단하십니다. 제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너무 정확히도 제 기도의 요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구름 뒤에 있던 해가 더욱 빛나듯이 저도 이젠 제 할 도리를 하며 살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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